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1. 마을회관 앞
동네 잔치가 열리고 있다. 용암댁은 잔치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참견하느라 바쁘다.
마을회관 앞마당에 혼례상이 차려지고 신랑은 허주사, 신부는 영희.
영희는 족두리에 연지곤지하고 마을회관 옆 방안에 앉아있다. 문밖에는 신부구경 하러온 동네 아낙네들이 온갖 수다를 떨며 영희를 보고 있다.
아낙1: 아고 신부가 참 참하게 생겼구만.
아낙2: 누가 아니라나. 아이고, 허주사가 이리도 참한 신부 얻을라고 그리 지어미 속 썩이고 장가를 안갔구만..
용암댁 방으로 들어서면서 우악스럽게 아낙들을 밀쳐낸다.
용암댁: 아니 왜 새 신부 앞에서 입방아 질이여. 어서 가서 일해.. 국솥에 국이 졸고 있는지 넘치고 있는지 좀 보란 말이야. 그리고 전은 다 된 거야?
아낙들 뒷걸음질로 돌아가며 용암댁을 놀린다.
아낙들: 애고.. 저 성님 저 입 꼬리 올라간 거봐.. 저 입이 오늘 찢어지기라도 하겠구먼...
용암댁: 어서 가서 일안해. 어디서 어른을 놀리고 그래..(그래도 용암댁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질 않는다.)
아낙1: 울성님 저 괜싫히 저 역정내는 시늉하시는거봐.. 성님 울앞에선 안그래도 되요..
아낙2:(장난기 가득 신이나서) 형님.. 이제 그 배냇저고리 쓸 날이 조만간 오겠네요. 벌써 형님이 그거 언제 만들어 놨수?(기억을 더듬는 듯) 우리 한승이 첫애 날 때 그때 같이 해 놓은 거 아니요? 그거 그때 최고 좋은 감으로 끊었지 아마... 호호...
아낙1: (박수까지 치며) 마자.. 그때 그거 아마 쌀 한말 값은 줬지.. 울 형님 그거 언제 쓰나 언제 쓰나 안달 했는데.. 이제 드디어 소원 풀었네...형님...
용암댁: (발까지 구르며) 어서 가서 일하라니.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지 말고..
아낙들 그래도 웃으며 천천히 나간다.
용암댁 아낙들을 쫓아 보내고 영희에게 다가앉는다.
용암댁: 저 여편네들이 입이 좀 걸어서 그렇지 악의는 없는 거니까. 넘 맘상하지 말고..(영희의 옷매무새를 이리저리 만지며 다듬어준다)
영희: (용암댁을 바라보고 배시시 웃는다)
S#2. 마을회관 한쪽 옆.
닭을 잡느라 남자2명하고 마을아낙 두 명이 난리를 피우고 있다.
아낙6: (제일 크게 예쁜 닭을 가리키며)아니 저거 잡아야 한다니까.
아낙7: 아 다치면 안 돼.. 살살 잡아요. 혼례상 올릴 건데.. 다치면 안돼요..
남자1: (갈고리를 들고 이리저리 닭을 잡으러 뛰어다니나 닭들은 잘도 피한다. 씩씩거리며 아낙들을 돌아본다)아 그럼 임자가 잡든가. 거 참.. 다시 닭을 향해 간다.
남자2:(구경하다 팔을 걷어붙이고 앞으로 나선다)아 형님 그 닭 잡는 거 기다리다 오늘 안에 식 못 올 리 것 수??? 인줘 보수.(남자1에게서 갈고리를 받는다)
남자1:(갈고리를 넘겨주며)닭이 그래도 명색이 날개 달린 짐승인데 그리 쉽게 잡힌다고 하더냐?
남자2: (손에 퉤퉤 침을 뱉고 가장 크고 멋있는 닭이 있는 데로 살금살금 간다, 갈고리를 닭다리 아래쪽으로 가만히 밀어 넣더니 탁 잡아챈다.) 거 보슈..
의기양양한 남자2는 닭을 여자들에게 준다.
아낙6: (뒤로 물러서며)아이 걸 그냥주면 어떻게. 날아가. 다리랑 날개랑 묶어서 줘요.
남자1: (남자2에게서 닭을 빼앗으며) 이리.. 내.. 이쁘게 화장시켜서 상에 올리게..
남자1이 닭을 들고 가고, 여자들이 청홍 보자기를 가지고 따른다.
S#3. 마을회관 앞 혼례장소
혼례상위에는 아까 잡은 닭을 잡아 청홍 보자기에 싸서 올려져있다. 닭은 화가 난 듯 꾸룩꾸룩 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벼슬을 흔들고 있다.
옆에 큰 솥에서는 소머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고, 회관 안에 신부 구경하려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는 바람에 신발이 모두 납작해져버렸다.
마을 처녀들은 마을회관 여기저기를 한지로 만들 꽃으로 장식하고 있고, 미처 말을 준비못한 동네 남정네들은 나무 사다리를 말 비슷하게 꾸미고 있다.
동네 어린이들은 전부치는 곳에서 전을 하나씩 받아들고 신나서 뛰어간다.
카메라가 이 모든 것을 한번 씩 비춘다.
S#4. 허주사 집 앞
사모관대를 입은 허주사가 집밖으로 나고 있다.
