사랑을 하지 않고 흘려보낸 1년이란 세월. 남편의 그림자를 밟으며 소복차림의 마음으로 지내온 세월 1년의 의미는 내 삶의 어떤 이정표를 세웠을까?
여자가 사랑을 하지 못하면 수한을 다한 꽃과 다를바 없는데.....존재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같던 1년여의 흐느낌은 앞이 안보이는 안개속의 혼미한 방황이었다고 할런지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차량행렬속에 끼어 달려가는 그와 나의 차속공기가 오늘따라 후끈하게 느껴지는것은 1주기를 보낸 미망인의 훈기와 흥분?
"어때요?"
"맘대루...."
그는 사무실로 나를 데려가지 않고 바구니 재를 넘어 둔곡이라는 마을로 차를 몰아갔다. 곧 행정수도가 들어오면 서울 장안의 문앞쯤 될지도 모를 산야이지만 아직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빼어난 풍광속이 보존되어 있고 거기에 정갈한 토속 음식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풍정 가든"이라든가
"어서 오세요"
선하디 선한 인상을 가진 털보 아저씨가 여전 웃음을 굴리며 우리를 맞아 준다.
"저 쪽 ....."
안내를 받아 들어간 조용한 방.
황토 내음이 진하디 진한 오래된 된장 냄새가 배인듯한 방에 통나무 상을 사이로 그와 나는 마주 앉앗다.
시선이 애매하여 창살을 응시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네....."
"응, 나 영애...."
"왜?"
"왜는 너 오늘 풀렸다며^^"
"뭐가 풀려?"
"진숙이가 그러는데 너 네 남편 제사만 지나면 달라질거라고...."
언젠가 술한잔 먹고 아무렇게나 해댄말을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난 픽 웃었다.
"기집애들 아주 기대가 큰 모양이네...."
"야, 내가 너 데리러 갈께...어디야?"
"나, 그냥 밥먹으러 왔어..먹고 나서 전화할께........"
"야, 근데 오늘은 좀 올라가더라"
"뭐가.....?"
주식 얘기다. 날마다 전광판에 목을 매거나 아니면 증권사 사람들과 밥먹고 히히덕거리는 것이 취미라더니......진숙이를 비롯하여 몇몇은 다 그런 부류의 여자다.
전화가 마쳐지기까지 나를 응시하는 재범이의 시선이 영 부담스럽다. 그가 나의 보호자도 아니고 나를 위해 무언가 행사할 권한을 가진 것도 아닌데....
사람의 호의가 쌓이면 부담이 되고 그 결과 상대에게 갚아야 하는 빚같은 감정으로 남나보다
금새 음식이 들어 왔다. 내가 좋아하는 토종닭 백숙.
난 하얗게 익은 토종닥 속살을 좋아한다. 그것도 아무것도 저미지 않은 순수한 백숙을 하얀 소금에 찍어 먹는걸 어릴때 부터 지극히 좋아해 왔다.
남편하고도 한두번 왔었던 곳이데.....지금 내 앞에 앉은 남자는 남편의 제자이면서 물속에 묻혀버린 고향 마을의 후배라니....
재범, 그는 내게 무엇인가?
애인? 그렇게 생각하니 좀은 저속한듯하고....
하류인생 속으로 내가 들어 갈 것같아 자존심이 상하고
"드세요..."
얼굴이 좀은 상기되어 가는 그와
백숙 김에 보습된 내 입속에 하얀 순백의 살을 밀어 넣을때
어쩌면 내 삶이 행복해 질지도 모를거라는 기대감 같은 것이 드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쩌실거에요?"
그가 내게 물었다.
난 대답대신 그를 바라보고
"사무실에 나오실래요 전화라도 받아 주세요"
그랬지....그의 사무실에 나오라고 했었던 것이 몇달 전이었던것 같다. 그는 관공서에 납품을 하는 일을 한다. 특히 학교쪽에 일을 많이 한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사무실 사람 있잖아..."
"있으면 어때요....사모님이 나오시면 제가 더 맘놓죠^^"
"내가 뭐 할줄아나..."
"배우시면 되요..."
오늘따라 누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지 않다. 왜일까. 벌써 내맘이 이성의 눈으로 간걸까? 그러나 그건 안될일이다.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미혼의 청년이거늘 감히 그런 생각을 하다니.....
"곤란하시면 좀더 기다릴께요"
내 얼굴에 무언가 써 있었던 모양이다. 난 얼른 정색을 하고 음식으로 돌아 갔다.
하얀 백숙!
난 그것을 찢어 소금에 찍고 그의 얼굴을 슬쩍 훔쳐 보았다.
"좋은 남자야"
내 속에서 그렇게 탄성이 울려나고 있었을까. 여자가 남자에게 울려날때의 여심이런가... 갑자기 드러난 나의 다리살이 부담스러워 짧은 스커트 자락을 끌어 내리는데......
"누님, 아직도 선생님 생각나세요? 이거 드시고 이제 행복해 지셔야죠....^^"
".............."
무안해하는 나를 바라보는 재범의 손에는 하얀 닭다리 고운 살이 들려 있었다.
아마도 나에게 먹여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