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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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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2010-07-10

S#1. 창촌 마을

카메라 마을 전경을 멀리서 비추고 있고, 우편배달 차량이 마을로 들어가고 있다.

카메라 소 쟁기로 밭을 가는 농부와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들을 죽 비추며 우편배달차량을 향해 다가간다.

자막: 1982년 5월 강원도 홍천군 창촌

소 쟁기로 밭을 가는 어르신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울린다.

우편배달차량은 소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어르신 앞을 천천히 스치면 큰소리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황기사 : 안녕하세요??(큰소리를 지른다)

농부 : (쟁기질하며 노랫가락은 멈추지 않고 손으로만 인사를 한다)

우편배달 차량은 계속 간다.

S#2. 창촌 우체국 안

매우 작은 사무실.

33살의 허주사와 20살의 한 청년이 업무를 보고 있다.

청년 : (지루한듯 기지개를 켜다 무엇을 발견했는지 반갑게 일어선다) 허주사님 황기사 아저씨 오셨네요.

허주사 : (고개를들어 문밖을 본다)

두사람 일어나 문밖으로 나간다.

S#3. 창촌 우체국 앞

우편배달 차량이 우체국 앞에 막 들어선다.

허주사와 청년이 기다리며 서있다.

황기사는 편지 한통을 흔들며 내린다.

황기사 : (편지를 흔들며) 오늘은 그래도 이거 한통이라도 있어서 30분달려온 보람이 있네요.

청년 : (편지를 받으며 활짝 웃는다) 그래도 황기사님이라도 매일 이렇게 오시니 여기가 우체국인줄 알죠, 안그러면 여기가 농기계수리센터인지, 농촌진흥청인지 몰라요.(입을 삐죽대며 허주사를 흘긋 본다)

청년의 농담에 모두 껄껄 웃으며 모두 우체국 안으로 들어간다.

카메라. 창촌 우체국이라는 간판을 비추고 우체국 안으로 들어간다.

fadeout

S#4. 창촌 우체국 안 / 며칠 후

조용하고 무료한 봄 낮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고, 허주사와 청년이 일하고 있다.

그때 한 할머니가 손에 편지를 들고 들어선다.

할머니1: 허주사..

허주사 : (반갑게 그리고 친절하게)네 할머니.. 어떻게 오셨어요?

할머니1: (들고 있는 편지를 허주사에게 건네주며) 우리 딸이 이거 보냈는데. 이거 읽어줘.. 도통 눈이 어두워서 말이야.

허주사 :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에게 간다)아. 네 그러세요.. 그래야지요.

허주사가 할머니를 소파에 앉히고 따뜻한 차 한 잔을 타서 할머니께 드리고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허주사가 할머니에게 편지를 읽어주는 모습이 소리 없이 화면만 보이며 카메라 우체국 밖으로 나오면 fadeout.

S#5. 우체국 안 / 오후 4시

청년이 매우 못마땅한 얼굴로 서있고, 우체국 바닥에 온통 흙덩어리가 떨어져 있다.

허주사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쟁기를 손질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그런 허주사를 옆에서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청년은 한참을 인상 쓰고 쳐다보고 있다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할아버지1: (아주 흐뭇한 얼굴로) 우리 마을엔 허주사 없으면 안 돼.. 허주사 없으면 이런 거 고치러 읍내까지 가야하는데 그러면 하루 다 까먹어. 농사꾼한데 농번기 하루가 읍내사람 한 달인데. 지금 제때 씨 뿌리지 않으면 일년 농사 다 망쳐.. 우리 허주사.. 박사야. 박사.. 만물박사야... 우리동네 보배라니까..

청년이 마대 걸레를 들고 들어온다.

청년: (바닥에 흙을 닦으며) 할아버지 이렇게 흙 떨어지는 것은 들고 들어오지 마세요. 이거 닦기가 얼마나 힘든데요.. (할아버지가 일어나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자꾸 밟고 다니지 마세요. (청년이 할아버지 발아래에 걸레를 바짝 들이대며 닦는다.)

할아버지 : (발을 들어주며)허주사 반만 되라. 뭔 젊은 사람이 그리 뾰족하냐. 우리 허주사 봐라. 사람이 이 정도는 돼야지..

청년: (한참 씩씩대며 닦고나서 걸레를 들고 나가며)할아버지 우리 허주사 같은 분 세상에 더 없어요. 너무 욕심 내지 마세요.

