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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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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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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1


BY 이안 2011-09-26

1년 만의 돌아옴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어 수향은 주변을

 

눈으로 살피고 또 살폈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접고 산

 

지 오래였다.

 

 

 

구급차에서 내려 집안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기쁨에 이어 안도감이 스며오는 것도 느꼈다.

 

마지막 순간에 남편과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자신의 감격스러운 눈물을 가족들이 알아채지 않았을까 해서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폈다.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거 같았다.

 

그들은 모두 정신이 없었다.

 

 

 

그녀의 몸이 침대에 눕혀지고 있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인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젊은 녀석의 난폭한 운전으로 오는 내내

 

수향은 힘들게 몸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몸에서 완전히

 

분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불안하게도 했다.

 

수향은 안간힘을 쓰며 몸에서 분리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행이 그녀의 몸도 잘 버텨주었다.

 

 

 

녀는 자신의 몸과 하나가 되게 누웠다. 남편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앉더니

 

그녀의 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뼈만 앙상한 커다란 손의 느낌이

 

그녀의 몸을 타고 전해져왔다. 예전에 그녀가 느꼈던 그 느낌과 다르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엄마! 집에 왔어.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왔어.”

 

 

 

.’이라고 수향은 간신히 대답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남편과 함께 누웠던 침대,

 

벽 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TV, TV대 밑에 매달려 있는 자신의 사진,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그대로인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풍겨오는

 

냄새, 탁 트인 하늘과 신선한 공기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었겠는가.

 

수향은 그 누군가가 말해주기 전에 이미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보았다.

 

그리고 감격해서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남편과 그녀의 집, 그 집으로 돌아오는데 1년이 걸렸다. 비록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시간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집에서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딸애의 집에서 보낸 시간들이 엉망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애는 자신을 아주 조심스럽게 잘 다루어주었다.

 

 

 

딸애의 손길이 느껴질 때마다 다가왔던 뽀송뽀송함을 떠올렸다. 기분 좋은 편안함이

 

꼬리를 물고 다가왔다.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남편이 있는 집이 그리웠다. 남편과 꼼지락거리며 누워있던 침대도

 

그리웠다. 그의 무뚝뚝한 말투도 그리웠다. 딸애의 손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편과

 

60여년을 함께 했던, 그리고 남편이 버티고 있는 그 공간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녀는 딸애의 얼굴을 지긋이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딸애의 얼굴이

 

보였다.

 

 

 

이제 끝이구나. 니 손길, 니 손길이 지나간 다음에 다가왔던 편안한 느낌들, 그런

 

것들과도 이젠 이별을 해야 하는구나.’

 

 

 

이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서운했다. 하지만 그녀는 딸애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힘에 겨웠다.

 

 

 

좋아?”

 

 

 

딸애가 그녀의 눈빛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물었다.

 

 

 

당연히 좋지. 집으로 돌아왔는데. 니 아버지 옆에서 떠날 수 있는데, 너라면 좋지

 

않겠냐? 선민이 너한텐 미안하지만 니 아버지 옆으로 오고 싶었어. 그리고 알아.

 

내가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을 너 혼자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거.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나 다 그럴 테니까.’

 

 

 

수향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여전히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잊지 않을게. 고마웠어. 내 마지막 쓸쓸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

 

 

 

그녀는 그 마음을 눈빛으로 담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쉽지 않았다.

 

 

 

엄마, 갈게. 애들 땜에 가야 돼. 건이 명이 학생이잖아. 오고 싶으면 와. 내가 다시

 

엄마 모실게.”

 

 

 

선민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은 채 들려왔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다.

 

 

 

울고 있나보다.’ 수향은 어림짐작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렴풋이 딸애의 얼굴이

 

자신을 향해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지만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수향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선민을 시선을 고정시킨 채

 

쳐다보았다.

 

 

 

시간이 살짝 멈춘 듯했다. 그리고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몸을 돌리고 있는 딸애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돌려지고 몸이 돌아가더니 문 밖으로 코트자락까지 사라졌다.

 

딸애가 떠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작 떠나야 할 사람은 그녀 자신인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대로 머물러있고 자신이 떠날 사람인데, 그런 생각은 다가오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느낌조차도 이곳에서는 철저히 육적이구나.’

 

 

 

수향은 씁쓸하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육안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마지막 딸의

 

모습을 잠시라도 붙들기 위해 그녀는 눈을 감았다.

 

 

 

 

 

살아 있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선민은 엄마에게서 시선을 거두면서

 

생각했다. 그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밀려왔다.

 

 

 

이런 게 이별이구나. 이별을 한 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이별이 아니었어.’

 

 

 

 

 

잘 가라, 내 딸. 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렇게 슬플 거라는 생각을 수향은 하지 않았다. 담담하게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슬펐다.

 

 

 

내가 낳아 기른 자식 중에 제일 먼저 너와 이별하는구나.’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녀의 몸이 어느새 몸 구석구석에서 물기를 끌어 모아왔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엄마, 언니 또 온대.”

 

 

 

들키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주선이 자신의 눈물을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애가 몸을 낮게 구부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차하고

 

후회했지만 바로 수습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또 딸애를 울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속이 상했다. 그렇잖아도 자기로 인해 마음이 심란하고 복잡한 아이들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