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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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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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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에게


BY 오지연 2011-06-13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난 때로는 나를 왜태어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할때가 있다.

난 내엄마를 좋아했고 너무나 생활력이 강한 내엄마를 사랑했는데 어느순간 내엄마가 나를 낳지않았다는 사실을 알았고 난 그어린나이에 그것을 감수해야했다.

 중학교때 언니들이 나에게 "너는 엄마딸이아니라고 했고" 난 그어린나이에 그소리를 아무생각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뒤로도 난 단한번도 엄마가 내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이유는 엄마는 나를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셨기 때문에 난 그런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취업을하였고 엄마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었지만 위에 언니들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시집들을 가버려서 엄마는 내도움을 받아도 힘드셨다.

 그래도 난 엄마가 필요하다면 다드렸다.

 나를위해서 고생하신 우리엄마께 엄마를 위해서면 무엇인들 못할까라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7년이라는세월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난 돈은 모이지 못했지만 후회는 안했다.

 그리고 엄마.아빠의 성화로 선이라는것을 보게되었고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혼을 서두르시는 엄마 아빠의 바램데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계기가 아니 불행의 나락으로 한발짝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된 이결혼이 엄마 아빠의 바램데로 진행이 되었고 결혼식이 끝났다.

 난 엄마아빠의 기둥은 뽑아가지말아야 한다는 굳은신념이 있었고 내가벌은돈으로 내가 다준비했고 부모님께는 피로연만 부탁을드렸다.

 그런데 혼수로인한 구박은 날이갈수록 심해졌고 두모자가 만삭인나를 괴롭히고 난 정말로 정신병자가 안되고 버티는것이 신기했었다.

 남편은 생활비한푼 주지않았고 난 내가 다해결하면서 지내오다가 정말로 정말로 버틸힘이 없어졌고 결혼생활을 지탱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아버지는 돌아가신날부터 날마다날마다 나를 찾아오셨다.

 그리고 1992년 11월 난 만삭의 몸을 이끌고 밤차를 타고 엄마에게 왔다.

 엄마는 한마디도 안하시고 잘왔다고 이제 편히 자라고 나를 조용히 반겨주셨다.

 그런엄마를 어떻게 내엄마가 아니라고 생각을 할수 있을까?

 난 엄마의 성격이 원래 깔끔하고 좀 편안하시지는 않으셨지만 그래도 엄마가 계셔서 참 좋았고 편안했다.

 그리고 난 11월22일 우리큰아이를 낳았다.

 정말로 남편없이 아이를 낳았지만 단한번도 서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계셨기 때문에....

 그렇게 엄마는 우리 모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가 되어주셨다.

 그때 엄마가 안계셨더라면 어땠을까!

난 우리 아이와 어떤삶을 살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서러웠을까!

 난 세상에 태어난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힘이들때" 왜 날 이렇게 낳았을까 차라리 낳지말지"라는 생각을 나혼자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힘이들때 엄마가 계신다는것이 얼마나 힘이되는지를 새삼 느꼈고 다시는 "왜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했을까"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내게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런데 성격이 표현이라는것을 몰라서 단한번도 표현을 못한것 같다.

 그리고 우리세모녀는 정말로 돈이많아서 행복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산다는것으로 행복을 느꼈고 행복했다.

 IMF만 아니었다면 그행복이 더 오래갔을텐데......

 그 IMF는 우리의 행복에 금이가고 불행을 받아들일수 밖에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상황에서도 난 엄마가 옆에 계셔서 버텼었다.

 그런데 그엄마는 지금 내옆에 안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