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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2010-07-10

S#1. 병실안

6인실 병동. 초여름 답지 않은 더운 날씨다.

병실에는 2명의 환자와 보호자 아주머니 한명이 자고 있고, 나머지는 어디로 놀러갔는지 침대만 있다.

허주사의 침대에는 커다란 쇠로된 집이 지어져있고 두 다리를 모두 매달아 올려져 있다. 허주사는 혼자 누워 Tv만 보고 있다. TV는 재미있어보는게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할것이 없어서 보고 있는중이다.

용암댁이 지친기색으로 들어선다.

보호자 : 할머니 손주한테 갔다오세요?

용암댁 : (용암댁이 보조침대에 털썩 주저 앉는다. 목소리에 심술 가득 물고)며느리 한테 가서 밥 챙겨주고 손주한테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용암댁이 떨썩 앉는 충격이 허주사에게 그 울림에 허주사의 다리가 울렸는지 허주사가 인상을 쓴다.

허주사: (인상을쓰고) 어머니 좀 살살 앉아요.

용암댁: (화가난 음성으로)아..그러길래 누가 쌀쌀대고 돌아치다 다리 몽뎅이 똥강 불겨 먹으라냐? 아니 이 늙은 애미가 며느리 수발에 손주 녀석, 그것도 모잘라서 네 녀석 수발까지 들어야 하냐고..(한숨을 뒨다) 내가 이 나이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을 틈이 없이 이렇게 병실에서 병실로 왔다 갔다 해야 하냐고 말이다.

허주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용암댁: 아 아범이 됐으면 사람이 좀 진득한 맛이 있어야지.. 왜 이리 촐싹 대 가지고 일을 이리 번잡스럽게 만들어

허주사: (화재를 돌려 보려고 머리를 굴린다)아기는 어때요? 오늘 어린이날인데. 뭐 선물사줄까요?

용암댁: (허주사를 노려본다)그래도, 아범이라고 아들은 보고 싶냐? 보고 싶어도 인석아 이래가지고 어떻게 가냐. 이 커다란 집을 지어가지고 어떻게 움직이냐고. 선물은? 선물은 누구보고 사오라고. 또 늙은 어미 심부름 시킬 궁리 하냐? 그래 그렇게 아들 끔찍이 생각하는 놈이 이렇게 촐싹대다 두다리 다 불겨 먹어서, 아들한테 아범 얼굴 보여 주러도 못가게.....( 한심하다는 듯 ) 애고.. 애고...

그때 갑자기 싸이렌에 울리며 방송이 나온다.

방송: 지금 중공기가 공습을 해오고 있습니다. 모든 환자와 보호자분들은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세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갑자기 병실의 모든 사람이 분주해진다.

보호자1: (눈이 휘둥구래 지며)이게 무슨소리야? 전쟁? 중공군이 또 밀고 내려왔나보네..

환자2: (서둘러 목발을 집고 침대에서 내리며) 아 이여편네는 어디를 간거야.. 시국이 지금 이판국인데.. (복도로 나가며 외친다)여보.. 영수엄마.. 여보...

보호자1: (침대위의 남편을 일으키며) 아구.. 영만아버지.. 움직일수 있겠어요? 일어나 봐요.

환자1: (인상을 쓰고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다)여보.. 나..(일어서려다 포기하고) 어서 휠체어 좀 갔다줘....(부인을 밀며) 복도나가서 빨리 아무거나.. 다른 사람들이 집어 가기 전에 어서...

보호자1: (급하게 복도로 뛰어나갔다가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잘굴러 가는것은 벌써 가져갔네요. 이거라도 앉아 봐요.

용암댁: (안절부절 허주사의 침대위에 커다란 쇠덩어리를 이리만지고 저리만지고)

허주사 :어머니 먼저 애기부터 피난시키세요. 어멈하고요.. 어서요..

용암댁: (정신이 돌아온듯)아 그래, 애기.. 애기가 있었지..(용암댁 황급이 병실을 나간다)

병실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하나씩 부축 받으며 휠체어 타며 나간다.

모두 나간고 얼마 후 다시 용암댁이 들어왔다. 싸이렌은 계속울린다.

용암댁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용암댁: (헉헉대며) 아기는 벌써 데리고 내려갔고 어멈도 내려 가는거 보고 오는 길이다.

용암댁은 허주사의 침대 주위를 뱅뱅 돌며 어떻게든 쇳덩어리를 떼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쇠덩어리는 용암댁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용암댁은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바퀴를 고정하고 있는 레버를 열었다.

그리고 용암댁이 침대와 벽사이로 가서 등을 벽에다 대로 침대를 발로 밀었더니 침대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용암댁 얼굴이 일그러져있다.

허주사 : (몸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고개만 돌려) 어머니 뭐하세요. 어서 어머니나 피난 가세요. 이러다 어머니도 폭격 맞아요.

