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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BY 유빈 2010-06-27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남편이 출근한뒤, 서재로 꾸며놓은 작은 방의 서랍장부터 베란다 선반에 얹혀진 상자들까지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작은 노트의 흔적조차 없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매일매일 일기를 하루도 빼먹지않고 꼬박꼬박 쓰던 아이였다.

개학날이 다가오면 친구들은 우리집으로 달려와 내 일기장을 보며 날씨를 베껴가곤 했고 일기상은 항상 내차지였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는 매년 예쁜 다이어리를 새로 장만해 그 날 있었던 사소한 일이라도 빼곡히 적어넣으며 즐거워했더랬다.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날이면 그간 적어 온 일기장과 다이어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 커서야 알았지만 딸의 사생활이 궁금했던 엄마는 가끔씩 몰래 내 방에 들어와 책상 맨 아랫칸 서랍 속에 넣어둔 내 일기를 훔쳐보시곤 했단다.

거기엔 내 고민과 설렘과 하루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나의 일기쓰기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한 주 동안 있었던 일들을 쓰기도 하면서 나름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창구 역할도 했다.

그런 나에게 비록 세월이 흘렀다곤하지만 일기장 하나 없다는 게 이상하다.

혹시나 꼭꼭 숨겨놓았나싶어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다.

발견된 건 침대 옆 협탁 서랍에 있던 전화번호를 적은 작은 수첩 하나 뿐이다.

그 수첩에서 낯익은 이름은 고등학교때부터 붙어다니던 단짝 친구와 같은 과 친구들 몇 명 뿐이다.

같은 직장을 다니던 동료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들의 이름은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6년을 다닌 직장이라는데 결혼하고는 그 사람들과 소원해졌나보다.

그래도 너무 아쉽다.

나에겐 어제 일처럼 선명한 그 나날들이 모두 한참 지난 옛 일이라는 게 서글프다.

문득 미자가 보고싶다.

내가 기억하는 스물 여섯 그 해,

나와 제일 가깝게 지낸 건 같은 사무실의 동료였던 미자이다.

단발머리에 발그레한 볼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나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나를 무척 따랐고 일 손이 야무져서 회계업무를 전혀 모르던 나를 많이 도와줬었다.

그 때는 단짝 친구이던 승미나 준희보다 매일 붙어있다시피하는 미자가 제일 가까운 동료이자 친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