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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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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아리랑


BY 헬레네 2008-10-21

눈뜨고도 코베어 간다는 우스갯말이 그냥 농인줄 알았다 .

 

촌년이 거대한 도시 서울에 마치 보따리가 던져지듯 그렇게 툭 던져졌다 .

역광장을 빠져 나오면서 두리번 거리자 상냥한 웃음의 여인이 다가와 내 팔을 잡더니

" 아가씨 취직하러 왔지 마침 좋은데가 있는데 ,,,,, " 하며 오랜 지기인양 나를 반긴다 .

멀건히 쳐다 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그 여인을 똑바로 쳐다보며 " 아닌데요 난 언니집에 왔어요 "

하자 " 아 ` 그래 " 하더니 휙 가버린다 .

 

부산에서 상경하기전에 어떤 언니가 얘기해 주길 서울역 주변에 너처럼 어린 여자아이들을

상습적으로 술집에 팔아 넘기는 사람들이 많다더라며 조심하라고 일러 주던게 생각나면서

그제사 눈뜨고도 코베어 간다는 서울에 내가 와 있다는게 실감이 났다 .

 

가르쳐 준대로 도착한곳은 구로 공단 이었다 .

완행열차 안에서 내도록 생각한것은 낮엔일하고 밤엔 학교가 있는 풍경 이었고 약골인 내가

견디지 못하고 영화나 소설의 주인공 처럼 폐결핵이라도 걸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기대였다 .

 

기숙사를 배정받고 나까지 4명인 방에 들어가 어색하게 인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하루종일 단팥빵 한개와 우유 한병이 다인 내속에서  소리와 함께 허기가 전해져 왔다 .

뒤척이다가 옆사람에게 학교에 대해 물었더니 그런것은 아예 없다면서 자기가 알기로는

한일합섬 이나 방림방적 같은 큰 공장들은 있긴 한가 보더라며 혀를 끌끌 찼다 .

마지막 기대마져 무너져 버리고 마음 까지 허한 밤이 지나갔다 .

 

날마다 변하지않는 식단인 멀건 콩나물국과 김치를 먹으면서 하루 열시간씩 공업용 미싱을

밟아돌려 가며 만들어 내는것은 와이셔츠 였다 .

한줄로 길게 앉아서 맨뒤에서 몸체를 박으면서 앞으로 밀어내면 소매를 , 소맷단을 , 단추구멍을

그런식으로 맨 앞사람까지 도착하면 한장의 와이셔츠가 나오고 다림질과 포장을 하면 완성인데

화장실도 갈수가 없었다 .

뒤에서 박아 나오고 내가 박아서 앞으로 내밀면 앞에서 받아서 하기 때문에 쉴새없이 돌려 대야만

일감이 밀리지도, 달리지도 않는다 .

하루에 몇매가 나오는지를 체크하고 윽박을 질러 대는 통에 다들 주눅이 들어 있었다 .

오전 8시 30분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10시 30분이면 10분간의 휴식이 주어지는데 그때라야

화장실을 갈수 있었다 .

오후엔 3시 30분에 휴식시간 10분이 주어지고 저녁 6시 30분까지 도합 10시간의 일을 하고 나면

공부고 뭐고 아무생각이 없을만큼 지쳐 있었고  한달에 절반쯤은 야근까지 해야했다 .

한달에 두번 쉬는 일요일이면 아이들은 기숙사를 빠져 나가 동대문 시장으로 영화관으로

쏘다녔지만 서울에 일가친척 하나없는 나는 갈곳도 없었다 .

 

추석이 다가왔다 .

알량한 첫봉급을 갖고나가 빨강색의 엑스란 내의 두벌을 사서 새벽 첫버스를 타고 청량리 역으로 갔다 .

지방에서 올라온 수많은 근로자들이 귀향표를 사기위해 줄서 있었고 몇시간째 줄어들지 않는 자리에

사람들은 지칠대로 지쳐 악다구니를 쓰고 있고 전경들과 경찰들은 연신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있었다 .

8시간을 기다리고 10시간을 완행열차에 시달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

 

학비를 내달라고 그렇게 얘길해도 들은척도 않던 엄마가 객지에 나갔다 돌아온 딸이 안쓰러웠는지

헬쓱하고 누렇게 뜬 얼굴을 안타깝게 쓰다 듬으며 울고 있었다 .

엄마집에서 부침개와 송편과 고깃국까지 포식을 하고 포만감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배가 쥐어 짜듯이 아파왔다 .

공동변소까지 가지도 못하고 바지도 벗지 못한채 물처럼 설사가 흘러 내렸다 .

그렇게 꼬박 하룻밤 하루낮을 설사를 하고 퀭한 얼굴로 앓아 누웠는데 둘째언니가 찿아왔다 .

기숙사에서 몇달째 멀건 콩나물국과 김치만 먹던 속이 갑자기 들어간 기름기를 가둬두지 못하고

깨끗이 쓸어 버렸으니 앉아 있기조차 힘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