허주사는 아무것도 안들리는 듯 열심히 농기계를 손보고 있다.

S#6. 우체국 안.

퇴근시간이 넘어서 정리를 하고 있다.

허주사와 청년 책상에 앉아 마감을 하고 있다가 청년이 화장실로 간다.

낫선 얼굴의 한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우체국 안으로 들어선다.

여자: (허주사 쪽으로 다가오며) 저.. 전보 치러 왔는데요.

허주사: 네.. (고개를 들어 손님을 쳐다본다. 갑자기 얼굴이 발개지면서 손을 떤다) 저저저저저... 저저저기... (업무 마감됬다는 소리를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다.)

여자:(이상하다는 얼굴로.. 목소리를 높여 큰소리로..그러면서 장난기가 살짝 비춘다.) 저.. 전보 치러 왔다고요. (잠깐 기다리다 허주사를 보고..)여보세요? 여보세요. 어디 아프세요?

허주사: (이젠 거의 말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다.)

그때 화장실 갔던 청년이 들어서면서 다급하게 손님에게로 간다.

청년 : 어떻게 오셨어요? 지금 업무...(끝났다고 말하려다 여자를 보고 마음에 드는지 얼른 말을 멈춘다)

여자: (청년쪽으로 보며)전보 치러 왔어요.

청년:(순간 여자 얼굴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이쪽으로 오세요.(여자에게 전보용지를 꺼내주네) 아네. 전보요.. (전보용지를 가리키며)여기 보시면 칸이 있죠. 한 칸에 글자 하나씩 쓰시면 됩니다.(여자에게 상당히 가깝게 얼굴을 들이대고) 글자 많이 쓰시면 돈이 많이 나오니까 꼭 필요한 말만 쓰세요.(여자를 향해서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여자: (얼굴을 뒤로 빼며)아 ...네.. 고맙습니다.(테이블로 가서 종이에 글자를 쓰고 다시 창구로 가져온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청년: (용지를 받아서 확인한다) 네.. 아주 글씨도 이쁘게 쓰시네요... 여기는 ..할머니 댁에 오셨나보네요. 어느 어르신 댁이신가? 덕칠네는 전화가 있으니 아니겠고..(여자 눈치를 보다가 여자가 별 반응이 없자 말을 돌린다) 요금은 600원입니다, 오늘은 업무가 마감되서 전보는 내일 아침에 들어갈 겁니다.

여자: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한다)여기요. 600원이요.

청년은 여자에게 계속 말을 건다. 여자을 시큰둥하게 말을 받아준다. 허주사는 덜덜떨며 계속 책상만 바라보고 있다.

여자: (허주사를 안쓰러운듯 처다본다) 저 저분 어디 아프세요?

청년: (허주사를 흘긋보고) 네.. 열감기가 오셨대요.

여자: (새침하게)그러세요.. (뭔가를 안다는 웃음) 감기를 무지 심하게 앓으시네요.(청년을 보고) 저는 농활 왔어요. 기왕이면 일손 보태는 것 할머니 댁에 봉사하려고요.

청년: (화색이 되어)어 그럼 대학생이세요? 우와 멋있다. 대학생이구나. 어쩐지 글씨가 이쁘더라.(음흉한 미소로) 언제까지 여기 계세요?

여자: (여전히 새침하게)내일 모래까지요. 우리. 오늘 도착했어요. 모내기 하고 올라갈 거예요.

청년: 어느 어르신 댁이 신데요.. 여기가 워낙 좁은 동네라..

여자: 외삼춘이. 배추농사 크게 지으시는 분이세요. 이 동네에서 제일 크다고 하시던데요.

청년: 아!! 달식이 형님네네요.. 그럼 순자누님 따님이세요?(반가운척 오버한다)

여자: (이젠 경계를 푼 듯한 모습)우리엄마 아세요?

청년: 그 누님하고 어려서 이 동네 온산을 다 뒤지고 다녔죠. 야.. 누님이 미인이시니.. 따님도 미인이시구나..

여자:(고개를 갸우뚱)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엄마보다 한참 아래신것 같은데요.

청년:(좀 당황하며) 아.. 제가 좀.. 사람이 좋아서.........(말을 얼버무리며 허주사를 보다가 생각이 난듯)참.. 우리 허주사님하고 아마 국민학교 같이 다녔죠? (허주사를 보며 지원을 요청하는 눈빛으로)그쵸 허주사님.. 순자누님 기억하지죠.. 서울로 시집간 순자누님이요.. 순자누님하고 허주사님 같이 학교 다니셨죠.. 그쵸..

