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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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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결혼


BY 헬레네 2009-01-03

같이 살자는 청혼이 전혀 뜻밖은 아니었다 .

뭔가 어렴풋이 느끼고 미루어 짐작은 했었지만 그것이 구체화 되어

입밖으로 쏟아져 나왔을 때에는 선뜻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

 

지치고 힘들어서 그를 방패막이 삼아 그뒤에 숨고 싶었다 .

그가 펼쳐주는 우산속에서 비바람과 눈보라를 피하면서 다른 여자들

처럼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

청혼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내가 서운해서 보름을 여관방에서 곡기를 끊고 들어앉아

잠적하는 바람에 당시근무하던 전기공사 사장님이 혹시 하는 마음으로 경찰서 유치장까지

 뒤지고 다녔고 안찿아 가본데가 없었단다 .

시어머니에게 찿아온 사장님이 가출신고를 하고 수배를 해보자는 소리에 둘째아들이

경찰공무원으로 첫발령을 받은지 한달도 안됐다고 하며 혹시 피해가 가면 어쩌냐며 반대했었단다 .

잠적 보름만에 나타나 찿아와서 다시한번 청혼했다 ..

 

yes,,,,,,,,,,

 

더이상 피할곳이 없었고 , 평범하게 살고 싶었고 ,이보다 더 최악은 없을것 같았다 .

가난한건 조금 덜쓰면 되고 형을 위해 죽을수도 있다는 육남매의 맏이라면 그얼마나

든든하리 ,,,,,,,,,,, 못배우고 무식한건 그사람 죄가 아니다 .

 

나쁜짓 하지 않고 착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겐 많이 배우고 유식한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란 것이 있어서 그법이 규정해 놓은만큼 보호해 줄것이다 .

 

그런데 그가 알고있는 나는 아이를 데리고 혼자사는 불쌍한 이혼녀 까지였다 .

방앗간집 며느리로서의 1년 2개월을 그는 모른다 .

많이 주저하고 많이 생각했었다 .

지금 까지도 알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쭈욱 모를 그일이 그때에는 내맘을 어지럽혔다 .

 

내 생년 월일과 난시를 적어서 갖고 가더니 산을 믿고 아는 소리를 해서 반쯤은 박수

무당인 큰어머니가 무조건 시키라고 했다며 호박이 넝쿨째 굴러 왔다고 하셨단다 .

한번 보자시더니 이마가 반듯한것이 성격도 반듯하겠고 톡 튀어 나온것이 바지런해

보인다 했다며  시어머니께서   서두르셨다 .

 

울엄마는 보더니 첫눈에 맘에 들어 하셨다 .

둥글넙적 , 퉁투무리 , 너부데데 한것이 듬직하고 사람좋게 생겼다며 법없어도 살게생겼단다 .

같이살며 수도없이 들어서 이젠 지겨운 그말이 그때에는 참 정겹고 듣기좋았다 .

 

엄마가 태백산 자락 어디에 산다는 무당에게 물어 보았더니 큰시어머니 말처럼 하면서

내가 우리신랑 명줄울 이어준다고 했었데나 뭐래나 하시며 부적을 찔러 넣어 주셨다 .

 

91년 11월 17일을 길일이라며 잡아놓고 주인집의 성화에 못이겨 두달반이나 남은 결혼식을

앞두고 같이 이사갈 방을 보러 다녔다 .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 나더니 아이를 데려 가겠다고 했다 .

강씨집안의 장손을 남의손에 키울수는 없다며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선언했다 .

저인간 이라면 아무때고 , 아무렇게나 들이닥쳐서 지맘대로 휘저을 인간 이었다 .

내가 혼자살던 , 둘이살던 핑게만 있다면 ,,,,,,,,,,,,,,

 

어찌하면 좋겠냐며 운전수 아저씨를 붙잡고 울었고 답답한 그는 담배만 피우고 있었다 .

나를  엮기위한 방편이 었던 아이는 다시 데리고 가버렸고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

한친구가 " **아 대박이 터졌다야 총각에 두살연하가 어디냐 " 하며 설레발을 치자

잠자코 듣고 있던 다른 친구가 " 시끄러 살아봐야 대박인지 쪽박인지 알지 최소한 오년쯤 "

하길레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고 17일 오전 11시에 신혼 행진곡에 맟춰서 나는 또다시

레드카핏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