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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BY 자화상 2014-12-16

10장 필연

 

드디어 유비가 대학을 졸업 하고 멀리 충청북도의 한 도시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마침 유명이가 근무하고 있는 경찰서도 유비의 회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래서 황 여사는 아예 자식들과 함께 살기 위해 집을 팔았다

 

이삿짐을 싸다가 유비의 책상 서랍에 아직 있는 주연의 목걸이를 보았다

유비가 버리지 못한 이유를 다는 이해 못해도 마음이 아파왔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는 일과 연관된 물건이지만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황 여사는 자신의 패물함에 넣어두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단층 양옥집이었다

황 여사는 무엇보다 전에 살던 집을 벗어났다는 게 제일 시원했다

마음속의 감옥과 같았던 집이었다

 

창문만 열면 주연이 살았던 방이 보였고 그 때마다 심장이 방방이질을 해대었었다. 유비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유성이가 더 크면 의자 딛고 올라가겠다고 그러니 위험하다며 아예 창문을 봉해 버렸다

 

유성이가 생 후 10개월이 되어 뭐든 잡고 서고 할 때였다

그 후론 둘이 다 그 창문을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성이의 재롱을 보며 서서히 그 사건을 잊어갔다. 아니 기억을 지워나갔다고 해야 옳을 것 같다.

 

황 여사는 새 집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담장 밑으로 넉넉한 꽃밭이 있었다

넝쿨장미부터 심고 치자나무, 매화나무, 감나무까지 심었다

그리고 고무나무 각종 키 작은 꽃나무들을 사다가 심었다. 하지만 철쭉나무는 심지 않았다.

 

집 나갔던 유비가 철쭉꽃이 만개한 때 돌아왔었다

그 날은 황 여사가 유난히 철쭉꽃이 예뻐서 바라보았던 날이었다

다음 날 저녁 집에 무사히 돌아 온 기념으로 건사한 외식 약속을 했다. 유비는 오랜만에 마음이 들떴다. 그런데 하필 병원 앞의 철쭉꽃을 보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가 만삭으로 병원에 들어 선 주연을 보게 되었다

필연이었을까? 황 여사도 집에 돌아 온 유비와 철쭉꽃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서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분만실에 들어가는 주연이를 보게 되었다. 그 날 철쭉은 두 사람을 슬프게 했다. 양심에 고민하던 황 여사는 어쩔 수 없이 버려진 유성이를 데려왔다. 그래서 유비의 일생에 무거운 짐을 안겨 주었다.

 

그 후로는 황 여사에게 철쭉꽃은 기쁨이 아니었다. 설렘도 아니었다. 반가운 느낌도 들지 않았다. 무 덤덤 자체였다. 이렇듯 단순한 이유였지만 봄의 꽃 잔치에 철쭉나무만은 초대하지 않았다.

 

새 집에서는 모든 게 새롭게 열렸다. 유비의 얼굴도 더 밝아졌다

유명이는 오빠의 밝아진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황 여사는 이제야 모든 죄의 구속에서 벗어 난 느낌이었다. 그런데 다시금 주연이를 떠올리게 하는 건 유성이었다

 

세 살 된 유성이는 제법 말을 잘하였다. 엄마 없다고 어디 갔느냐고 자꾸만 묻는 것이었다. 유비도 황 여사도 유명이까지 유성이가 엄마를 찾을 때마다 미국에 공부하러 갔다고 둘러대었다.

 

유성이는 춤을 잘 추었다. 조그만 다리를 굽혔다 폈다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를 들썩였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유성이가 있어 집안엔 늘 웃음소리가 났다

황 여사는 유성이가 어떤 짓을 해도 예쁘기만 하여 손에서 놓지를 않으려했다. 유비는 그런 어머니가 있어서 감사했고 이렇게 청춘이 다 가고 늙어 간다 해도 억울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 해 가을이었다. 회사에서 직원 단합대회로 산행을 갔다

유비는 일행을 잠시 떠나 한적한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보고 서 있었다

 

그 때 여자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지나갈 수 있게 한 쪽으로 비켜 서 주었다

세 명의 젊은 여성들이 배낭을 메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 중의 한 여자가 더운지 땀을 식히려는 듯 등산 모자를 벗어 들고 있었다

유비는 갑자기 심장이 뛰고 몸이 얼어버린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여자였다. 주연이었다. 유성이의 엄마 주연이었다. 정말 다행한 일은 주연이 유비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유비가 혼자서 훔쳐보며 좋아했으니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유비는 빠르게 생각해내었다. 주연이 어디 사는지 알아내야겠다고.

 

유비는 모자를 눌러쓰고 좀 떨어져서 따라 걸으며 그녀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그다지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장님이나 과장님 어쩌고 하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인데 사명이 뭔지 어느 시 도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보았으나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큰 길이 나오고 그녀들은 같이 온 일행인지 다른 여성들을 만나 합류하여버렸다.

 

유비도 같이 왔던 일행을 만났고 그래서 더 따라가지 못하고 하는 수 없어 걸음을 돌려야했다. 그 날 이후로 유비는 다시금 주연이를 떠올리게 되었다

죄책감도 있었지만 유성이를 위해서 어떻게든 찾아내고 싶어졌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휴일이면 주연이를 보았던 그 산의 그 길을 꼭 올라가서 혹시 만날 수 있으려나 기다렸다가 내려오곤 하였다.

 

유성이가 네 살이 되자 황 여사는 유아원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행히도 유성이가 유아원을 가려해서 등록을 하고 황 여사는 일자리를 찾아보았다. 쉽게 구 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주방에서 하는 일이었다

유성이를 보낸 유아원 근처의 식당 주방에 일자리를 구했다

아직은 어린 유성이를 위해 유아원 끝나는 시간에 퇴근 시간을 맞추었다. 그래서 집에 오면서 유성이를 데리고 왔다.

 

아직 크리스마스가 돌아오기 전 이었지만 많은 양의 첫눈이 내렸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인 날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는 듯 식당 문을 열고 나이 지긋한 남자와 여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주방에서 잠깐 내다보던 황 여사는 순간 놀라서 그릇을 놓칠 뻔 했다

주연이었다. 주연이가 식당에 온 것이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주연이 이곳까지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