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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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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BY 유빈 2010-06-23

톨게이트를 들어서자 푸른 기와지붕 밑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현판느낌의 글씨가 나를 맞는다.

어쩐지 경주를 들어설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도시들 중에 유독 내가 사랑하는 도시 경주....

잠시 딴 생각에 젖다가 퍼뜩 이제 곧  만나게 될 시댁식구들 생각에 긴장하여 두 손을 꼭 쥐어본다.

7년동안 그렇게 살갑게 굴며 왕래가 잦았다지만 지금 나에겐 오늘이 시댁식구들과의 첫만남이자 상견례 자리인 셈이니까...

톨게이트를 지나 30분만에 도착한 곳은 아쉽게도 작은 아파트 단지였다.

난 뭘 기대한 걸까...그 와중에도 안동이라는 이름만으로 신비로움 가득한 고택을 상상하고 있었던가보다.

나의 상상에 허탈해하며 남편을 따라 엘리베이트에 오른다.

'...삼....사....오......." 차례차례 마음 속으로 층 수를 따라 세고 있을 때 남편이 슬며시 손을 잡아준다.

다시금 남편의 마음이 전해진다.

연애해본 기억도 없이 바로 시작된 결혼생활이지만 하루하루가 새롭고 재미난 요즘이다.

결혼생활이란 게 이런 거 였다면 그렇게 안할려고 바둥거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남자에 관심이 없었던 것만큼 당연히 결혼도 내 관심 밖이었다.

그냥 남자랑 한 집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소름이 돋는 듯 싫었으니까..

스물여섯 되던 봄이오자 드디어 더는 못기다리겠다는 듯 엄마의 닦달이 시작되었다.

연애 한번 안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를 제외하곤 7시면 꼬박꼬박 집에 들어오는 딸을 더 두고볼 수 없었던 엄마는 주위에서 이리저리 들어오는 혼처자리를 내밀며 만나볼 것을 종용했다.

하나뿐인 딸 웬만하면 나이 좀 찰 때까지 지긋하게 옆에 두어도 되련만 엄마는 딸이 나이차도록 시집 못갈까봐 안달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두 계절이 다가도록 맞선자리에 내보내려는 엄마와 필사적으로 안나가려는 나 사이에 소리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전까지는 친구처럼 자매처럼 다정했던 모녀지간이었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는 엄마는 딸 하나 이쁘고 바르게 키우는 게 소명인 듯 나를 애지중지 키우셨고 나 또한 부모님 말씀 한번 어겨본 적 없는 모범생 착한 딸이었기에 다툴 일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루하던 여름이 끝날무렵 나는 엄마와의 냉전에 지치기 시작했고 결국 추석을 몇 일 앞두고 남편과 선을 보기로 두 손을 들고 말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