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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마무리 (완결)


BY 자화상 2014-12-16

15장 화해의 마무리

 

황 여사와 유비는 짐작은 했지만 주연이 어렵게 입을 열어 모든 사실을 고백하자 무척 놀랍다는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냈다

이런 신기한 인연도 있느냐며 하늘이 내려준 인연이라고 감동을 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모자간이 인연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며 이건 필시 하늘이 맺어준 천생모자지간이라며 정말 잘 되었다며 좋아 했다.

 

반응이 좋은 쪽으로 기울어지자 주연이도 용기가 났다. 용서를 빌었다

황 여사는 무슨 용서가 필요하겠느냐

유성이에게 친 엄마가 나타났으니 이 이상 더 뭐가 필요하겠느냐며 지난 일은 다 잊고 앞으로 잘 살아 보자며 손을 잡아 주었다.

 

유비도 주연이에게 이렇게 엄마가 되어 준 것도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는데 생모였었다니 더 기쁜 일이 없겠다고 진정으로 기뻐했다.

 

뜻밖의 너그러운 이해와 사랑에 주연은 얼떨떨했지만 그 지겨웠던 과거의 

비밀을 안고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후련하게 했다. 이제부터서 과거에서 벗어나 떳떳한 유성이의 엄마로 살아 갈 수 있다는 기쁨에 주연은 더 이상의 소원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성이를 어떻게 해서 낳았는지 한 번 털어내 버린 기억은 쉽게 희미해져 주연의 상처도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증오와 후회도 봄 눈 녹듯이 사라져 유성이의 웃음을 마음에 양식으로 먹고 사는 주연이는 행복했다

 

아직 배 안에 있는 아기의 존재가 주는 가슴 뿌듯한 기쁨도 주연의 나날을 사는 재미에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집안이 웃음소리로 울리는 거대한 종이 되었다

주연의 손으로 아름다운 종소리를 울려내니 다시 집안에 평화가 왔다.

 

엄동설한이 서서히 물러가는 2월 말이 되었다

거실의 만데빌라에서 새 잎이 쉼 없이 나오고, 베란다의 벤자민이며 산호초등의 화초들도 새잎을 쏙쏙 내밀고 있었다. 제법 찬바람이 잦아들어 길 건너의 햇볕이 강아지의 털을 간질이고 있었다.

 

출산의 준비물을 챙겨 가방에 넣던 주연은 유성이를 낳을 때가 생각나 손을 멈추었다. 간간히 진통이 있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첫 아이를 낳았던 경험이 있기에.

 

그 때 유성이를 낳던 때는 정말 외로웠었다

옆에 아무도 없었다. 죽을 만큼 견디다가 병원에 갔었다

아무 대책 없이 아이를 낳았었다. 누구의 씨 인지도 모르고 다만 빨리 낳아서 버리고야 말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주연은 그 때 생각이 나니 다시 눈물이 쏟아져 휴지로 닦으며 울었다

이렇게 고마운 분들을 만난 건 하늘이 도와주셨음이라 생각했다. 정말 다행히 유성이를 데려다 길러주셨고 이렇게 모자가 만나 살게 해 준 은혜를 평생 종처럼 살아도 다 갚지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연은 진통의 간격이 빨라지고 있어 유비에게 전화를 하였다.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의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 아기를 안고 행복해 하던 주연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세 시간의 진통이었지만 가족들이 있어 겁나지 않았었다. 첫 번 아이 낳을 때는 진통보다는 무서워 더 떨었었다

저주했던 아이였고 죽어 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던 아이였었다

차마 죽일 수 없어 버리고 떠났지만 다시 찾는다거나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 본적 없었다

다만 열 달 동안 배 안에 담았었다는 기억이 지워지지 않아 힘들어했었다

하루 이틀 건너 꾸어지는 악몽에 가위눌리는 밤이면 죄를 지었다는 걸 인정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어딘가에 아기가 살아 있다면 착하게 살아가라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모성이었다고 변명이 되었다.

