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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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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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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BY 헬레네 2008-12-07

스물두살 ,,,,,,,,,,,

 

우리집에도 냉장고란 것이 있었는데 여름에만 잠깐 돌리고

바람이 선선해지는 늦은 겨울에서 봄까지는 가동을 멈춘채 그냥두었다 .

겨울엔 양말이나 옷가지 등을 넣어서 서랍장 처럼 냉장고에서 양말을 꺼내

신는 진풍경이 벌어졌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웃긴 일이지만 그때 당시는

우리집만 아니라 거의 모든 집들이 그랬었던것 같다 .

별반 넣어둘것도 없어서 당연히 그렇게 쓰는 것으로 생각하고 전기료도 아낄겸

그렇게 계절에 순응 하며 살아 나갔던것 같다 .

 

냉장고를 돌리기 시작한 어느날 큰언니네 내외가 와서 엄마에게 뭔가 수상한 공론을

하며 돌아갔고 엄마는 내게 시집을 가라고 했다 .

내가 살아낼 내 인생의 모든 결정권을 당신이 쥐고 결정해 주는 데로 살라는식의

일종의 통보 였다 . 그가 누구인지 무얼하는 사람인지 어떤 인격의 소유자 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

 

50 이 넘은 지금 까지도 엄마에게 이사를 갑네 , 차를 바꿉네 하고 손을 벌려대는

철면피한 큰언니 지만 그때 당시에도 미역을 , 참기름을 , 또 무슨 월부그릇을

외상질로 먹고 , 사고  못갚았다며 큰언니의 빛쟁이들이 우리집으로 찾아오고 고성이

오가며 실랑이가 벌어지고 나면 욕을 욕을 해대며 결국은 엄마가 갚는  신뢰성 없고

생각이 모자란 듯한 큰언니 내외의 판단성을 어떻게 믿고 내인생의 도박을 하란 거냐고

내가 따지자 엄마는 방아간을 하는 부자집 아들 이란다 .

 

어림없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

강력히 거부하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사람은 다시 날 찾아왔고 엄마는 당연한듯

집으로 맞아들여서 대접해 주더니 날을 받는 다는 얘기가 오갔다 .

언니는 전기밥솥하고 보온 밥통만 사줬는데 니는 내가 냉장고 까지도 사주마 하신다 .

내가 싫다고 말하는 데도 이미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있었다 .

 

여름날 저녁 ,,,,,,,, 슬리퍼를 질질끌고  입은채로 버스를 타고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하장성에 있는 순분이네 미용실을 찾아갔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원자와 ,신문사 지국에 다니는 경희 ,학교 서무실에

근무하는 종미 나까지 다섯이 모여서 얘길했다 .

내가 안가겠다는 데도 날을 받는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서 도망을 가야 겠다고 나좀 도와

달라고 차비도 없다고 얘길하자 우리엄마를 알고 있던 친구들 인지라 조금씩 돈을 보태

차비를 마련해 주었다 .

 

원자가 철암역에서 차표를 건내며 잘가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나는 웃으면서 "담에 갚아줄께 "

라는 말을 남기고 세번째 가출길에 올랐다 .

15살에 처음 가출할때 같이갔던 순자는 그곳에서 남자를 만났고 21살에 결혼해서 배가 남산만한

 신혼이었다 .

 

" 새벽 5시 30분 청량리 도착 마중바람 " 이란 전보를 받고 남편과함께 새벽부터 마중을 나와있었다 .

동그랗고 큰눈을한  순자가 나를보며 웃더니 새벽두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전보가 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며 착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단칸방 그녀의 집에서 며칠만 있겠다는 뻔뻔스런 부탁을 아무렇지도 않게했고 친구는  선선히

그러라고 했다 . 그래도 둘이서 웃으며 낄낄댔고 저녁에 퇴근해온 친구의 남편과 소주한병을

나눠 마시면서 남동생의 어께 너머로 배운 바둑실력으로  넉점을 바닥에깔고 넉살좋게 낄낄대며

같이 바둑을 두기도 하면서 근 일주일을 단칸방에 같이 있었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많이 미안하다 .

어찌 그리 철이 없었던지 , 어찌 그리 편하게만 생각했는지 친구와 남편이 오히려 불편했다면

모를까 나는  미안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신혼의 부부간의 성이나 뭐 그런것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으므로 그렇게 넉살좋게 개길수 있었던것 같다 . 워낙 그쪽으로는 좀 더디다 . 지금도 ,,,,,,,,

 

가출 삼일만에 원자에게서연락이 왔다 .

우리 엄마가 동사무소에 가서 우리딸이 가출을 했는데 친구를 만난다고 나가서 안들어 왔다 .

취직을 할려고  친구들을 시켜서 등본같은걸 떼러 올것인데 절대로 떼주지 말고 알려달라는

부탁을 해놨기에 원자가 대신 떼러간 등본은 실패를 했단다 .

공장에 취직하기는 틀린것 같았다 .

다시 식모살이를 갈까보다 했더니 순자가 남편이 알아본다며 기다려 보란다 .

 

6일째 되던날 ,,,,,,,,,오후 세시쯤 돌연히 순자의 남편이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

놀라서 쳐다보는 나에게 엄마는 눈물을 흘려가며 얼마나 찾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

금호타이어에 근무하는  친구 남편의 회사로 엄마가 찾아갔고 그사람이 엄마를

집으로 안내 한것이다 .

 

남의 신혼방에서 눈치도 없이 이게 무슨 경우냐며 나를 나무랐고 니가싫다면 시집같은것은

없었던 것으로 할테니 집으로 가자고 부드럽게 나를 달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시장을 찾아가 화려한 여름 원피스를 사주며 선심을썼고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될것이라 믿고 있었다 .

 

집으로 돌아 오더니 그사람이 나때문에 병이나서 앓아 누웠다는둥 , 상사병으로 죽은사람도

있다는둥 , 그사람 엄마가 자기아들이 잘못돼면 책임을 지라고 했다는둥 하며 협박하고

달래고 어르면서 며칠을 피를 말렸다 .단한번 선본 사람땜에 병이나고 죽는다는게 말이나될까 ?

내가 황진이도 아니고.......우리엄마는 이미 그사람과 내가 결혼을 한다에 공식이 맞춰져 있었다 .

 

설득을 하다가 안되니까 날짜 받아놓고 파혼을 하면 나는 챙피해서 못산다며 뭐 대단한 집안

이라고 집안 망신까지 운운했고 둘이 같이 죽자고도 했다가 그게 싫으면 딱 두달만 살다가

와도 괞찮다며 말도 안되는 억지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

 

며칠째 원론적인 얘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은채 똑같은 녹음기를 틀어대고 있는것에 화가나서

그러거나 말거나 일어서서 바게쓰를 들고 물을길러 나갔다 . 혼자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다가 자기

감정이 고조된 엄마가 마당을 지나 공동 수돗가로 달려오더니 갑자기 내 머리채를 확 잡아 채더니 

질질끌고 집으로 들어오면서 온갖 악이바친 욕설을 다하기 시작했다 .

끌고온 나를 집안에다가 동댕이를 치고 나서 니죽고 나죽자면서 식칼을 찿아들고 왔다 .

 

그순간 내머리를 스치는것이 그래 이렇게도 사는데  거길 가더라도 이정도 겠지

뭐 얼마나 더할려고 두달만 살고 오라잖아 내입에서 웃음이 비어져 나왔다 .

 

그렇게 여름의 끝자락이던 어느 더운날 나는 신부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