허주사:(땀을 뻘뻘 흘리며..)아...... 니......(겨우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청년:(당황하며)아니... 저.. 순자누님 6학년때 허주사님 입학했잖아요. 그래서 순자 누님이 매일 허주사님, 코닥아 주고 데리고 다녔다고 하셨잖아요...

여자:(웃으며 허주사에게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안녕하세요..

허주사:(거의 실신 직전)아..안.. 녀....엉..... 하.....

여자:(무척 재미있다는 듯) 아저씨.. 저.. 주흰데요.. 어릴때 가끔 왔었는데.. 저 전혀 기억못하세요?

허주사:(그제서야 겨우 얼굴을 들어 여자를 본다) .....

여자:(재미있어서 깔깔 넘어간다) 아저씨.. 저 .. 정말 기억못하세요? 아저씨가 저 니아카 태워주셨었는데.. 무 발로 차서 먹는 것도 아저씨가 알려주셨는데..

허주사:(얼굴에 웃음이 서서히 번지며..) 아... 아....

여자:(허주사 쪽으로 얼굴을 바짝 디밀며) 아저씨.. 너무한다.. 하나도 기억못하시고.. 저 국민학교때 여기와보고 몇 년만에 처음온거에요.. 아저씨 그때 그대로시네요...

허주사:(이제야 숨이 안정을 찾는듯하다) 그그..그래.. 마마... 많이 컸구나.. 와.. 완.....완전히 아가씨네.. 모모......못알아 보겠다..

여자: (쌩끗 웃으며)아저씨 나중에 놀러올게요. 오늘을 도착한지 얼마 안되서 할 일이 있어서요.(우체국을 나서며) 어머니께 안부 전해 드릴게요..(청년을 보고)그럼.. (전보) 부탁드리겠습니다.

청년:(자리에서 일어나 여자를 따라가며) 네... 내일 또 오세요...

여자는 인사를 하고 우체국을 나간다. 청년은 우체국 문 앞까지 나가서 배웅한다.

여자는 우체국을 나가면서 다시 한 번 너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허주사를 쳐다보고 윙크를 하고 나간다.

허주사는 손수건을 꺼내서 뻘뻘 흘리던 땀을 닦으며 그 자리에 앉아있다.

여자가 나가자 허주사 그제야 한숨을 몰아쉰다.

청년: (물을 떠다 허주사 앞에 내민다) 괜찮으세요?

허주사:(물을 한 모금 마시고)어 고마워.(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청년: 참 허주사님도. 거기서 아니라 그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허주사:(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뭐.. 뭐... 뭐가? 내가 뭐라 그랬어?

청년:거기서 순자 누님하고 같이 학교 다녔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그러면 제가 뭐가 됩니까? 허주사님도.. 참... (군침까기 다시며) 그아가씨 성격도 좋고, 역시 순자누님이 이쁘니까 딸도 인물이 대단하네요..

허주사: 그래도 아닌것은 아니지.. 순자누나랑 나랑 나이차이가 얼만데 같이 국민학교를 다녀!!

청년: (컵을 가져다 두러 가며)하여간.. 몰라요...(컵을 놓고, 허주사 돌아보며) 그리고 세상의 반이 여자고 또 그 반이 젊은 여자인데. 그러시면 어떻게 세상 살아가시려고 그러세요.(장난기 발동한 표정으로) 저 허주사님. 우리 일 끝나고 탁배기 한잔 하시죠.

허주사 :(군밤을 청년에게 주며) 달식이 집이 점포니까. 가면 자연스레 얼굴 마주칠수 있나하고? 머리쓰는 거 누가 모를 줄 아냐?

청년 : 우리 한번 대학생 구경 좀 하자구요. 그리고 허주사님도 장가가셔야 하잖아요. 좋은 색시감 있나 한번 가보시죠. 대학생들 농활 나왔다는데.. 게네도 일 끝나고 점포에 가지 않겠습니까?

허주사 : 됐다.. 너나 가봐라.. 난 숨쉬고 살아야 겠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얼만데. 도둑놈도 상도둑이지..

청년은 신이 나서 말하고 있는데 허주사는 그냥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체국 문을 멍하니 한참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