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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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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집 바지사장


BY 헬레네 2008-12-11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 돌아온 처녀로 살아가기엔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이 숨이 막혔다 .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었건만 엄마는 여자와 접시는

내돌리면 깨진다는 말을 하며 고집스레 버티고 있었다 .

이미 깨진 그릇이란것을 인정하기 싫어했고 당신이 데리고 있는것이

날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듯했다 .

 

머리가 좋은 막내 여동생은 학교에서 내내 1등을 하더니만 중3 학기말이 되었다 . 

담임 선생님의 학부모 면담요청을 엄마 대신 내가 가게 되었는데 영동의 수재들만

간다는 강릉여고를 가라고 추천해 주시며 학교로서는 이런 인재가 타지역으로

빠져 나간다는게 안타깝지만 담임 선생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여기에다 진학

시키긴 너무 아까우니 그곳으로 진학했으면 좋겠다가 얘기의 요지였다 .

 

돌아 오면서 생각해 보니 나도 같이 갈수 있겠다 싶은 좋은 기회였다 .

집에 와서 엄마에게 얘기하자 가시나를 무슨하며 펄펄 뛰셨다 .

이미 예상했던 일이 었지만 끈질기게 설득했고 막내도 그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

어쩌면 막내는 무서운 엄마를 벗어 나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

화를 냈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몇번의 실랑이 끝에 강릉여고로 진학원서를 쓰고

여동생의 밥을 해준다는 핑계로 같이 가게 되었다 .

 

노암동 어딘가에서 300만원 짜리 전세집을 얻어놓고 한달여 정도를 여기저기 알아

보다가 취직을 했다 . 삼베를 짜는 공장이었는데 오른손으로 실패를 잡고 왼쪽으로

보내면서 왼손으로는 기계를 밑으로 끌어 내리면서 발로 밟아주면 한줄이 짜여지는

일이었는데 사람이 그리 많지않은 가내 수공업 수준의 공장 이었다 .

내가 손재주가 있는지라 금새 따라한다고 사장님이 좋아라 했고 그럭저럭 안정

되는 듯한 모양새 였는데 엄마가 갑자기 오라는 연락이 왔다 .

 

철암역 앞에서 큰형부 친구가 가게를 개업하는데 그식당을 니가 맡아서 하면 월급을

지금 일하는 공장의 두배를 준다고 했다면서 그걸하라신다 .

광부들의 거칠은 심성을 아는지라 나는 싫다고 했다 .

더구나 술을 먹고 난폭해 지기라도 하면 감당할수 없을텐데 24살의 어린 내가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 엄마는 한달에 봉급을 30만원씩 준다는데 왜 싫다고 하냐며

화를냈고 나를 억지로 그곳에 데려다 주었다 .

집하고 가깝고 엄마의 출퇴근 길이니까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내가 다 돌봐줄것이고

형부의 친구 ( 이름난 깡패였다 ) 가 있어서 치근댈 놈도 없다는게 엄마의 말이었다 .

그건 엄마의 생각이었고 엄마가 잠깐씩 들르면 얼마나 들를 것인가 ?

 

춘천에서의 닭갈비는 그냥 볶음형식인데 반해 태백에서의 닭갈비는 국물이 있는 요리였다 .

밥을팔지 않고 오직 그요리 하나와 술이 전부인 식당이니 가게안은 날마다 전쟁터 였다 .

아침 열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지는 일은 끝이 없었다 .

시장을 보고 닭을사다가 갈비를 뜨고 양념을 재우고 야채를 손질하고 혼자서 식탁을 치우고

설겆이 까지 해야하니 돈도 귀찮았고 내가게가 아니다 보니 별반 애쓰지도 않았지만

사람은 항상 넘쳐났다 . 저녁이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형부친구가 수금을 해가고 겨우

내일 재료살정도나 남겨주고 사라졌다 . 항시 보살펴 주겠다던놈은 겨우 수금이나 해갈뿐

24살의 처녀가 혼자 있기엔 살벌하고 무서운일이 가끔 벌어졌고 나는 지쳐갔다 .

 

한달만에 준다던 봉급은 며칠만 며칠만으로 두달이 되어갔고 그러던 어느날 형부친구는

자취없이 사라져 버렸다 . 엄마가 집으로 어디로 백방으로 찾아다녔지만 허사였다 .

원래 그곳은 곱사등이 장애자가 살면서 도장도 새겨주고 가전제품도 수리해 주던 가게

였는데 그사람이 죽고 비어 있던곳을 깡패이던 형부친구가 돈한푼안들이고 잠시 빌려서

자기가 알고 있던 똘마니들을 풀어서 물건을 치우고 테이블이며 술이며를 외상으로 들여놓고

순진한 우리엄마를 설득하고 나를 이용해  두달동안 뼈빠지게 부려먹고 나서  인건비를

착취하고 튀어버린것이었다 .

 

엄마가 욕을 욕을 해가며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자꾸 실소가 터지고 있었고

불혹의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저렇게나 단순하고 이용해 먹기좋은 우리 엄마가 자꾸 가여워 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