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음엔 애들 얼굴 한번 보여줘.
우리집으로 오던지 아님 내가 가던지...
근데 신랑은 누구니? 설마 윤주임? 너 윤주임 좋아했었잖아?"
미자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다시 그녀 특유의 너털웃음을 웃는다.
"하하하 언니, 아직도 그걸 기억해? 근데 윤주임, 언니 좋아한다고해서 내가 포기했잖아. 그건 기억 안나?
하긴 어디 윤주임뿐인가 정대리도 언니 좋아했고 개발팀 박대리도 언니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떠들고 다녔는데."
나는 그녀의 말이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분명 내 기억에 그녀는 윤주임을 몰래 짝사랑 하던 중이었고 매일 점심시간이면 그녀의 가슴앓이를 들어주느라 시간이 모자랐는데 말이다.
나는 미자에게 내가 사고로 10년의 기억이 사라졌음을 어떻게 얘기해야하나 잠시 망설였다.
오랜만에 만나 다짜고짜 사고소식부터 전한다면 많이 당황스러우리라.
내가 아는 미자는 마음이 무척 여린 아이였다.
항상 활기차고 씩씩한데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그녀가 드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알고보면 속이 깊고 여려서 상처도 잘받았다.
"실은 미자야...내가 너한테 말 안한게 있어...
한달쯤 전에.....사고가 났었거든...
아니, 놀라진 말어...별로 크게 다친 건 없으니까...
근데.......웃기게도 10년동안의 기억이 몽땅 사라졌어.
정말 웃기지 않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뭐 TV보면 많이 나오긴 하더라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날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그래서 난 지금 스물여섯살 때 너랑 보내던 시간이 어제 일같아.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생각도 안나거든.
다른 사람들 소식도 다 궁금해.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혹시 넌 연락하며 지내는 사람이 있니?"
미자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른다.
"어머...언니...어떻게 그런 일이.....어떡해..."
"괜찮다니까..정말 난 아무렇지도 않아. 가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전해들으면 당황스럽긴 하지만 말이야."
정말 나는 기억의 공백이 생겨 답답한 것을 빼고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더군다나 보고싶은 미자를 만났으니 더더욱 나쁠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