집 앞에는 장식을 한 사다리와 가마꾼행색을 한 4명의 마을 총각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닥에는 꽃으로 꾸민 나무 사다리가 놓여있다. 동네 아이들과 구경꾼들이 둘러서 있다.
허주사 집 앞으로 나와 사다리 사이에 다리 하나씩을 거치고 사다리를 탄다.
가마꾼들이 사다리를 들고 일어선다.
청년1: (큰소리로)자 신랑행차요.
청년2: 오래 묵은 산삼 신랑 행차요.
청년1이 다른 가마꾼들에게 눈을 찔끔하고 신호를 보낸다.
청년3:(일부러 업어지는 듯 한 액션으로)아이구.. 아이구.. 가마가 왜 이리 무겁나??
균형이 무너지면서 가마위의 허주사가 한쪽으로 쏠렸다.
허주사:(인상을 쓰며 사다리를 꽉 잡는다.)아.. 아... 조심해.. 떨어지겠다.
청년1: 우리 형님 이거 너무 무겁네.. 노총각 묵은 때가 겹겹이 쌓였나..???
다른 가마꾼들 번갈아 넘어지는 시늉을 한다.
조금 가다 이번에 가마가 산으로 올라간다.
허주사:(당황하며)야. 여긴 길이 아니잖아.. 길은 저기라고
청년들 노래 한 자락을 하며 가마를 올렸다 내렸다하고 어깨에 메고 뛰기도 한다. 그럴 때 마다 허주사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허주사:(몹시 일그러진 얼굴로)야야.. 살살 가라... (팔로 사다리를 꽉 쥐고 있다)
산에 나뭇가지가 허주사의 얼굴을 때린다.
저만치서 용암댁이 걸어오다 가마를 발견하고 급하게 뛰어온다.
용암댁: (가마꾼들을 말리며)아.. 이러지들 마라.. 사타구니 다 헌다.(치마를 젖히고 주머니에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서 맨 앞의 남자1에게 찔러준다) 아 이러지마.. 다 까지면. 오늘 첫날밤 못 치룬다고... 늦장가 가는데.. 자식을 제때 봐야 할것 아니야.. 자 자 이 걸루 탁배기로 목 좀 축이고.. 우리 태구.. 살살 좀 모셔줘...(어르는 표정으로)
청년1: (다른 가마꾼들에게)우리 어머니 부탁인데 좀 살살 가줄까?
청년들: (모두 신이 나서)아니 그럼 안 되지..
청년1: 삼십년도 더 묵은 노총각 딱지 때는데 요걸로는 어림도 없지. 아 안그런가?(큰소리로) 술도 오래되면 더 깊은 맛이 난다는데.. 이정도로는 신부한테 곱게 못넘어가지... 암.. 암...
용암댁: (다시 쌈지에서 돈을 꺼내준다)아 이젠 없어. 이거 다야. 내 잔치 끝나고 돼지고기 쏩세.. 탁배기도 다섯 퉁자 낼게... 왜들 이러나... 술도 너무 오래되면 못써... 자.자. 어서 이거 받게나.. 좀 살살 해줘.
청년2: 우리 용암댁 아주머니가 겨우.. 이정도 통밖에 안돼요!! 천하의 용암댁 아주머니가.. 자 안돼겠다. 여보게들 크게 한번 놀아보자구...
청년들 : 네..(일제히 만세를 부른다. 가마가 공중에 오르자 허주사 납작 업드린다.)
허주사 : (벌벌떨며)야.. 상철아.. 형좀 살려줘라.. 아프다.. 이.. 이 나무. 다듬도 않아서 가시 밖힌다.
동네 사람들 : (소리지른다) 허주사 엄살이 심하다. 한번더해라...
청년들 : (신나서) 네.. 자 한번더...
용암댁 : (가마꾼 청년 팔에 매달린다) 아고.. 아고.. 왜들이러시나.. 내.. 내.. 내좀 봐서라도 좀 봐주게나..
청년1 : (청년들과 동네 주민들 눈치를 한번 살피고.)그럼 용암댁 아주머니 노래 한자락이나 들어볼까나...
동네사람들 : 거 좋지.. 어디.. 옥황상제도 못들어 봤다는 용암댁 노랫가락좀 들어보자고.
용암댁 : 아고. 여보게들.. 나 노래란것 못하네... 제발좀.. 이 내.. 얼굴좀봐서 딱한번만.. 봐주게.
청년1: 안돼지.. 천하에 용암댁 아주머니 노랫가락 들을수 있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텐데.. 안돼지.. 그치 여보게들...
청년, 동네사람들 : 암암...암....
동네 사람 : 거 용암댁 그렇게 밍기적 거리면 허주사 사타구니 다 까진다고. 어여 한가락해.. 춤도 덩실덩실 춰보고.
용암댁 : 이보게들.. 평생 땅파서 먹고사는 과부가 무슨 노래를 할줄 알겠나... 제발 이러지들 마... 내 읍내 기생들 불러다 줄게.. 이보게들....
청년들 : (순간 솔깃한 표정. 그러나 이내..다시 장난기 서린 표정으로 바뀐다) 우린 분칠한 기생보다 용암댁아주머니 노래가 더 듣고 싶어요.
가마꾼들 흥겹게 가마를 들고 가고, 구경꾼들은 더 부추긴다. 용암댁은 계속 가마꾼들을 달래며 안절부절 가마를 따라간다.
카메라 멀리 멀어져 가는 사다리 가마를 비추다 fade 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