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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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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험장


BY 하늘콩 2010-04-04

커다랗고 고요한 강당이다. 연필의 사각사각 거리는 소리만 사방에서 들리고 있다. 강당 가득차 있는 긴장된 공기는 여느 시험장과 다르지 않다.
조금 다른 것은 소년들이 앉아 있는 책상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서서 함께 필담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는 루피아마법학자양성학교 라는 거창한 이름의 학교의 입학시험장이다.
이 학교는 대리시험은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귀족자제들을 위해 1명씩 참모를 붙여 원만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입학시험 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토의시험을 보고 있는 것이다. 평생을 함께할 참모이니 그의 지식 역시 귀족의 지식이라는 논리이다.
그래서 인지 시험을 보는 귀족의 자제들 보다 책상 한켠에 서 있는 참모들이 눈에 힘을 주며 긴장을 더 하고 있다.
그런데 저 뒤켠에 앉은 은발머리의 소년과 그의 옆에 서 있는 검은 머리의 소년의 표정은 몹시도 정반대 이다.
둘이서 열심히 필담을 나누고 있고, 열띤 분위기는 학문에 관한 토론으로 보기엔 다소 공격적인 모습이다.


 

'내가 잘 못 들은건가? 아니지 여기 써놓은 것이니 잘 못 본 것인가?'
'맞게 보셨습니다!'
'루피아의 지프왕조 200년 역사중 10대 사건중 하나를 정하고 그 일의 원인과 결과와 과정에 관해 구술하시오<-

 이 문제에 관한 대답이 정녕 맞는가?'
'네 그렇습니다.'
'옆나라 스우니왕국에서 곡초(시큼한 맛이 나는 곡물로 서민들의 빵을 해먹는데 사용됨)를 수입한일 - 짱 맛있어요!' <-  이게?
'네 한평생 통털어 이 나라에서 이보다 잘한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럼 남쪽의 정세에 관해 기술하시오'
'남쪽은 따뜻해서 휴향하기 좋아요~'


은발 머리의 소년은 질문 대신 옆에 천진난만하게 서 있는 소년을 뚫어버릴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아버님 영지에서 가장 총명하다고 알려진 녀석으로 여기 오기 훨씬 전부터 정해진 녀석이다. 마을에서는 어릴적부터 이 녀석의 영특함에 어른들 모두 감탄했었고, 문제가 생기면 이녀석에게 찾아가 조언을 구할 정도라는 소문을 들었다. 무엇보다 완벽하신 아버님께서 직접 고르신 녀석이다.

하지만 어제 여관에서 만났을때부터 무언가 불안했었다.
너무 커서 겁이 많을 것 같은 까만색의 눈, 볼은 약간 상기되서 발그래한 것이 책보다는 놀러다니기 좋아할 것 같고, 도톰한 입술은 토론하기 보단 마구 먹는데 발달된 듯했다. 게다가 정신 없는 발걸음 소리. 도서관 보단 정원이 어울리는 녀석으로 보였다. 방으로 약속시간 보다 4시간 늦게 찾아와서는 미안해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참모가 된 제이라고 이야기 하며 마켓오브튜니아에서 신나게 놀았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아서 쫒아버렸었지.
아버님은 이녀석의 어느부분이 믿음직 스러웠던걸까.
동네 어른들은 도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상담을 했던 것일까.
그건 아무래도 좋아.
단지 지금 출제된 문제의 해답을 말해주면 된다.

은발 머리의 소년은 다음 문제를 펜촉의 깃털부분으로 일정한 리듬- 구지 말한다면 알레그로(빠르게)-로 톡톡 치면서 녀석을 처다보았다. 아니 노려봤다.
제이는 잠시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더니 답을 찾은듯 결심한 얼굴로 연습용 종이에 적어 나갔다.
'사람이 많이 오니깐'
잠시 멍하게 있던 은발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숫자를 마음속으로 세어보았지만 참을수 없는 분노에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얼빵한 또라이 자식아. 넌 마켓오브튜니아가 무역의 시발점이 된 이유가 사람이 많이 오니깐?, 이게 다야? 이렇게 답을 쓰라고 여기에 적은거야? 넌 거기서 프에디(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으로 빵 사이에 요구르트를 넣어 만듬)만 쳐먹기만 하면 되는 시장인줄 아냐? 어서 이런 구하기도 힘들만큼 멍청한 자식을 보내셨을까"

소년의 고함 소리는 조용했던 시험장에서 더 크게 들렸고 시험을 치던 학생과 그 옆의 참모들 그리고 감독하던 선생님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누군가 손을 쓰기도 전에 그에 못지 않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 본인도 모르는 것을 나한테 물어봐놓고 그건 창피하지 않으신가봐요? 자기 입학 시험이지, 나의 입학 시험인가? 잘나신 분이 잘 쓰시면 되겠네요?"
 "뭐? 내가 몰라서 너한테 물어봐? 니가 여기 왜 있다고 생각하냐? 아니 생각은 할 수 있냐?"
 "그럼요, 전 이런 생각이 마구마구 드네요. 드니의 영주님의 셋째아들 젠슨 애클스님은 답안을 작성할 만한 능력이 안되는 것을 힘없는 제게 떠넘기고 결국 자폭하여서 시험을 망치고 말았다!"


검은 머리의 소년은 나름 조리있게 설명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 살짝 기분이 좋아졌지만 상대방은 다른 지역의 자제들과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의, 아니 다니고 싶어했던 학교의 선생님들 모두가 있는 곳에서 자신의 풀네임과 멍청한 참모와의 트러블이 다 밝켜진 것에 잠시 휘청했으나 더욱 거세진 분노로 대적했다.

 "너. 너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그만! 그만! 거기 두 사람, 당장 나가요. 당신들은 시험 중지 입니다."


적절하게 개입을 한 사람은 감독하고 있던 선생중의 한명으로 뒷쪽의 선생들에게 손짓을 하며 데리고 나가라는 뜻을 전했다. 이 학교 입학 시험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다니. 그것도 하필 내가 감독하는 곳에서. 절망스런 기분이 들었지만 다른 학생들에게는 별일이 아닌 것처럼 대해야 한다. 몇시간후 교장실에서 내가 받을 징계에 대해서는 숨겨야 한다.


 "여러분, 다시 시험을 보도록 하세요. 시간은 5분간 연장해 드릴테니 집중해서 문제를 푸시도록 하세요"


손벽을 두어번 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정리를 했지만 이미 분위기는 산만해져서 키득거리거리거나 두 사람이 끌려나간 문을 유심히 바라보거나 복도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망했다.이 귀족의 자제들이 집에가서 무슨 이야기들을 할까. 아 올해 좋은반의 담당이 되긴 글렀어.망할 녀석들. 망할녀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