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확인
주연이 임신 6개월이 넘어 서서히 몸이 무거워 질 때였다.
회사에 사표를 내고 전업 주부로 유성이의 엄마로 만족하며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 틈에 찾아 온 가을은 꽃밭 가득히 내려앉아 마당까지 흘러 내렸다.
담벼락위의 넝쿨 장미도 잔뜩 가을을 끄집어다 나름대로 부지런히 꽃송이를 터트렸다.
주연은 일하다 말고 일부러 내다보고 숨 한 번 들이 마시고 다시 들어가 일하고 그러느라 더 분주했다.
유성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이면 주연은 단장하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유성이를 안아줄 때면 유비보다 더 정이 가는 걸 감추지 못했다.
보고 또 보아도 안아주고 싶은 아이라며 식구 누구 앞에서도 주저 없이 마음을 다 열어 사랑해 주었다.
그러는 주연이를 황 여사도 유비도 유명이도 가식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핏줄이니까.
주연이 혼자서만 정말 자신이 낳은 아이라는 걸 모르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딱하고 가엾지만 모두들 독하게 입을 다물고 지켜보아야만 했다. 다만 때가 될 때까지 서로 말을 아끼면서.
가을 날씨가 너무 상쾌한 10월 하순 월요일 오전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출근하고 유성이도 유치원에 보내고 나서 주연은 무료하여 뭔가 일을 찾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창문마다 다 열어젖히고 대 청소를 시작하였다.
거실을 치우고 황 여사의 방을 깨끗이 청소하려 들어갔다.
그리고 화장대 위의 먼지를 닦아내다가 화장품들 사이에 끼어 있는 조그만 귀걸이 한 짝을 발견 하였다.
주연은 집어서 보석함에 넣어 두려고 서랍을 열었다.
눈에 보이는 함을 열고 귀걸이를 넣고는 그 함을 받혀놓은 얇은 색조화장품 케이스를 보게 되었다.
평소 안 쓰시는 걸까? 하고는 그냥 서랍을 닫으려다 주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궁금해서 무슨 색인지 쓰던 것인지 보고 싶어 열다가 케이스가 있던 자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때 케이스 안에 들어 있던 작은 솔이 서랍 안의 물건들 사이로 떨어져 들어가 버렸다. 주연은 그 솔을 집으려고 다른 물건들을 밀어 내다가 작고 오래 된 반지 통을 보았다.
이게 뭐야? 하며 궁금해서 그 통을 집어내어 열어 보았다.
갑자기 주연의 눈이 커졌다.
많이 보았던 금목걸이 아니 자기 거였던 금목걸이가 있었다.
주연은 눈을 의심하며 목걸이를 집어서 살펴보았다. 목걸이에 분명 주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주연은 고개를 갸웃 거리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왜? 자기의 목걸이를 황 여사가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5~6년 전에 성폭행을 당했던 날 잃어 버렸던 목걸이였다.
범인이 가져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던 것을 자신의 시어머니인 황 여사가 가지고 있다는 게 이해 할 수 없었다.
주연은 일단 금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고 모든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고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 청소를 하는 내내 이해가 되지 않아 머릿속이 어지러워 자리에 누워 버렸다. 계속 생각해 보아도 정말 도무지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주연은 유비의 가족이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혼자서 아무도 몰래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아 마침 빈 집이니 대문을 잠그고 집을 나섰다.
바삐 걸어서 동사무소로 달리듯 빨리 걸었다.
마음이 조급하고 생각은 어지럽고 가슴이 흥분되어 벌떡 벌떡 뛰었다.
마치 그 날의 도둑 그 범인을 만난 듯 무서워졌다.
하지만 길게 숨을 들이쉬며 동사무소에 들어갔다.
유비의 주민등록 등본을 뗐다. 전 주소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 주소를 알아내면 뭔가 실마리가 풀릴 것 같아서였다.
드디어 주연의 손에 등본이 들려졌다. 주연은 일단 대기자 자리에 가 앉았다. 그러고 나서 등본에서 전 주소를 보았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주연은 재빨리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았다. 분명 등본에 나와 있는 전 주소는 주연이 살았던 그 원룸 동네였다.
거기에 집 번지도 자취했던 집의 번지 숫자와 가까운 숫자였다.
아마 양 옆 집에서 어느 한 쪽으로 해당되는 집 번지일 것 같았다.
주연은 까맣게 잊어버렸던 악몽이 되 살아나 온 몸이 떨려 옴을 느꼈다.
옛날 그 집 이웃에 유비 가족이 살았다는 건 아직 들어보지 못했었다.
아니다 사실은 전에 어디에서 살았는지 묻지 않았었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이렇게 우연히 옛날 그것도 생각도 하기 싫은 그 집의 이웃에 살았었다니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아 믿을 수 없었다.
그럼 자신의 금목걸이는 어떻게 해서 황 여사가 가지고 있게 되었을까?
여기에서 더 이상 추측할 수가 없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섣불리 물을 수도 없는 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던 곳이라 알려질까 두려워서였다.
괜히 물었다가 과거를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 다음은 이혼하게 될 것 같아 겁이 났다. 일단 집에 돌아가 천천히 생각하자 하며 주연은 힘없이 걸음을 떼 집으로 돌아왔다.
잊어버렸던 악몽이 다시 살아 나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쉬게 만들었다.
자연히 얼굴에 활짝 피었던 웃음기가 사그라지고 눈빛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리고 밤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가위에 눌려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
유비는 그러한 주연을 보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주연은 말 할 수 없었다. 안겨 오는 유성이를 보면 눈물만 앞을 가려 고개를 돌리곤 했다.
눈치 빠른 황 여사가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주연이 자신의 아이가 태동을 하니 남의 자식으로 알고 있는 유성이가 보기 싫어지고 있나 보다고 짐작을 하였다. 유성이에게 더 죄를 짓기 전에 알려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황 여사는 드디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