 

주연은 그렇게 세월을 살았었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학대하며. 바보처럼 지켜내지 못한 몸뚱이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누구에게도 숨겨놓은 과거의 상처를 들키지 않았다.

 

주연은 유비를 만나고부터 여자로써의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성이가 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세상이 편하게 보였고 악몽도 사라졌다. 누군지 모르는 암흑도 이젠 용서 할 수 있었다

 

주연은 자신의 인생을 비극으로 바꾸어 놓은 그 범인을 암흑이라 기억했다. 그 암흑만 인생에 끼어들지 않았어도 모든 꿈과 희망이 사라진 삶을 살지 않았을 거라고 많은 나날을 저주하며 살았었다

그러나 이젠 용서하고 잊기로 했다.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유성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과거를 잊을 수 있었다.

 

유성이는 날이 갈수록 하는 행동이 아빠를 닮아갔다

웃는 모습에서도 말하는 표정에서도 유비의 모습과 본을 뜨듯 닮아져 갔다

주연은 그런 게 느껴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랬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 거릴 때도 있었다. 살다보니 닮아 가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핏줄만이 따라 할 수 있는 행동까지 하는 것이었다.

가끔 콧잔등을 검지로 문지르는 버릇. 짙은 눈썹. 튀어나온 뒤통수. 갸름한 얼굴이 많이도 닮았다. 누구나 어쩜 그리 닮았느냐고 할 정도로 친 부자지간으로 믿어주었다. 그래서 주연은 하늘이 내려 준 인연인가 보다고 생각하며 감사하며 살았다.

 

여름이었다. 유성이가 장염으로 입원을 했다

황 여사가 병원에 있겠다고 주연에게 집에서 유재를 돌보라고 했다. 유재를 재워 두고 서랍을 정리하던 주연은 작년 가을에 황 여사의 서랍에서 발견했던 문제의 목걸이를 보게 되었다

그 목걸이 때문에 많은 일이 생겼고 유성이가 친자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었다.

주연은 다시 궁금해졌다

 

어떻게 해서 황 여사가 그 목걸이를 가지고 있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무조건 물어 볼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알고 싶었다. 그래서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주연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유성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다. 황 여사도 유비도 주연이가 새로운 목걸이를 하고 있는 걸 알아채지 못한 눈치였다. 그래서 주연은 먼저 말을 꺼냈다

 

황 여사의 방을 청소 하다가 서랍을 정리하는데 화장품 하나를 손에서 놓쳐 깨어졌다. 그래서 모두 꺼내 놓고 닦아내다가 이 목걸이를 발견 했다. 그런데 목걸이에 자기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옛날에 잃어버린 목걸이가 아닌가 하고 보았는데 어딘가 다른 것도 같고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궁금해서 물어 누구 것인지 물어 보려고 걸고 왔다고 했다. 그때서야 황 여사는 서랍에 넣어두고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 생각나 잠시 충격을 받았다

유비도 깜짝 놀랐지만 모르는 체 해야 했다.

황 여사는 빠르게 대책을 생각해야 했다

잠시 침묵한 후 입을 열었다

옛날 살던 집 대문 밖에 떨어져 있기에 주워서 가지고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주연은 어디에서 살았는지 물었다. 황 여사가 말하자 자기도 그 동네 근처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비로소 자기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 때 자기에게 욕보이고 훔쳐갔던 범인이 떨어뜨린 게 분명하다고 했다

황 여사는 무척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일이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인연이 되는 끈이 얽혀져 있느냐고 하며 정말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

 

주연도 정말 신기한 일이라며 분명 자기 목걸이라고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말을 했다. 유비도 놀랍다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하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주연이를 만나 가족으로 살게 된 것이 다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라고 크게 웃으며 흥분까지 했다

주연은 두 사람이 너무 너그럽게 자신의 실수나 죄를 감싸주는 것을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언짢게 생각하고 기분 좋아 하지 않을 텐데, 두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관대하게 대해주니 의심이 갔다.

주연은 혹시 그 범인이 유비가 아니었을 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