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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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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업이다


BY 자화상 2008-09-11

 

죄는 업이다

 

 

6장 죄는 업이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우연히 울고 있던 주연을 본 다음 얼마 후부터 주연이 보이지 않았다.

황 여사는 궁금했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은 마음에 부엌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창틈으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싸늘한 한기를 느낄 때도. 그래서 늦가을의 석양을 바라보며 센티한 감정을 즐기던 취향도 가슴속에서 이미 삭혀버렸다

주연이 보이지 않는다고 신경 쓸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3개월 째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유비가 걱정되어 주위의 어떤 일도 관심 안에 들어오지 않았다.

황 여사는 숨을 쉬고 먹고 자지만 그건 사는 것이 아니었다

유비가 다섯 살 때 남편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냈다. 그래서 3대 독자인 유비와 두 살 난 딸 유명이를 이 세상의 그 어떤 위험에서도 지켜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독하게 살아 온 황 여사였다.

황 여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유비와 유명이는 잘 자라주었다. 일류 대학의 공대 4학년이 되도록 어미 속 한 번 썩이지 않고 효성이 지극했던 유비는 듬직한 아들이 되어주었다. 공부도 잘하고 심성 곱고 성격 좋은 딸 유명이 역시 어디 내 놓아도 자랑거리였기에 황 여사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평화롭기만 하던 황 여사에게 액운이 날아들었다

그 날은 유비가 집을 나가기 3개월 전 이었다

중복의 찜통더위로 유난히 밤잠을 못자고 설쳤던 새벽이었다

유비가 현관문을 조용히 밀고 들어왔다. 그런데 손에 신발 한 짝을 들고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걸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황 여사는 일단 모르는 척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열린 방문 안쪽에 누워있었기에 뜨다 만 실눈을 다시 감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에 옥상에 올라가 상추를 따다 습관처럼 아래 골목길을 내려다보았다. 황 여사의 눈에 뭔가 보였다. 고개를 갸웃하다가 가슴이 철렁해짐을 느꼈다. 유비의 조깅화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황 여사가 값이 비싸서 몇 번 저마하다가 사다 준 것이라 쉽게 알아 볼 수가 있었다

황 여사는 누가 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내려가 신발 한 짝을 주워왔다.

 

유비는 여느 때보다 식욕이 없는 입맛으로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먹고 일어서더니 현관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자신의 조깅화가 두 짝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슬쩍 황 여사를 한 번 돌아보았다. 황 여사는 모르는 척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상을 치웠다.

 

그리고 말복이 지났다

무더웠던 여름 끝자락의 어느 날 유비가 말없이 사라졌다. 다행히 꼭 돌아오겠다는 편지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황 여사는 진즉에 아들이 엄마에게도 말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다는 걸 예감 하였었다. 그래서 유비가 힘들게 내렸을 결정에 마음이 아팠지만 유비를 믿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황 여사는 아들이 빠른 시일 안에 마음을 정리하고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쉽게 돌아 올 거라는 믿음으로 실종신고도 하지 않았다. 황 여사는 유비가 집을 떠난 이유를 짐작되는 바가 있었지만, 알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후 황 여사는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

아들이 죄가 있다면 어미가 받게 해주소서. 어미에게 그 벌을 내리소서.

그래서 아들에게서 십자가를 거두어 주소서

이렇게 황 여사는 자신이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해 달라고 매일 간절하게 기도를 하였다.

이러한 황 여사의 지극한 모정이 하늘에 닿았던지, 다음 해 봄 꽃밭에

철쭉꽃이 만개하던 어느 날 유비는 어미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