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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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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야 ! 미자야!


BY 헬레네 2008-11-06

김순자와 노미자 ,,,,,,,,,

김순자는 처음 가출을 결행하게 했던 아이였고 노미자는 공장에서 만난 아이였다 .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사방 여덟자에 다락하나 부엌하나인 엄마의 사택 단칸방에

우리넷과 엄마 까지는 무리였다 .

 

동생들을 엄마에게 맡겨두고 언니와 내가 상경했다 .

당시엔 공단 근처에 가면 공원 모집이란 벽보가 사방에 붙어있었고 수출역군이란

허울좋은  미명하에 하루 열시간 이상씩의 노동력을 쥐어 짜고 숱한 불법과 탈법으로

자신들의 배만 불려도 누구하나 문제제기를 하지않는 그야말로 고용주들의 세상이였다 .

 

집집마다 많게는 7-8 남매 작게는 5-6 명의 남매가 남자들은 학교에 여자들은 공장에

보내지던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

공장도 넘쳐나고 근로자도 넘쳐나고 ,,,,,,,,,,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힘입어 수출만이

살길이다란 구호아래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 까지 기계를 돌려대고 한달에 두번만 놀려줘도

아무도 불만을 얘기하지 않았고 수출납기가 늦어지면 야근이나 철야작업을 다반사로 했다 .

새벽 4시까지 철야작업을 하는 날이면 만들던 스웨터를 깔고 덮고 공장에서 잤다 .

세시간 반을 자고 고양이 세수만하고 다시 일어나 일을하고 그렇게 며칠째 지쳐갈때

쯤이면 그제품은 끝이났다 .

 

여름이 오고 공장에서 나오면 7시라는 시간은 대낮같이 환했다 .

각자 50원 짜리 쭈쭈바를 하나씩 사먹거나 어쩌다 공장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박스에 얼음과 함께 채워둔 냉막걸리를 한잔씩 들이키기도 했다.

시원하게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는 냉막걸리가 하루종일 풀썩거린 스웨터의 먼지를 깨끗이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 월급을 타서 한방식구 넷의 나눈 생활비를 내고 나면 별로 남는게 없었다 .

 

가을이 오고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들던 어느 일요일 같이 일하던 미자가

금곡에 있는 자기집에 가자고 했다 .

청량리 쯤에서 갈아타고간 그아이의집은 전형적인 시골농가였고 작은오빠가 아버지와합께

농사를 짓고 있었다 . 엄마와 아버지가 나를 반겨주시더니 찹쌀로 떡을해서 덩치좋은 오빠가

떡메로 쳐가며  해주신 찹쌀떡이 그렇게 맛있을수 없었다 .

둥글넙적 사람좋게 생기고 순진했던 그오빠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뒤치다거리만 해주었다 .

지금도 교문리나 금곡 어디쯤을 지날때면 노미자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 궁금하고

떡메로 쳐낸 찹쌀떡이 먹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