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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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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


BY 현정 2009-09-24

이틀후 아침.

서둘러 지하철에 올랐다.

아이들이 있다는 특혜로 나는 항상 촬영장에 가장 늦게 나타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감독님 어머님이다.

감독님보다 늦게 나오고, 감독님보다 일찍 퇴근하고...

어차피 늦은 김에 스테프들 간식거리라도 하려고 옥수수랑 감가를 쪄서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정말 무겁다. 한두명이 아닌 스테프들 반개씩이라도 돌아가게 하려니 두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담았지만 그래도 좀 부족한듯 하다.

헥헥 지하철에 올라타서 빈자리를 찾아앉았다.

출근 시간이 좀 지난때라 다행이 지하철 안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지하철 타면 앞사람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사람 저런 사람, 저사람이 읽고 있는 책은 재미있는 내용이구나. 아니면 지금 심각한 부분을 읽고 있구나.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관찰하며 나만의 이야기를 그 사람들에게 덧쓰우며 새로운 글감을 얻곤 한다.

어?

한 남자가 들고 있는 스포츠 신문 반쪽에 분명 용준씨 같은 사람이 얼찐 거렸다.

신문을 들고 있는 남자는 내가 빤히 처다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신문을 선반위에 올려놓고 다른 칸으로 이동했고, 나는 얼른 신문을 들어 펼쳤다.

쿵...

용준씨와 함께 산정호수에 간날..

그날 배를 타는 사진이 멀리서 찍혀있었다.

'톱스타 박용준! 숨겨둔 처자식'

이란 제목과 함께....

아! 이사람 정말 연애인 맞구나.

용준씨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스켄들 나면 연애인들은 타격이 심하다고 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신문만 들고 내리다가 손이 허전하단 것에 놀라 문닫히는 차에 다시 올라다는 바람에 한정거장을 더가서 내리고 다시 돌아타고 오는 바람에 가뜩이나 늦은시간이 더 늦어버렸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타고 촬영장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10시가 넘어버렸다.

"옥수수 사려.. 감자사려.."

택시에서 내리며 소리쳤더니 평소 소 닭소듯 반기지도 않던 스테프들이 발이 안보이게 뛰어왔다.

나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 감자를 반기는 저들...

인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옥수수를 세조각씩 자르고 감자를 한입씩 베어먹으면서도 스테프들은 고맙다는 말을 꼭 반대로 하는것도 잊지 않았다.

"입맛만 버렸네.. 아 배 더고파.. 수정씨 빨리 옥수수 더내놔요.."

잘 먹었다는 인사대신 한마디씩 던지고 가는 말에서 왠지 더 친근함이 느껴진다.

"은수정씨.. 감독님이 찾으세요."

무슨일이지?

감독님이 나를 찾으시는 경우는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는데..

시나리오가 뭐 잘못된 부분이 있나?

조심스레, 학생부 선생님앞에 학생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감독님 앞으로 갔다.

"은수정씨. 당분간 현장 나오지 말고 스트디어 근무하세요."

"네???"

현장감 익히라고 무조건 매일 나오라고 하시던 분이 감독님이신데..

"박용준씨와 스켄들 기사 취재하러 기자들이 현장으로 몰리면 촬영에 지장있어요. 은수정씨는 이번 스켄들 조용해 질때까지 스튜디오에서 작업하고 계세요."

아..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돌아서서 가는데 감독님의 음성이 들렸다.

"스켄들은 배우를 무덤으로 끌고 갈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내 생각없는 행동이 여러 사람을 위험하게 하는구나. 역시 난.. 항상 남에게 피해만 주는 존재인가?

왜 난 .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

왜 그런거지?

터벅 터겁,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 촬영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무슨일이냐 묻는 스테프들에게는 스튜디오에서 편집작업하러 간다고 말하고 나왔지만, 스테프들의 의심쩍은 시선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도 모든 사람이 나를 향해 수근 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닌데..

미안해요. 용준씨.. 죄송해요. 감독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