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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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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편


BY 유빈 2010-07-24

"어땠니? 응? 무슨 얘기 했어? 맘에 안들었니? 왜 이리 일찍 왔대? 밥도 안먹고 온거야?"

엄마의 질문은 끊일 줄을 몰랐다.

뭐 별로 할 말도 없는데 엄마는 계속 졸졸 따라다니며 채근이다.

"아, 몰라...나 다시는 선 안봐!"

"그게 무슨 소리야? 빨랑 얘기 안 해? 어떻던데? 영 아니었니? 그럴리가 없는데...

수민이아줌마가 아무나 소개시켜 줄 사람도 아니고 그 청년 꽤 괜찮다고 그러던데.."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이리저리 살핀다.

"너...혹시 니가 퇴짜 맞은거야? 우리 딸이?"

나는 어이가 없어 엄마를 한번 흘겨보았다.

"나, 옷갈아입을래.. 나가주세요~ 별루 할 얘기 없다니까 그러네..아, 좀 나가 줘!"

일단 맞선자리에 내보내기만 하면 당장 내가 연애라도 할 줄 알았던지 엄마는 꽤 실망한 눈치를 보이며 마지못한듯 방을 나선다.

차승현...스물아홉이라던 그 남자는 평범했다.

서른 되기 전에 결혼할 여자 데려오라는 부모님 성화에 맞선자리에 나온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무난한 대학을 졸업했고 적당히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절대 딴 짓할 것 같지 않은 고지식함까지 엿보였다.

그뿐이었다.

남들..특히 엄마가 들으면 뭐라하겠지만 내가 아직 연애를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필"...바로 그 놈의 "필"때문이다.

소녀적 감상이 풍부했던 그 시절부터 내가 꿈꾸던 이상형은 첫 눈에 "필"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냥 딱 만나면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 인연은 맞선 따위로 만날 수 없는 거 아닌가.

우연히 서점에서 같은 책을 집는다던가....누군가가 필요한 순간에 짠~하고 멋지게 등장해주는 극적인 효과가 필요했다.

운명적인 사랑이 올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엄마가 아무리 선을 보라 구박해도 꿋꿋이 견디어 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선을 보기로 한건 엄마와의 싸움에 지치기도 했지만

어쩌면 내 운명의 상대가 맞선남일 수도 있다는 한가닥 희망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만난 첫인상은 너무 평범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역시나 운명적인 상대는 맞선자리에서 만나는 건 아닌가보다.

앞으로 다시는 맞선같은 거 안봐야지...그렇게 결심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