용암댁: (이를 악물고 침대를 민다)끙...끙

허주사: (안타까워하며)이거 어머니 혼자 힘으로는 무리에요.. 어서 놔두고 가라구요.

용암댁은 허주사 말이 안들리는 듯 아무 대꾸도 없이 계속 침대를 밀고 복도로 나간다.

입술을 꽉 깨물고 침대를 미는 용암댁의 입술이 새하얗게 변하고 얼굴을 새빨갛게 변하면서도 침대를 계속밀고 있다.

커다란 쇠덩어리 침대가 도저히 안 움직일것 같던 침대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인다. 침대바퀴, 용암댁의 땀으로 범벅된 얼굴, 허주사의 얼굴이 차례로 비춰진다.

침대는 조금씩 출입문 쪽으로 움직였다. 용암댁 앉아서도 밀고, 등으로도 밀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민다. 드디어 출입문에 다다르는데 침대하나 겨우 빠져나갈 너비에 침대가 부딪힌다.

침대는 좁은 문을 빠져나가느라 계속 쿵쿵 박는다.

허주사:(다리가 울려서 아프다)아.. 아.. 아프다니까.. 쿵쿵 거리지 말아요. 다리 울려요.

용암댁:(여전히 침대를 밀며) 아 그러니 누가 쌀쌀대다가 다리몽뎅이 똥깡 불겨 먹으래?

용암댁 이번에는 출입문족으로와서 침대의 방향을 다잡고 다시 뒤로가 밀기 시작한다. 식식 숨을 몰아쉰다. 이쪽벽에 쿵.. 저쪽에 쿵...

침대는 겨우 겨우 출입문을 빠져나온다.

S#2. 병원 복도.

침대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 하면서 용암댁이 열심히 침대를 밀고 있다. 사이렌과 방송은 계속 나온다.

허주사:(아픔에 절규하는 목소리로)아 그냥 나 놔두고 가라니까... 어머니나 피난 가시라구요.

용암댁: (헉헉 숨 몰아쉬며 침대 미는것을 계속한다)쉰소리 하지마 인석아.. 왜 하필 다리야? 걸을 수 있는 자들은 다 도망갔는데. 걸을수 없을 휠차라도 탈 수 있게 다쳐야지.. 왜 도망도 못 가게 다리를 똥깡 불겨 먹으래. 어멈하고 아기하고는 다 내려갔어. 그래도 태어난 아들녀석 한테 아빠가 어떻게 생겼는지 얼굴은 보여주고 죽어야 할것 아니야...아들새끼 얼굴은 한번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야?

용암댁은 계속 침대를 밀고 엘리베이터 있는 쪽으로 간다. 가면서 허주사와 용암댁의 실갱이는 계속된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사이렌 소리가 바꿨다. 그러나 용암댁과 허주사는 그것은 인지하지 못하고 여전히 실갱이를 하고 있다.

드디어 침대를 엘리베이터 앞까지 밀고 왔다. 용암댁이 내려가는 버튼을 누루고 그 자리에 풀석 주저 않았다. 용암댁의 몸은 축 처진 젖은 빨래 같다. 엘리베이터 숫자가 6이되고 문이 열린다. 용암댁이 다시 일어나 침대를 밀려하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우르르 내린다.

간호사:(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 놀라며)어머 할머니. (침대와 할머니를 번갈아 쳐다보며) 이 침대를 여기까지 혼자 밀고 오셨어요?

뒤이어 나오는 다른 간호사 의사 모두 놀란 표정으로 용암댁과 침대를 번갈아 본다.

의사1: (밝게 웃으며)할머니.. 이제 피난 안 가셔도 되요. 다 해결됐대요. 다시 병실로 가시면 되요

용암댁 그 순간 다리의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용암댁:(힘없는 소리로)끝났다고.?? 전쟁 났다고 안했어? 노인네 놀린 거야?

간호사:(용암댁을 부축해서 일어나며)아니요. 할머니. 저희도 전쟁난 줄 알았는데. 설마 방송에다 대고 그런 장난 하겠어요? 만우절도 아닌 어린이날요?? 그게 아닌가봐요. 이제 뉴스 들어봐야죠.(용암댁을 부축하며 일으킨다)

용암댁:(간호사 부축 받으며 의사를 보고 말한다)의사 선생님.. 나 저거(침대를 가리킨다) 도저히 다시 밀고 갈 엄두가 안나요. 여보쇼 선생님들. 나 이 물건(침대를 가리킨다) 병실로 좀 가져다 줄라우!!!

의사1:(웃으며)네 할머니. (침대를 밀고 병실로 들어간다)

간호사: 할머니. 아드님 혼자 여기서 폭격 맞을까봐 침대 밀고 가시는 거셨어요? 저거 무지 무거운데. 장정 둘도 힘들어서 낑낑대며 밀고 가는 건데요. 와 우리 할머니 천하장사시네.. 이만기랑 씨름한판 붙어야 겠네요...(호호웃는다)

용암댁:(잔뜩 골난 목소리로)늙은 사람 놀리는 거 아니야.

