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맞선
황 여사는 주방장에게 물었다.
혹시 두 사람의 손님이 이 식당에 언제 왔던 적이 있느냐고.
주방장은 웃으며 말했다. 이 식당 사장님의 조카라고 했다. 그리고 같이 온 남자 손님은 조카가 다니는 회사의 과장님이라고 하였다.
회사가 가까운 지방에 있는데 한 번씩 출장을 오면 들린다고 했다.
황 여사는 이런 인연도 있구나. 하고 한 숨을 쉬었다.
주연이 식사를 마치고 나갔다.
황 여사는 혹시 결혼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아직 미혼이라고 하여 일단 안심이 되었다. 무슨 회사인지 물어서 기억해두었다. 기회다 싶었다. 어떻게든 주연이를 만나서 유비와 결혼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유성이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결심을 하였다.
집에 돌아 온 황 여사는 일단 유비에게는 비밀로 하고 유명이를 시켜서 주연이 있는 회사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게 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 지인이 있는지 찾아보라했다. 중매를 부탁하려면 주연이 믿을만한 사람을 택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유비와 만나게 하고 싶었다.
유성이에게 엄마를 찾아주고 싶었다.
아마도 주연이와 유비는 필연일 듯싶었다. 이렇게까지 자꾸만 만나서 얽혀지니 이게 필연이 아니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황 여사는 왠지 주연이 유비와 결혼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유성이가 복이 있다면 틀림없이 엄마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뛰었다.
며칠 후 유명이는 주연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왔다.
주연이를 아끼는 과장님이 유비의 회사 과장님과 친분이 깊다는 것까지 말해 주었다. 황 여사는 하늘이 도왔다고 감사를 했다. 양 쪽 과장님의 소개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음 날 주연이 중국으로 파견 근무를 떠난다고 했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유비에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유비는 그 때서야 자기도 가을에 산행했을 때 산에서 주연이를 보았었다고 실토를 했다.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는 것 같았는데 도저히 알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연히 또 만날까 싶어 가끔 산에 가서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못 만났다고 말했다.
유비의 말을 듣고 황 여사는 아무래도 둘이는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주연이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양쪽 과장님들께 맞선을 부탁하자고 얘기를 마쳤다.
그동안 유비는 회사에서 더 열심히 일을 하여 과장님 눈에 들게 하였다. 유명이는 주연이 회사의 과장님과 친분을 쌓아 놓았다.
매화꽃이 피고 찬바람이 골목에서 자취를 감추자 담장아래 꽃밭에는 너도나도 싹을 내어 밀고 새 잎을 내밀었다.
황 여사는 꽃 밭 귀퉁이에 가지와 고추모종도 여러 개 심었다.
한 여름에 따다가 된장에 찍어 먹을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유성이가 보고 뭐냐고 물었다. 고추라고 하니 자기 거 고추랑 같은 거냐고 물어서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성이가 아빠를 닮아서인지 키가 컸다.
다섯 살인데도 또래들보다 훨씬 커 보였다.
황 여사는 이젠 유치원 병아리 반에 유성이를 등록시켜 주었다.
엄마 없이 자랐지만 제법 의젓하였다. 혼자서 옷도 입었고 양말도 신었다. 모자도 쓰고 가방을 메고 신발도 신었다.
황 여사는 유성이에게 어서 엄마를 찾아주고 싶었다.
여름이 오면 모두 잘 될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유비에게도 유성이에게도 살맛이 나는 기쁨의 세상이 오리라고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비록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비밀의 상자를 가슴에 묻었지만 이제는 다 같이 열고 함께 나누어야 할 운명의 조각들. 누구의 몫도 혼자서 가질 수 없다.
그러기에는 세상이 참 넓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을 건 천륜이기에. 황 여사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였다.
여름은 쉽게 오지 않았다.
철쭉꽃이 없는 꽃밭에 늦봄이 노닐어 가지나무에 보랏빛 꽃을 피웠다.
황 여사는 이제라도 철쭉꽃나무를 심어볼까 하고 생각을 하였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다. 주연이를 불러오게 해 줄 것 같아서.
줄기차게 내리던 장마가 하루아침 햇볕에 사라지고 나니 길바닥을 달구듯 뜨거운 열이 내리 붓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지겨웠을 무더위마저 때맞추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쫓기듯 사라져갔다.
이제나 저제나 주연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느라 황 여사는 가슴이 탔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라고 되뇌며 확신을 가졌다. 분명히 주연이 유비를 만나고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떡 줄 사람 생각도 않고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에 어울리는 고집이었다.
하지만 김칫국물이 짜다고 해도 마다않고 계속 마셔야만 될 사정이었다. 유성이를 위해서는 그 어떤 어려움도 다 이겨내야만 할 처지였으니까.
마당 한쪽에 자리한 석류나무에 몇 개 열린 석류가 빨간 씨앗을 내 보이는 여름 끝 무렵이었다.
황 여사는 유명이에게서 주연이가 돌아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전혀 눈치 못 채게 하고 모든 일을 성사시킬까 왼 종일 궁리를 하였다.
유비와 유명이가 퇴근하고 돌아오자 유성이를 재우고 난 후 세 사람은 만년지계를 세웠다. 유명이가 주연이의 회사 과장을 만나 유비회사의 과장에게 두 사람의 맞선을 주선 해 줄 것을 부탁하기로 했다.
유비가 5년 전부터 짝 사랑을 해왔다고 그러니 두 분의 과장님들께서 선남선녀를 추천하였다는 취지로 만나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하였다. 이리하여 첫 단추가 꿰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