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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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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2010-07-10

S#1. 1년후. 허주사 집 마당.

자막: 1년후

배가 불룩한 영희가 허주사 출근 가방을 들고 나오고 있고 허주사는 오토바이를 닦고 있다.

용암댁이 부엌에서 나온다.

용암댁: (영희를 보자 못마땅한 표정으로)아가.. 오늘낼 오늘낼 하는데 뭐하러 서방 배웅은 나오고 그래. 그러다 애 빠지면 어쩌려고.

영희: (배시시 웃으며)예.. 어머니. 그래도 이렇게라도 움직여야지 안 그러면 애만 커서 날 때 고생한데요.

용암댁:(눈을 흘기며)어구 .. 이젠 그래도 대거리도 하네.. 생전 입이 붙어서 말도 못하는 줄 알았더니...(기분은 좋은 표정)

영희:(배시시 웃는다, 허주사에게 가방을 건네준다)

용암댁:(영희가 들고있는 가방을 주는것을 보며 허주사에게) 야 넌 손 없나? 가방 니가 들고 나오면 돼지 왜 배불뚝이를 시키냐? 혼자몸에 달랑 달랑 들고 나오면 되지..

허주사:(가방을 영희 에게서 받아 오토바이 뒤에 묶고 오토바이에 오른다) 어머니도 참. 남들 다 낳는 애긴데 뭐 그리 유난을 떠세요. 동네 사람들이 그러니 놀리죠.

용암댁:(허주사의 등을 때린다)아 인석 이 아버지 될 녀석 하는 말 폼세 좀 보세나. 너 임마 늙어서 따신 밥 얻어먹으려면 말 고따위로 하지마라.. 인석아.. 뱃속에 아넣고 다니는게 뭐 쉬운줄 아나.. 애비는 뭐 거저될라 하나? 그리고. 내 핏줄 내가 위하지 누가 위하나.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들 따신 밥 먹고 할짓이 없어서 남만하는거 일일이 다 신경쓰다간 내명에 못죽는다.

허주사:(오토바이 시동을 켜고 갈준비 한다)

용암댁: 오토바이 조심하고 당기고.. 난 저물건 저거 안탔으면 좋겠구만.. 다리 튼튼한데. 그냥 걸어다니지.. 뭐 저렇게 위험한 걸 타고 다니느라고...(혀까지 끌끌찬다)

용암댁의 잔소리가 익숙한 듯 영희는 조용히 웃고 있고, 허주사는 오토바이를 출발시키다.

허주사 : 다녀올게요.

영희: (허주사가는 모습을 보며)네.. 잘 다녀오세요.

용암댁: (오토바이 뒤에다 ) 그랴. 조심해서 댕겨와라...(오토바이 사라지는 것을 다 확인하고 돌아서서 영희를 보고)아가 몸은좀 어떠냐? 다르지 않냐?

영희: (뒷간으로 가려고 하면서)네.. 어머니.

용암댁: (황급히 영희를 잡더니 마루에 있는 요강을 집어주며)뒷간가서 일보지 말고 요요..요기다 일 봐라..

영희 : (얼굴이 붉어지며 창피해 한다) 어머니..

용암댁 : 야.. 야... 뒷간가서 힘주다 애 빠뜨리지 말고. 니가 첫애라 모르고 멍하고 있다가 애 빠지는 수 있다.

영희: (얼굴을 살짝 붉히며) 어머니도 참..

용암댁: (요강을 강제로 쥐어주며)아.. 밥을 먹어도 내가 더 먹었고 세월을 살아도 내가 더 살았으니까 하루라도 더 산 사람 말 들어. 나이든 사람 말 들어서 손해 날것 없다. 떡을 하나 더 얻어도 얻지.

영희가 용암댁에게 끌려 방으로 들어간다.

fade out

S#2. 허주사 방안.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새벽. 허주사는 잠이 덜깬듯 하품하며 앉아있고, 용암댁이 바쁘게 손을 놀리며 보따리를 챙기고 있다. 아기 이불을 싼 보자기가 보인다.

