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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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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


BY 현정 2009-06-21

그돈은!!

아이들과 내 생명값인데.

어떻게?

그럴수 있지?

그렇구나.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가 차가와 지는 것 같았다..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머리속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착착 떠올랐다.

 

"엄마."

사랑이 소망이가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나타났다.

통장을 다시 책사이에 넣고 나는 두 손을 가득 벌려 두 아이를 안았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엄마갈까봐 옷을 잡고 잠이든 두 아이가 깰까봐 살금 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나왔다.

거실에선 남편이란 자가 컴퓨터 고스돕을 치고 있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잘가라는 말을 한 남자는 내가 현관 문을 열자 뭔가 잊어버린 말이 있는 듯 고개를 돌렸다.

"애들 간식값이라도 하게 돈 식탁위에 놔두고가"

 

다시 남자는 모니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는 식탁위로 가서 삼만원을 올려놓았다.

이돈중에 삼천원만이라도 아이들 입으로 들어가길 바란다.

 

서울에 올라오면 속초는 먼 기억속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새벽에 영어 회화반을 등록했다.

대성이가 자기 혼자 다니면 안다닐것 같다는 핑계를 대며 내것 까지 등록비를 내주었다.

이름 처럼 참 큰아이다.

사랑이 가득담긴 대성이 처럼 우리 아이들이 자랐으면 좋겠다.

세상의 찌든 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따뜻함을 볼수 있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정치 외교과에 진학한 대성이에게 외국어는 꼭해야만 하는 공부였다.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어, 스페인어까지 공부하는 대성이 옆에서 나는 영어 하나만으로도 벅차서 헉헉대며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힘들지가 않았다.

새벽에 4시에 일어나 밥하고 5시에 대성이와 밥먹고, 5시 반에 집에서 나선다.

그사이 나는 날아다녀야 한다.

설거지도 못하고 먹던 밥상 그대로..

영어 학원이 끝나고 시나리오 아카데미에 간다.

그리고 집에오면 오후 5시.

부지런히 청소하고 다시 저녁준비를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밥하는것.

너무 하고 싶었는데.

결혼하고 단 한번도 그렇게 하지 못했었다.

비록 그 대상이 남편이 아니지만, 내 밥을 맛있게 먹어줄 그누구를 기다리며 요리하는 것이 행복했다.

그 대상이 내 남편이고, 내 아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나리오 공모전에 출품하고 두달이 지나갔다.

발표가 이미 났을테지만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당연히 떨어졌을 것이지만 그래도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않았다.

조금만 더 부질없는 희망의 끈을 이어가고 싶었다.

 

닭 매운탕을 끓이고 데우고.

이상하다.

대성이가 늦으면 전화하는 애인데.

오늘은 선배랑 술자리가 있나?

전화가 없다.

9시를 넘어가는 시계바늘은 보면서 혼자 솥에서 밥을 떴다.

 

한숟가락 뜨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대성이니?"

"네. 저 오늘 못들어갈것 같아서요."

대성이는 알코올 기에 한층 업된 목소리였다.

"야 누구야? 엄마야? 애인이야?"

대성이 옆에서 나는 시끄러운 소음사이로 대성이의 흥겨운 목소리가 들렸다.

 

"저 오늘 영화배우 됬어요. 저 오늘 그래서 못들어가요."

"어?? 영화배우? 무슨소리야?"

"뚜....."

 

전화는 그렇게 끊어졌다.

영화배우?

무슨소리야?

너무 얌전한 애가, 더군다나 외박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