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시킨 커피도 어느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미자는 내 기억을 일깨우기라도 할 듯이 지난 얘기들을 끝없이 풀어낸다.
"언니, 나두 그동안 언니한테.. 아니 아무한테도 한 적 없는 얘기 하나 해줄까?"
미자는 쑥스러운듯 빈 커피잔을 이리저리 돌리며 딴청을 부린다.
"실은...나 언니 많이 좋아했어..많이 부러워했고...언니는 내 동경의 대상이자 내 이상형이야.."
"뭐야..지금 나한테 사랑고백이라도 하는거야?ㅎㅎ
내가 기억 상실증이라니까 지금 위로할려고 그러는거지?"
"아니....진짜야...
난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컴플렉스가 있었거든.
내 큰 손하고 이름....
난 내 큰 손이 싫었어...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을 호주머니에 넣거나 뒤에 감추는 습관까지 생겼다니까..
게다가 난 이름때문에 우리 엄마 원망도 많이 했었어.
세상에 누가 요즘 애들 이름에 미자라는 이름을 쓴대...이쁜 이름도 많구만.."
"너, 요즘 애들 아니잖아...그때는 그런 이름 더러 쓰던데 뭘...
누구는 컴플렉스없니...나두 고백해야하는 거야?"
"아이 참, 언니는...하여튼 난 그 이름이 싫었다고.
근데 언니는 내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걸 다 갖고 있는거야.
언니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며 그 조용하고 사근사근한 말씨하며...
게다가 이쁜데 착하기까지하지...
결정적으로.....이름도 이쁘잖아."
"야...너, 대놓고 너무 비행기 태운다....뭐 맛있는 거 사줄까? 응?"
미자는 웃음 가득한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을 잇는다.
"응, 맛있는 거 사줘...근데 잠깐 고백 다 마치고...하하하"
"ㅎㅎㅎ"
"나는 내가 성년이 되면 제일 먼저 뭐가 하고 싶었는 줄 알아?
개명신청을 할려고 했어.
내 맘에 드는 제일 이쁜 이름을 골라서 개명할려구..
근데 못했어....
내가 고등학생땐가 같은 교회 다니던 남학생이 내 이름갖고 놀리길래 너무 속상해서 집에 와서 울고불고했더니
엄마가 그러더라...
우리 엄마 어릴 때 , 그때는 누구나 다 그렇듯이 너무 가난하고 먹을 것도 없던 땐데..
그 마을 방앗간 집 딸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맨날 이쁜 옷에 맛있는 음식에..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이 부모 사랑 듬뿍 받고 공주처럼 살고있는 그 애가 동화 속 공주님같이 보였다고....
근데 그 애 이름이 미자였데....
그래서 우리 엄마 이 담에 딸 낳으면 꼭 미자라는 이름을 지어줘야겠다...다짐했었대.
미자라는 이름만 있으면 그 애처럼 공주같이 살거라고 생각했다나뭐래나..."
잠시 말을 끊은 미자는 나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근데...그 엄마에 그 딸이라고 우리엄마 흉을 그리 봤으면서 나두 내가 이 담에 딸 낳으면 지영이라고 지어야지...했었다~"
"너...설마 진짜 지영이라고 지은 건 아니지?"
내가 놀라서 묻자 미자는 장난기 어린 눈으로 얼른 대답을 하지 않는다.
"정말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었거든...
고민하고...고민하고....ㅎㅎㅎ
난 정말 우리 딸이 언니처럼 자라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 말이야...뭐...
그래도 우리엄마 전철을 밟으면 안되겠구나...생각했지...
우리 애들 이름....
지원이랑 지민이야...ㅎㅎㅎ
어때? 이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