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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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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 작가(!)


BY 꿈을 이루다. 2008-10-01

책임감이 강한 여자. 뿌린 것은 스스로 거둬야 한다고, 내 발등 내가 찍은 것에 대한 아픔을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리몽둥이를 잘라 버린다며 순남을 사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부모님의 협박에도 가출까지 감행해야 했던 것도 태중에 떡하니 자리 잡은 명석이 때문이었다. 강제든 합의든 어찌됐든 한번의 관계로 제대로 일을 치러낸, 당시 세나의 가출은 작은 마을에 핫 이슈였음을 간간히 남몰래 통화했던 막내 남동생과의 연락에서 알 수 있었다.

씹을 거리 많은 동네 사람들은 또 한동안 심심하지 않겠구나,

 

“거 있잖어, 아무개네 딸래미 또 애 뗬따믄서. 벌써 몇 번 째여. 그 가시나 그렇게 하다가 시집이나 가겄어?”

 

귀가 따갑게 떠들어 대던 아무개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는 물론이요, 장독대에 놓인 몇 번째 항아리에는 몇 년 된 장이 있는 사실까지 빠삭하게 뀄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듯, 사람들은 입에 거품까지 물며 떠들어 댔던 것을, 그들의 성품을 세나는 어린 시절부터 익히 파악했기에 자신만은 결코 그들의 가십거리가 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 했었는데... 세상 일이 맘대로 안된다는 것을 세나는 23살 꽃 다운 나이에 알아 버렸다.

 

“ 거 있잖어, 아무개네 딸래미, 걔가 그럴줄 누가 알았어.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옛말, 하나 그른거 없다니께. 지엄마, 아빠를 다 크도록 쪽쪽 빨며 귀염 떨며 살던 것이 애베서 야밤도주 했담서?... ”

 

극복의 대사처럼 한동안 세나의 귓가에 동네 사람들의 언행들이 영상 되어 고스란히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었다. 남자의 품이 좋아 제 부모 버리고 도망친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버린 자신이 떳떳할 수 있는 길은 열심히 살아서 당당하게 낳은 아이 앞세워 남편과 나란히 고향 땅 밟는 길만이 오명을 씻을 수 있는 길이리라, 지하 단칸 월세 방에 살면서도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 조차도 쉽지 않은 길이란 것을 멀지 않아 터득한 그녀였다.

어쨌든, 세나는 얌전한 새침때기였다. 아니, 였었다.

처녀적엔 버스에 앉아 온갖 쓸데없는 얘기들로 창피한 줄 모르고 떠들어대는 아줌마들의 수다를 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남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 하지 않고 한쪽 젖가슴을 들어 내놓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던 아줌마들의 행동은 더더욱... 이해는커녕 곁에 있는 것조차 수치스러울 정도였다.

그랬던 그녀가 점점 변하는가 싶더니 오늘에 이상성격이 되어버렸다.

 

“ 씨이팔!!!... 좃도... 케에엑!...퉤!!!...”

 

늘 상 벌어지는 일상적인 광경이었기에 순남의 취중 고성 속에서도 옛 일까지 떠올리는 여유가 생겼으리라.

 

“조용하고 들어가서 자. 남들 자는데...”

 

애정 없는 어투엔 높낮이도 없었다. 하지만 점차 숨이 차올랐다.

‘쳇, 내가 숨쉬기 운동만큼은 자신있었는데 이제 그조차도 어려울 때가 있으니...’

비 맞은 중마냥 혼자 떠드는 일도 잦아졌다.

 

“ 남들 자는데?!... 니이가... 언제부터...나암들...자는 것까지...신경 썼어. 엉?... ”

 

누군가 남편의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술주정에 대해 넋두리하는 세나에게 그것이 몸에는 이롭다는 말을 했더랬다. 하지만 결코 그녀는 남편의 몸까지 챙겨줄만한 애정을 상실한지 옛날이다. 아니, 그런 적이 있기나 했었는지조차 가물거린다.

숫자 2와 가까운 세나의 남편은 2틀이 멀다하고 술을 마셨고 2시가 가까워야 들어왔고 2시간은 기본으로 떠들어댔다. 그리고 두 시간에 한 번씩은 깨어나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셨고 화장실에서 마신 물을 연실 아래쪽으로 배출 시켰다.

술을 마시는 것에 있어서는 완벽하게 그 규칙을 어기는 법 없이 고수했다.

