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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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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BY 유빈 2010-09-02

그가 가볍게 저녁을 먹자고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작은 와인바였다

흑백의 심플함이 돋보이는 인테리어는 한쪽 벽 면 가득 진열 된 와인 병과 잘 어울려

세련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늘은 일행 분이 계시네요.”

카운터에 있던 꽁지머리의 남자가 눈인사를 하며 아는 척은 한다.

그는 익숙한 듯 꽁지머리 남자와 몇 마디를 주고받더니 카운터를 돌아 파티션으로

적당히 가려진 코너의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이 집 스파게티가 그런대로 먹을 만해. 가볍게 와인 한 잔 정도 같이 하기도 좋은 곳이지.”

“자주 오시는가 봐요?”

“뭐....혼자 저녁 먹기 싫을 때 종종 들리는 편이지...아까 카운터에 있던 그 친구가 말벗이 되어주거든.”

“혼자 저녁 드실 일이 자주 있으세요...? 집으로 바로 가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는 나와 카풀을 한 이후 한 번도 저녁약속이 있다고 한 적이 없었다.

나를 집 앞에 내려주고 미련 없이 떠나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참 착실한 남편이구나 생각했었다.

나 역시 그와의 퇴근시간이 즐거웠기에 가능하면 평일 저녁엔 다른 약속을 잡지 않았었다.

그가 혼자 저녁을 먹어야하는 상황을 알았더라면 같이 먹어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야속함이 밀려왔다.

까만 허리 앞치마를 두른 젊은 남자가 해산물이 듬뿍 든 크림 스파게티와 봉골레 스파게티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와인잔과 병을 세팅하고 물러갔다.

“이건 스파클링 와인이라서 술이라는 느낌보다 가벼운 탄산음료같이 느껴질거야.

그렇다고 너무 많이 마시진 말고.”

그가 웃으며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르자 작은 기포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혀 올라왔다.

그가 건네는 잔에 가볍게 부딪히고 입에 대어보니 달콤한 과일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와~이거 너무 맛있는데요? 음...과일 주스 같기도 하고...이거 와인 맞아요?”

“하하하 이거 큰일이군. 그렇다고 와인을 너무 얕보면 안 돼. 아무리 도수가 낮아도 술은 술이니까.”

그가 웃는 모습을 보자 덩달아 유쾌해졌다.

맛있는 음식과 달콤한 와인....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자꾸만 마음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다.

꿈인 것만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