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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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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


BY 현정 2009-10-31

1심 최종변론이 있는 날이다.
가고 싶지 않다.
어떤 험한 꼴을 또 당할지.
어떤 기가막힌 것을 들고 나올지.
변호사에게 가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변호사는 오늘은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 증인심문과정에서 미처 발견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 꼭 와야 한다는 몇번의 당부를 한 변호사는 미심적었는지 비서를 시켜 당일 아침 다시 확인전화를 했다.
지금 많이 바쁜데...
이사갈 집 청소도 해야하고...
아무리 핑계를 대도 전혀 들어주지 않는 야속한 변호사님...

참 우리 드디어 이사간다.
이제 빈대생활 청산이다.
비록 반지하 방이라도 내 돈으로 방얻어서 아이들하고 같이 살수 있다. 아이들 어린이집때문에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 주택가로 집을 구했다. 이사 날짜는 이제 한달 정도 남았지만 새 일 들어가지 전에 이사를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걱정이다.
이사가면 당장 끓여 먹을 남비 그릇, 가스랜지 다 사야 하는데. 그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
그래도 좋다. 가시있는 금 침상보다 멍석깔아놓은 내집이 더 좋다.
사랑이 소망이 하고 우리 소꼽장난 하는것 처럼 그렇게 살아야지..

'쿵쾅쿵광'
누군가 초인도 안누르고 무식하게 현관문이 부서져라 문을 두드렸다.
"어? 태양군이 여길 어떻게? "
문앞에는 숨을 헐덕이며 태양군이 서있었다.
"자 빨리 출발하세요.. 준비는요?"
태양군이 내 몰골과 집안 상태를 흘긋 보며 미간을 찌뿌렸다.
"이렇게 늦게 출발하면 회 못먹어요. 빨리요. 자 빨리.."
무슨 일이지?
마치 MT라도 가는 신입생처럼 태양군은 한창 들떠 있었다. 태양군의 차림새 또한 MT가는 차림새였다.
엄배덤배란 말을 이럴때 쓰는 건가?
그냥 뭐에 홀린듯 태양군의 호들갑에 정신을 팔려 대충 얼굴에 로션만 찍어바르고 따라나섰다.
주차장에는 작은 승합차가 서있었고 승합차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반갑지만 살짝 어색한 얼굴들이 빼꼼 내밀고 저마다 인사를 건냈다. 그러고 보니 대성이가 운전석에 있었네.
지난번 회식자리에서 나에게 소주를 건내주던 여자도 있었지만...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인사만 하고 이름을 얼버무려 버렸다.
어디 가는거지?
난 법원가야 하는데..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든 차안에서 모두 MT가는 학생들 처럼 노래를 불렀다. 참 오랬만에 들어보는 연가였다.
비바람이 치던 바람.. 잔잔해져 오면.. 오늘 그대 오시려다.. 저바다 건너서..
아!
이 노래가사가 이런것이 였구나. 입으로만 부르던 가사가 그 뜻이 가슴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참 가사가 시다.. 누가 이런 시를 썼을까?
모두 신이나서 노래를 따라부르고 어느사이 나도 그들과 함께 박수치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를 가야 하는지도 까맛게 잊어버리고...
휴게소에 잠깐 들렀을때 나는 대성이를 찾았다. 목적지가 어디던 그 전에 나를 내려달라 부탁하려 한다.
남자 화장실 앞에서 기다렸다.
"대성아..."
옆에 태양군도 나오고 있었다. 순간 우물 주물.. 그러나 말은 해야겠지! 내가 우물주물 하자 태양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알아요... 은수정씨 목적지가 우리 목적지에요.."
갸웃...
이게 무슨 소리지?
빙그래 웃는 대성이 얼굴이 뭔가 있다.
"우리 은수정씨 응원가요. 응원단이죠.. 그리고 간김에 바다에서 우리끼리 MT 하려고요. 감독님 눈치 안보고.. 우리끼리.. 전 MT란것 한번도 못가봤어요."
태양군 음성에서 설레임이 가득 배어 나왔다.
나는 더 난처한 상황이었다. 무슨 응원? 좋은 일도 아닌데. 더군다나 어떤 험한꼴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이건 정말 아니다. 싫다. 대성이가 왜 이렇게 생각 없는 행동을 했을까? 이럴애가 아닌데..내가 얼마가 이 일을 사람들이 아는것을 싫어하는지를 잘 아는 대성이가 왜 이런 일을?
하맑은 모습으로 너무도 좋아하는 태양군에가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여자들에게 말할수도 없고, 정말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정말 이들이 이렇게 생각없는 행동을 하다니.. 아무리 내가 미워도. 정말 이해할수 없다.
휴게소부터 속초까지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만, 아니 속이 뭉그러지는것 같았다.
변호사 사무실에 나를 먼저 내려준 일행은 잠깐의 틈을 이용해 영랑호로 향했다. 혼자 남아 그들이 탄 승합차 뒤를 정말 난처하게 처다 보았다.
나보고 어쩌라고!
오늘 왜이리 다들 기분이 업되있는 변호사님도 마냥 즐거운 표정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법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뭐 하늘에서 해피 바이러스라도 내렸다?
다들 오늘 왜이리 개념을 아드로메다로 여행보내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