용암댁: (보따리를 꽉꽉 묶으며) 아범아. 국은 한 솥 해놨으니 이틀은 먹을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국 다 떨어지면 샘밭댁에게 말해놨으니 거기서 밥 챙겨 먹으시게. 굶고 다니지 말시고.

허주사: (아직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으로)네 알았어요. 어머니. (하품)

용암댁 : (허주사를 보며) 저 저 만고 편안한 인사.. 저러니 수탉의 사랑이란 말이 있지. 남자들이란 인사는 원...

허주사 : 그런데 꼭 원주까지 가셔야 해요? 아직 산기도 없는데.

용암댁: (짐 싸는 손을 멈추고 허주사를 보며) 저런.. 저런 저 답답한 인사같으니라고... 저리 답답해서 어떻게 아빠가 될지.. (혀를 끌끌찬다) 이 시골구석에 병원이 제대로 똑똑한 게 있냐?(짐을 부지런히 챙긴다)

허주사: 그래도 한승이 네도 그렇고 다 여기서 낳았잖아요.

용암댁: (짐 싸던 손을 멈추고 허주사를 처다보며)저.. 저.. 모자란 인사 같으니라고, 어멈하고 그네들 하고 똑같냐? 똑같냐고.. 어멈 나이가 얼마냐? 나이들어 애 낳으면 애고 어멈이고 다 위험 한 것이올시다...뭐든지 조심해서 해 될 것 없다.

문이 열리고 영희가 불룩한 배를 앞세우고 아기 기저귀 보따리를 들고 들어선다. 용암댁이 흠칙 놀라며 얼른 말을 돌리다.

용암댁: (영희에게) 애기 배냇저고리랑은 반다지 안에 있는데 다 챙겼나?

영희: 네 어머니. (머뭇머뭇) 그런데 저이 혼자 집에 며칠씩이나 있어야 하는데...(거의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로) 그냥 홍천 읍내에서 낳으면 안 될까요? 아범 밥도 그렇고..(말꼬리를 흐리며)

용암댁: (부지런히 짐을 챙기며) 아.. 아범이야 다 큰 어른인데, 설마 굶어 죽을까봐. 아범도 자기 앞가림을 할 줄 알고. 며칠 자기 손으로 밥 받아먹으면 되고. 그것도 못하겠으면 샘밭댁네 가서 먹으면 되고.. 그정도 빈죽도 안되면 돈만 들고 나가서 사먹을 곳이 지천인데.. 뭐가 그리 걱정을 사서 하노..

영희 : 그래도요...

용암댁 : 새로 태어날 어린것하고 니가 걱정이지. 아범 걱정하지 마라. 핏덩어리 세상 나오자마자 부모가 모질라서 잘못되면 안 되니.. 큰 병원 가야지. 암.. 암... 어른이 무식해서 어린것에게 일 생기면 안 되잖니. 어른이야 며칠 불편하면 되는 거고. 무조건 햇아 위주로 해야 한다. 햇아는 쥐면 터질새라, 불면 날아갈새라.. 그래 보듬어야 한다. (짐챙기는 손을 멈추고 허주사 바라보며 ). 그러구 키워도 키울때 뿐이지만.... (다시 짐을 챙기며) 자식은 키우는 재미만 보면 자식으로서 도리 다 했다 하는 거지만. 자식 키워 누가 덕 볼라 키울까 마는...

허주사 : 그래도 어머니 나라도 없으면 누구랑 살라구요.

용암댁 : 너 없으면 훨훨 날개옷입고 날아가면 되지.. 왜. 내가 소싯적에 그래도 한인물 했다..

영희 :( 배시시 웃는다.)

용암댁 : 저저.. 며느리가 시엄니 비웃네..

영희 : (웃으며)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어찌 어머니를 놀려요...

허주사 : 우리어머니 소싯적에 시작하시는거 보니 가시긴 가셔야 겠네요.(용암댁 어깨를 한번 꽉 잡고 일어선다.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표정)

용암댁 : 어디가시게?

허주사 : 오토바이 이슬 떨어졌을테니 닦으려고요.

