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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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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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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식제공


BY 헬레네 2008-11-20

청량리역에 내려서 광장을 훓어보는 여유를 부렸다 .

 

처음 보따리처럼 던져지던 그때에는 많은사람들과 오가는 차량의 숫자와

빌딩들에 압도 되서 이리저리 둘러보느라 정신없는 모습이 한눈에 보아도

시골에서 처음 상경한 촌년임에 분명했을 내가 이젠 제법 눈에익은 곳을

익숙한 몸짓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

더운 여름이라 간단한 작은가방 하나가 전부였고 수중에 돈도 별로 없었다 .

 

일찍부터 세상에 혼자버려지는것에 길들여 져서 집을 나오면서도 자신 있었는데

막상 역광장을 걸어나오면서 막막해 졌고 외로웠고 , 슬펐다 .

 

가진돈이 없으므로 방을 얻을 처지가 못되니 기숙사가 있는 공장이나 알아보리라

마음 먹었지만 주민등록 등본이나 기타등등의 서류를 준비 해오지 않았으므로

그도 여의치 않았고 혹시 남들이 내가 가출소녀란것을 알아챌까 싶어 여유있게 행동했다 .

 

전신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구인광고를 훓어보며 혼자 생각을 정리했다 .

" 숙식제공 선불가능 월수 50보장 " 헉 50이면 내가 공장에서 야근까지해도 석달은

 벌어야 하는 돈인데 그 많은돈을 한달에 다준다니 군침이 돌았고 왕창 벌어다

우리엄마 앞에 확 던져주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유혹이었다 .

" 숙식제공 가정부 식구 단촐한집 월수 12-15만원 전화 5xx -xxxx 지금의 내처지로는

갈곳이 그곳밖에 없었다 .

 

술집아가씨와 ,  가정부 ,,,,,,,,,,,,,,,,,

소설속이나 ,  삼류영화 , 혹은 T.V 문학관이나 연속극을 보면 술집아가씨는 슬퍼보였고

공장 아가씨는  피곤해 보였고 식모 아가씨는  비굴해 보였다 .

나는 온갖 상상을 동원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

슬픈것은 위험해 보였고 차라리 비굴해 보이더라도 안전한것을 택하기로 하고 가정부

구함이란곳에 전화를 걸었다 .

있는곳을 알려 주었더니 버스를 타고 어디에서 내려서 다시 전화 하라고 해서 시킨대로

했고 그녀가 지정한 장소에서 기다렸다 .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책을 읽으면서 동원된 내 상상력은 혹시 모를 위기를 대처 하기위해

발끝까지 촉각을 곤두세웠고 눈에는 있는대로 힘을 주고 있었다 .

 

여자가 나를 데리고 간곳은 다닥다닥 붙은 골목을 지난 작은 골방이었고 달랑 전화 한대가

놓여 있었다 . 어떤 여자가 연신 전화를 걸고 , 받더니 나에게 집이 어디냐 ? 몇살이냐 ?

이것 저것 묻더니 신원이 확실해야 그집에서 안심한다며 주민등록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

어른들은 알고 계시냐고 물었고 시골집에 전화를 해서 확인할수 있겠냐고 물었다 .

아버진 돌아가시고 엄마만 계시는데 알고 있다고 거짓말을 해서 그녀를 안심 시키고

여자를 따라 간곳은 이문동 어딘가에 커다란 주택이었다 .

 

그 큰집에 오십이 조금 넘은듯한 아주머니가 혼자 계시다가 나에게 몇마디 묻더니

구석방으로 데리고 가서 짐을 풀게하고 청소를 시켰다 .

아랫층에서 이층까지 방도 많았고 마당도 넓었는데 식구는 달랑 셋이었다 .

 

식탁에선 식사가 끝날때 까지 말이없는 조용한 가족들 이었고 그나마 주인 아저씨는

저녁도 집에서 안먹는 날이 많았다 .

학생인 듯한 아들역시 아침 식탁엔 종종 참석치 않다가 불쑥 내려와서 밥을 달라거나

말없이 나가버리거나 하는 불규칙한 사람 이었으니 집안은 항시 조용하다 못해

숨막히도록 엄숙했다 .

 

빨래는 모두 손빨래가 원칙이었고 런닝이나 양말등을 매일매일 삶는것이 당연한 일과였고

아래 이층을 먼지 한톨없이 청소 해야만했다 .

사모님은 하루종일 한두마디가 고작인 말이없는 분이셨는데 내가 음식도 잘하고

깔끔하다며  맘에 들어 하시더니 보름쯤 지나자 나에게 돈을주며 시장도 알아서 보러

다니라 하셨다 .

 

몸은 그런대로 안정을 되찾은 가출이었지만 마음은 안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

언제 화를 낼지도 모르고 어느순간 트집잡힐지 몰라서 불안하기도 했지만 엄마라는

 울타리가 있었고 동생들이라는  진한핏줄들이 있었기에 느낄수 있었던 소속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 좋은집에서 잘먹고 있었고 물은 길으러 다니지 않아도 수도꼭지에서

쏟아지고 있었고 화를 잘내는 엄마가 없는데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

 

밤이면 알수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내 동생들이 보고싶고 걱정됐다 .

새벽밥은 해먹었을까 ? 도시락은 싸 갔을까 ?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수가 없었다 .

무섭고 미운 엄마였지만 한편으론 허겁스럽고 약한 모습도 있었던 엄마도 걱정되었다 .

편지를 써서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생사나 알려 주리라 마음먹고 나는 잘있으니 걱정말고

동생들아 미안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 많이 벌어서 가겠노란 내용으로 끝마쳐진

 편지를 써서 집으로 부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