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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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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딸


BY 헬레네 2008-10-23

4일간의 휴가를 하루를 더까먹고 5일만에 상경했다 .

 

공장측에선 노는재미에 빠져서 제때 오지 않은것으로 생각하고 눈총을 주었지만

달리 변명하고 싶지 않았기에 호되게 야단 맞는것으로 끝냈다 .

 

어느날은 몇명의 미싱사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시다 였다가 그중에서 결원이 생기면

땜방 미싱사로 여기저기 불려 다니기도 하던 나는 말하자면 일류 미싱사들의 시다바리였다 .

당시엔 미싱사로 승격해서 미싱에 앉기까지 1-2년씩 시다 생활을 하는것이 보통이었다 .

 

서너 사람의 미싱사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쪽가위로 실밥을 똑똑따서 앞사람들 에게

전해주기도 하고 떨어진 미싱실을 찿아다 주는등 미싱사 언니들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미싱사로 승격하기를 기다리는 어린 시다들을 사나운 욕지거리를 해가며 달달 볶아대는

못된 언니들도 더러 있었다 .

일이 고달프고 힘이 들수록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어지고 포악해 진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

 

그러던 어느날 나와 같은 처지의 아이가 내게로 와서 " 우리 다른데로 가자 여기선 우리가

시다지만 다른회사로 가서 경력자라고 하고 미싱사가 되면 월급도 많이받고 미싱사들한테

횡포도 안당하잖아 " 라며 부추겼다 .

그말이 맞는것 같아서 공장에다 그만두겠다고 얘기하고 짐을 챙겨서 이직한곳은 스웨터를

만드는 공장 이었다 .

스웨터 공장은 작은규모였고 기숙사가 없어서 방을 얻어주고 한방에 4명씩 자취를 시켰다.

 

11월의 어느날 한방에 자던 우리모두가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고 새벽녁에 병원으로 실려갔다 .

병원비를 내고나니 돈이 없었다 .

와이셔츠 공장에서 보름치 정도의 월급을 받을게 있어서 월급날을 맟춰 받으러 갔더니 이틀 , 삼일

또 삼일 해가며 계속 미루었고 화가난 나는 노동부에 가서 임금 체불로 신고 해버렸다 .

노동부직원과 함께 방문했을때 그곳 사장님은 나를 무섭게 노려 보면서도 노동부 직원과는

 눈인사를 하며 다정하게 악수까지 했다 .

노동부 직원은 계면쩍게 웃으며 나를 쳐다 보더니 절차대로 신고가 되었기에 나도 어쩔수가

 없었다며 오히려 사장에게 변명을 하고있었고 사장은 나를 구석으로 불러서 공순이 생활은  다한줄

알라는 협박과 함께 보름치 임금을 계산해 주었다 .

 

그래서 였을까 ? 그후 부터는 스웨터 공장에서도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고 또 다시 이직을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함께 어딜가도 꼬리표가 따라 다닐것이란 생각이 함께 들었다 .

어떤 부당한 일에서도 힘없는 사람은 참아야만 한다는 현실이 짙은 패배감과 함께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