간호사:(할머니에게 안기며)아뇨.. 아뇨.. 할머니.. 제가 어떻게 할머니를 놀려요..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그러죠...

의사와 간호사가 4명이 침대를 밀고 병실 쪽으로 향한다. 다른 사람들 침대를 따라간다.

모두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있다.

S#3. 병실 안.

용암댁은 보호자 침대에서 코까지 드르렁 드르렁 골며 자고 있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은 뉴스를 보며 피난보따리를 풀어서 다시 정리하고 있다.

TV에서는 중공 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한 것에 관한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다.

보호자1: (짐 정리를 마치고 일어나 용암댁이 자는 보호자 침대로 와서 용암댁 자는 모습을 내려다본다)노인네가 많이 힘드셨는가보네.. 대낮에 코까지 골고 주무시니..

허주사: (보호자1을 보고 머쓱하게 웃는다) 죄송해요. 시끄러우시죠.

보호자1: (손사래를 치며)아니. 아니 시끄러워서 그런 게 아니네. 노인네가 하도 대단해서 그래.. (허주사 침대의 쇠를 보고) 이 무거운것을 어떻게 밀고 거기 까지 가셨나 몰라.. 그러니 노인네가 진이 다빠져서 이렇게 주무시는 거지.

보호자2:(일어나서 용암댁쪽으로 온다) 노인네..맨날 퉁바구나 주고 하시더니. 맨날 아들한테 퉁퉁 거려서 난.. 뭔.. 어머니가 저렇게 매정한가 했더니만... 그래도 당신목숨 안 아끼고 ... 노인네 마음이 참... (더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용암댁 이불을 고쳐 덥어 준다) 자는 모습이 참 고우시네..(용암댁을 내려다 본다)

허주사: (자고 있는 용암댁을 사랑이 가득담긴 눈빛으로 내려다 본다)

뉴스에서는 계속 속보가 나오고 있다.

S#4. 30년 후 강원도 홍천의 결혼식장.

카메라 결혼식장으로 들어서 앞에 있는 글씨를 비춘다.

‘2009년 5월 5일 허태구, 용영희의 子’ 라고 쓰여 있고, 신랑 부모님 석에 허주사와 영희가 앉아있는 모습을 비춘다.

흐뭇한 얼굴로 아들의 결혼식을 바라보는 허주사 얼굴 closeup

결혼식 위로 허주사의 내레이션.

1983년 5월5일,

중공민항기가 춘천에 불시착하던 그날.

지금 결혼하는 아들 허상구. 태어나던날.

그날, 우리 가족은 모두 원주의 한 병원에 있었죠. 아들은 신생아실, 아내는 산부인과, 저는 정형외과 그리고 어머님은 보호자로....(나지막한 웃음소리)

유난히 일찍 찾아온 더운 초여름 날의 이상한 그날이 지나고 나서도 일주일이 더 지나서야 저는 아들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죠.

온 집안 식구가 한 병원에 있었던 이 기록도 아마 흔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런 것은 기네스북 감이 안 될런지요??..허허허...

자식사랑이 투박했던 어머니. 용암댁..

어머니는, 그날이후로 그렇게 요란하게 세상에 태어난 손주가 대학들어가는 것도 보시고, 손녀도 보시고 그렇게 천수를 누리시다 낙엽 떨어지는 가을날. 아흔을 한해 남겨놓으시고, 조용히 주무시면서 하늘로 가셨죠. 평소 어머니 모습처럼.. 그렇게....

참... 사랑표현이 투박하시던 분이셨는데.

살가운 말 한마디, 부드러운 눈빛한번 안주셨는데..

제 다리에는 아직도 그때 밖아 놓은 쇠가 들어있습니다. 그 쇠를 빼러 병원을 가야 하는데.. 어찌 어찌 살다보니 30년을 가지고 살았네요.. 그런데 지금 빼려고 하니 그래도 나랑같이 30년을 살았는데 좀 섭섭하네요...

지금도 비오거나 추운 날이면 다리가 시리죠. 다리가 시릴 때마다 어머니의 그 투박한 말이 더 그리워집니다.

무거운 침대를 밀고 가시면서 쏟아내시던 말들..

어디하나 정 가게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은 충분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이제 저도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들도 장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곧 저도 할아버지가 되겠고, 내자는 할머니가 되겠죠. 내자가 할머니가 되어도 아마 어머니와는 많이 다른 모습일겁니다.

내자는 아직도 크게 웃는 소리를 들을수 없는 사람이니까요.

어머니. 오늘 어머니 손주가 늦장가 갑니다. 어멈아범이 다 숙기 없는 서푼이 들이니 아들도 장가를 빨리는 못가는 군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이 그립습니다.

(나레이션 끝)

결혼식이끝나고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모든 가족이 모인다.

가족사진이 찍히고, 정지하며 허주사의 결혼식 모습이 overlap되며 카메라는 하늘로 날아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