 

‘ 2, 지랄 맞을 인간아! 그래 어디 갈 때가지 가보자.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

 

궁시렁 대던 세나는 늦게까지 책상에서 불 켜 놓고 있던 아들이 깰까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고는 남편이 바로 보이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그 문마저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귀를 틀어막았다. 어울리지 않게 예민한 신체들의 반응, 틀어막은 귀로도 어김없이 계속되는 남편의 억지스런 시비들이 들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문턱은 푸르렀다. 아직은 노랗게 물들지 않은 은행잎들, 그럼에도 검정 비닐 봉토를 들고 거닐며 연실 허리를 굽히는 몇몇 사람들이 보였다. 이상기온이라 떠들어도 계절은 어쨌든 제때에 찾아와서 제 몫들을 하고 있었다.

 

“얘, 기운 좀 내라. 세상 다 살았니?”

면허증을 소지한지 채 1년이 될까, 그럼에도 소정은 자세만큼은 능숙한 베스트 드라이버였다. 비록 연식이 운전면허 소지일과 며칠 뒤지지 않는 신형의 현대 산타페의 차체 이곳저곳에 긁히고 찌그러진 모습이 운전자의 미숙한 능력을 말해주고 있었지만.

마음이 사정없이 시끄럽고 개떡 같을 때면, 세나는 또래의 친구들보다 한참 연배의 이웃 언니를 찾곤 했다. 남편 덕분에 이른 am(오전)을 시작했던 세나는 간밤을 2시간도 제대로 이어서 눈을 붙이지 못했다.

눈은 모래를 머금은 듯 연실 껄끄러웠다. 거울을 보지 않았더라도 빨갛게 충혈 됐으리라.

 

“빨리 세상을 다 산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세나는 푸념처럼, 한숨처럼 차창을 고정한 채로 소정의 말에 대꾸했다.

늦게 들어왔으니 늦게 나갈 남편을 도저히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얼마나 팔자가 늘어진 인간인지, 자영업자라는 명분으로 출퇴근이 자유로웠다. 그렇기에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고 민주적으로 자유로웠다. 세금은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16년을 한결같이 찔끔찔끔 50만원을 생활비라고 당당하게 주기도 했고 4달에 한번 1천만원을 건네주고 그나마 사업상 명목으로 다시 가져가는 것이 배 이상이었다.

누가 들으면 여자 호강 시키는 것처럼 그동안 쭉, 취업을 하겠다는 세나를 집안에 눌러 앉히고 애들이나 보살피라던 남편이 요즘 들어 부쩍 혼자 벌어 먹인다는 말 같잖은 공치사를 술주정의 레파토리에 집어넣는 때가 잦아 졌다.

술 깨면서 찾을게 분명했지만 세나는 아이들을 학교 보내고 바로 소정에게 sos 요청을 이른 아침부터 문자로 날렸고 고맙게도 구원하듯 차까지 대동하고 나서준 소영은 팔당으로 빠져 보자고 했다.

 

“떽!, 복 터진 소리하고 있다. 오십넘은 언니에게 그게 할 소리니? 내가 딱 네 나이만 됐어도 나는 여한이 없겠다.”

 

세나의 자포자기한 듯한 목소리에 소정이 발끈하듯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강동을 시작으로 구리를 벗어난 도심 밖의 풍경은 안정적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굴락을 이룬 잡초들이 빼꼭한 대지조차도 평안해 보였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속을 가득 매우고 있을 생명체들이 왠지 부러운 세나였다. 이름 모를 흉측한 벌레조차 차라리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그것들조차 본능적으로 이뤄야 하는 힘든 목적이 있겠지만 복잡한 잡념으로 가득한 인간의 뇌가 없다는 것이, 단순한 그 이유만으로도 부러운 대상들이었다. 풀도 좋고 벌레도 좋고 흙도 좋았다. 꼭 태어나야만 했다면 차라리 그런 것들로 생겨났을 것을...

 

“언니, 나는 어느 때는 술 취해서 잠들어 버린 남편을 꽁꽁 묶어서 어디다가 가둬두고 싶은 충동을 느껴요.”

 

소정의 발끈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10년 이상 터울지는, 인연 또한 나이차만치 오래된, 그렇기에 자신의 말에 이제는 어떻게 대꾸하고 반응할지 짐작하면서도 세나는 굽히지 않고 말했다.

 

“ 점점... 못하는 소리가 없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