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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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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BY 유빈 2010-10-15

그가 군대에서 제대하던 그 해 여름은 유래없이 폭염이 계속돼 연일 최고기온을 갱신하던 때였다.

제대하던 날 부대 앞까지 마중 나온 친구들과 그 길로 동해바닷가로 떠난 그는 일주일을

아무생각없이 친구들과 놀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다.

자기만 없으면 여느 평범한 가정의 모습일텐데 자신으로 인해 그 어색함과 냉랭함이 도는 분위기가 싫어

도망치듯 들어간 군대였는데 이제 다시 돌아가야하다니...

예정했던 일주일을 채우고 떠나기로 한 날, 여자들끼리 놀러온 옆 방에서 합석을 하자고 제의해왔고

그의 일행은 망설일 것도 없이 그녀들과 어울려 사흘을 더 그 바닷가에서 뜨거운 여름을 만끽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학기에 등록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열심히 학점을 따고 취업준비를 해서 졸업하면 바로 독립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 그 앞에 지난 여름 바닷가에서 만나 사흘을 보낸 그녀가 나타났다.

헤어질 때 학교이름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는데 그동안 소식 한번 없다가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강의실 앞에 그녀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두달만에 만난 그녀가 낯설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제대로 눈도 못마주치고 근처 학생식당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너무나 황당하고 놀라운 소식을 듣고 말았다.

그녀의 뱃속에 그의 아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었고 딱히 사랑의 감정이 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그녀의 뱃속에 그의 아이가 있었고 그는 간절히 그만의 가정을 원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는 제법 자수성가한 알부자였고 그가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했을때

아무말 없이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주고 졸업할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대주기로 했다.

그로써 그는 그가 원했던 그만의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들만의 단란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그리고 그의 아이에게 최선을 다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밖에서 호탕한 그가 집에서 그렇게 자상하고 세심한 남편이란 걸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아이가 고물고물거리기 시작하자 그는 가슴이 벅찼다.

그는 가족과 함께 집에서 뒹구는 게 더없이 좋고 행복했다.

아이에 대한 욕심도 많아 자기만의 가족을 자꾸 늘리고 싶었다.

그는 서른도 되기 전에 세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