용암댁 : 자네는 더 주무시지 그러나.. 우리는 걸어서 가면 되는데.. 아직 동틀려면 한참 있어야 하는데.. 눈좀 더 붙이시게..

허주사 :(나가며)배불뚝이와 꼬부랑 할머니가 짐 들고 뒤퉁 뒤퉁 가다가 넘어지면 안되죠. 아범은 뭐 거저 되나요!!

영희 : (웃는다)

용암댁 : (허주사 나간다) 아범이 되더니. 왜저리 능구렁이가 되가???

영희는 웃으며 짐을 챙긴다. 용암댁도 짐을 마무리정리 한다..

S#3. 버스 정류장.

이제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기 시작하고 있다.

허주사 오토바이에 짐이 가득실려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허주사가 짐을 끌러서 내려놓는데 용암댁과 영희가 걸어오고 있다.

용암댁:(영희에게)야야 천천히 걸어라..(허주사를보며)자네는 짐 내려놓고 출근하시게.

허주사:(무뚝뚝한 투로)네.. 버스 타는것 보고요.

영희:(허주사에게) 당신 양말이랑은 맨 아래서랍에 있고요...

허주사:(귀찮은 듯)알아.. 여기 걱정말고 아기나 순산해.. 옷은 좀 따시게 입지.. 거 감기라도 걸리면 약도 못쓰는 사람이..... 원주까지는 세시간은 족히 걸릴 거야. 읍내까지 버스타고 가서 다시 직행버스 갈아타고 하려면. 멀미약도 못먹으니.. 껌이라도 사서 씹어요. (용암댁을 보고 퉁명스럽게) 돈 아끼지 말고 어머니도 밥 사 자셔요. 돈 아낀다고 굶지 말고. 알았죠.

용암댁: 아. 나. 안 굶어. (뭐가 생각 난듯) 참. 허영감 한테 오소리 부탁해 놨다. 그거 가져오면 돈 주지 마라. 돈을 내 갔다 와서 줄 테니. 아범은 부르는 대로 다 줘서 안돼... 알았지. 절대로 주면 안 돼. 그 여시같은 영감 꼭 비싸게 부르더라고.

허주사 : 오소리요?

용암댁 : 산모한테 오소리 만한게 없다. 내 벌써 반년전부터 부탁해 놓은거다.

허주사 : 그거 가져오면 어떻하라고요. 그냥 집에 놔두면 썩을텐데..

용암댁 : (답답하다는듯 처다본다) 이래서 남자는 아무리 많아도 다 쭉정이라고... 어떻하긴 뭘 어떻해? 약방 가져다 주고 다리면 되지. 읍내, 한약방가면 한약재 넣고 다려주는데.. 반드시 다리는거 지켜봐야지 안그러면 약재를 다른것을 넣는다더라.

허주사 : 그걸내가 어떻게 읍내까지 들고 나가요.

용암댁 : 못할거같으면 허영감에게 손질해 달라고해서 냉장고에 넣어놔.. 며칠은 괜찬으니까.

버스가 들어온다.

용암댁 : 저 버스오네..

영희 : 밥 거르지 말고 챙겨 드세요.(버스에 오른다)

허주사 : 앞이나 보고 올라가요. 그러다 엎어질라.

용암댁 : (먼저 올라간 영희를 보고) 야.. 아가.. 앞으로 앉아라. 뒤에 앉으면 버스가 널뚸서 안돠.

영희와 용암댁이 버스앞에 자리를 잡고, 허주사가 짐을 들고 버스에 올라 용암댁 다리앞쪽에 짐을 넣어준다.

운전기사 : 일찍나가시네요. 며느님이 산끼가 있으신가 보네요.

용암댁 : 네.. 그러니 살살 몰아주시게...

운전기사 : 길이 그런데.. 그래도 살살 몰아볼게요..

허주사 : (운전기사에게 인사하며)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허주사 내린다)

버스는 출발하고 허주사는 버스가 출발하고도 한참을 보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간다. 이젠 훤하게 동이터서 마을이 다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