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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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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그렇지


BY 라니 2011-11-15

 

무엇이었을까?

내 슬픔의 근원

지난 사진속의 표정들(아니 표정이라 말할 수 없는 상태)이 말하는 슬픔의 이유가 무엇인지

나조차도 모르고  다만 그 사진들을 바라보기 싫어

사진 찍는 걸 무척 싫어했던 기억은 있다.

친구에게 편지를 하기 전에도 난 슬펐고

그 친구를 알기 전에도 난 슬펐으며

어린 시절에도 난 슬펐다.

그리고 

그리고 난 늘 슬펐다.

왜였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여러명의 형제들이 함께 살았다.

그 이전에는 작은 아버지가 한동네에서 할아버지내외를 모시고 우린 우리가족만 살았던 적이 있다.

 그러다가 작은아버지가 갑자기(내 기억으로)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내외가 우리집으로 오시게 되었다.

농사일에 바쁜 엄마 대신 할머니댁에 가면 늘 반갑게 집에 있어 맞이 해 주는 것이 좋았고.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지만 방안에 문만 빼꼼 열고 바라봐 주시는 작은아버지가 계셔서

학교 끝나면 늘 달려가던 할머니댁이 사라진 것이다.

작은 어머니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으므로 친정으로 돌아가셨다.

작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스텐레스세수대야이다.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반짝이던 세수대야는 작은어머니께서 시집오실 때 해 오신 혼수중 하나였다.

새것이어서 좋았고 처음 보는 거라 그것 하나로 산골 깊은 우리 동네와는 다른 곳에서 오셨다는 게 좋았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화풀이 소리는(스텐레스 대야 던져서 나는 소리들)

 담장을 넘어 요란하게 동네방네 떠다니게 되었고

그 소란한함 만큼 나는 움츠러들고 있었던 것 같다.

 작은어머니의 힘듬이 안타까워서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작은아버지의 아내가 자랑할 만큼의 외모가 못되어 조금씩 마음에서 밀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어느 겨울 눈발이 내리던 새벽

잠결에 빨리 일어나지 않는다고 언니에게 혼나면서 들은 작은 아버지의 죽음이 내 슬픔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얼마만큼 내가 작은아버지를 좋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은아버지의 굽은 등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얼굴도 다른 기억할 만한 일들도 하나 없다.

그런데 난 그 후  늘 슬펐던 것 같다.

후에 들은 말로 자식을 두지 못하는 건강상태였던  작은 아버지를 내가 유난히 잘 따랐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기억 하나

작은아버지 장례날

그동안 난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냇가쪽에 나가면 건너편으로 할머니댁이 보였지만 난 나가지 않았고

밥도 날라다 주어야 먹는다고 언니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중풍 걸린 할아버지 수발을 핑계 삼아 집에 남아 있었다.

밤중에 언니가 작은아버지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우리집으로 모시고 와야 한다고 할 때

사실 난 잠이 깨어있었고 가슴이 오그라들고 모든 기관이 정지 상태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러다 할아버지 자리 마련해야 하는 언니에게 뺨을 맞고 정신을 차렸다.

아니 그냥 몸만 겨우 일어나 움직였고 다른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 멈춰있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생각도 슬픔도 아픔도 감정이라는 모든 것이 사라진 상태로 그날까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애절하고 구슬프게 작은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대는 중풍 걸린 할아버지 때문에

속절없이 내리는 눈발이 더 야속하여 할아버지소변통을 들고 냇가에 나갔다가

 손을 뒤로 모아잡고 등이 굽은 자세로 할머니댁으로 가는 언덕을 힘들게 오르고 있는 작은아버지를 보았다.

그럼 그렇지!

소변통을 집어 던지고 한 달음에 달려간 그 곳

상여 앞에서 오열하는 아버지와 상복입은 많은 사람들 그리고 남의 일이어서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아이들과 가족이 아닌 어른들의 웃음소리.

웃음소리 납득안되는 웃음소리들..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