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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BY 유빈 2010-07-13

일주일에 한번 금요일마다 아파트 원형광장은 활기에 넘친다.

부녀회에서 주관하는 장이 서기 때문이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시장가던 길은 참으로 신나고 즐거웠었다.

이것저것 구경거리도 많았고 시장 한모퉁이 좌판에서 먹던 국수며 튀김도 시장을 찾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남편과 데이트 삼아 나가서 식사도 하고 마트에 들러 생필품을 사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채소나 생선 같은 먹거리는 일부러 장서는 날을 기다려 사곤 한다.

좋은 물건을 사기위해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다.

토요일 저녁 모처럼 친구부부를 초대했기에 오늘은 특히나 장 볼 품목이 많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가지 없는데다 자신도 없어서 승미가 일찍 와서 도와주기로 했고 인터넷으로 레시피도 뽑아놓긴 했지만 걱정스럽긴 하다.

싱싱해 보이는 채소와 과일을 좀 넉넉하게 사고 상가에 들러 전골에 넣을 고기도 사느라 제법 시간이 훌쩍 지나 집으로 들어설 때였다.

현관문을 열기가 바쁘게 전화벨이 울려댄다.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수화기를 드니 미자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니, 집전화도 안받고 핸드폰도 안받고.. 뭐하느라 전화도 안받았어?”

“아...오늘 장서는 날이라 나갔더니 시끄러워 벨소리를 못 들었나보네...근데 무슨 급한 일이길래 그렇게 날 찾았대?”

미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할 말이 많은 듯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언니..글쎄, 한팀장님 소식을 들었는데...한팀장님 몇 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자세한 건 잘 모르겠는데 경주에서 올라오다가 그랬나봐..제법 큰 사고라서 뉴스에도 나왔다지 아마?”

처음 미자를 만난 날, 궁금했던 다른 사람들의 안부를 전해주며 내가 결혼하고나서 한팀장도 회사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세 아들과 부인 모두 뉴질랜드로 보내놓고 자신은 오래전부터 꿈꾸던 펜션사업을 하기위해 경주근처로 내려갔다고...

그의 펜션이 완공되면 같이 단합대회 삼아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 이듬해 미자 역시 결혼을 하면서 퇴사하느라 가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었다.

내 기억 속의 한팀장은 선이 굵고 남자다운 호방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엔 항상 사람이 많았고 특히나 남자 후배들이 그를 많이 따랐던 것 같다.

일찍 결혼해서 아들을 셋이나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팀을 잘 이끄는 리더쉽있는 상사였다.

하지만 샤프하고 이지적인 스타일을 좋아했던 나는 처음 한팀장이 우리 팀 팀장으로 스카웃되어 왔을 때 그다지 호감을 느끼진 못하였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나 짙은 눈썹은 왠지 모를 부담감으로 다가왔으니까.

하지만 그의 업무능력은 뛰어났다. 덕분에 우리 부서의 실적은 나날이 높아졌고 그는 꽤 괜찮은 상사라는 생각이 들 즈음의 기억까지가 내가 가진 그의 기억의 전부이다.

그랬기에 그의 사고소식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미자가 아직 연락이 닿는 몇몇 회사사람들을 통해 알아볼테니 한팀장이 한다는 펜션으로 놀러가자고 했던 게 지난주였었다.

미자네 가족과 함께 놀러갈 생각에 부풀어 있었는데 이런 황망한 소식을 듣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