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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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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BY 유빈 2010-07-20

흐느끼다 잠이 깨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가슴 아프고 서러웠던지 뒷울음이 남아 잠이 깨고도 한동안 흐느낌이 멈추질 않았다.

꿈을 꾼듯한데....현실처럼 선명했던 꿈이 깸과 동시에 한순간 펑하고 피어오른 연기처럼 흩어져 아무것도 기억 속에 남아있질 않다.

아직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며 가슴이 저릿해서 한 손으로 눌러본다.

사고가 난 후 한동안 자다가 놀라 깨는 바람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었다.

그래도 그동안 꾸준히 병원 상담치료도 받고 남편덕분에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차츰 꿈도 없이 달게 자는 날이 많았었는데...

아직 날은 밝으려면 멀었고 남편은 곤히 자고 있다.

누워도 다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무언가 가슴에 얹힌듯 마음이 무겁다.

꿈탓인가....하지만 그 꿈조차 무엇이었는지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가득 받아놓고 바구니에 담긴 향초를 골라본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라벤더와 감미로운 향의 자스민..둘 다 즐겨 쓰는 향이지만 오늘은 조금 더 상쾌하게 시작하고픈 마음에 로즈마리에 불을 밝힌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아릿했던 가슴에 훈기가 돌듯 서서히 평온해짐을 느낀다.

눈을 감고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되새김하듯 떠올려본다.

기억의 한부분이 칼로 베듯 깨끗하게 잘려나가버렸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무 불편이 없다.

그 기억쯤 없어도 그만인듯...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라 있으나 없으나 별 상관없는 그저그런 나날이었던 걸까...?

승미는 대학때부터 사귀던 준수와 결혼해서 귀여운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첫미팅때 만난 두사람은 각자 마음에 두고있는 사람이 달랐음에도 결국 인연의 끈은 부부의 연까지 맺게하다니 그때는 정말 꿈에도 몰랐을 일이었다.

내 사고소식에 놀랐던 주변사람들도 이젠 내가 지난 10년간의 기억이 없다는 사실조차 잊은듯 하다.

모든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융화가 되나보다.

스물여섯...한창 꿈도 많고 젊음이 싱그러운 나이였지만 반면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스럽고 궁금하던 시기였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항상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며 상상하기 바빴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순탄하게 지내온 나의 10년 세월에 고마운 마음도 든다.

밖에서 남편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에 얼른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부부라고는 하나 아직 맨몸을 보이는 게 무척 부끄러웠다.

남편이 어느새 문 앞까지 왔는지 노크도 없이 손잡이가 돌아가고있다.

"아..잠깐만요..나갈께요, 문 열지마요..."

바닥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 미끄덩하며 몸이 젖히는가싶더니 정신이 아득해진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아득하게....기억의 한자락이 떠오른다...

아........잊었던 나의 기억이......

잊고싶었던 그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