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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장군의 하루


BY 둘리나라 2007-09-16

 

 아침.


 사람들은 나를 이순신 동상이라고 불렀다. 세종로에서 잔뜩 폼을 잡고 있으면 서울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칭찬을 하고, 멋있다며 좋아했다. 한때는 괜히 어깨에 힘도 줘 보고 위엄을 부린다고 눈에 힘도 넣었지만, 외로움에 당해 낼 장사가 없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세상은 겉모습에만 열광하고 바라보며 정말 중요한 인간의 본모습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껍데기 세상.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현세의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저 시험문제에나 위인전에 나오는 장군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전부였다.

 영웅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그 영웅과 함께 생과 사를 같이할 수많은 병사들도 이미 정해져 태어난다고 했다. 생사고락을 나누며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쳤던 나의 분신과도 같았던 그들의 이름은 시간의 저편,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묻혀 버렸다. 혼자 남은 내게 인조는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려 주었지만, 그들이 없는 내게는 칼 없는 칼집과도 같았다. 지금은 동상이 되어 바다도 볼 수 없는 꽉 막힌 곳에서 아침 햇살을 보며 매연의 공기를 마시고 있다.

 ‘너무 외롭고 허전하구나. 진심으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는 지금, 홀로 서 있는 이 자리가 추수를 마친 가을 들판 같구나. 서울을 지키라고 세워 놓은 경비처럼 우습구나. 허허.’

 해가 바뀔 때마다 보신각에서는 서른세 번의 종이 울렸다. 삼십삼천 대천세계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더 짙은 공허와 무력감을 가져다주기에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늙지 않는 청동색 얼굴과 몸이 초라하게만 느껴져 동상 안에서 가슴은 점점 굳어져 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게 두렵기도 했다.

 “장군 아저씨. 아저씨는 종은 보지 않고 종소리만 보시네요. 소리는 이 삼라만상에 퍼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걸요. 본질을 보세요. 기억 속에서 사람들이 장군 아저씨를 잊어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루어 놓으신 많은 훌륭한 업적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역사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에서 언제나 숨 쉬고 있고, 자랑스럽게 존재하고 있을 거예요. 맞죠?”

 겨울바람이 살며시 다가와 전해준 말이었다. 이 간단한 삶의 진리도 모른 채 서울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며 목숨을 바쳐 싸웠을 때 맡은 직분에 최선을 다해 임했지 누가 알아주기를 원해 칼을 든 것은 아니었다. 나라가 있어야 나도 존재하니 당연히 싸워야했고, 어떤 이유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가끔씩 밀려오는 외로움과 그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장군도 붉은 피가 흐르는 사람이니까.



 점심.


 오후가 되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무슨 환경단체인가에서 시위를 한다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목에는 팻말을 걸고, 내 발밑에 모여들었다. 마스크에는 검은색 테이프로 ‘X' 자가 되어 있었고, 머리를 빡빡 깍은 사람도 보였다.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동여맨 여자가 ‘환경이 죽으면 사람도 죽는다. 우리는 환경을 뺏길 수 없다. 00강을 살려내라’ 라는 글씨가 적힌 팻말을 들고 동상 위로 올라왔다.

 나와 눈이 잠깐 마주쳤는데 결의에 찬 눈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의지가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이들의 행동이 얼마나 어이가 없고 바보 같은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승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내 동상을 찾아와서 시위를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묻고 싶었다. 뭘 알고나 여기에 장소를 정한건지.

 통영 남망산 공원에 있는 나는 1953년에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졌고, 부산 용두산 공원과 진해 등 전국 곳곳에 제2, 제3의 내가 있다. 그런데 그들과 나를 자세히 비교해 보면 다른 점이 보인다. 그들은 전부 왼손에 칼집을 들고 그 안에 칼이 꽂혀 있는데, 유독 나만 오른손에 칼집을 들고 있고 칼이 꽂혀있다. 칼집이 왼쪽에 있어야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전장에서 싸울 수가 있는데 …….

 적장에게 패한 장수는 오른쪽에 칼을 들고 자신의 졌음을 시인한다. 장수에게는 얼마나 치욕적인 일인가. 결국 나는 패장의 모습으로 서 있는데 그 밑에서 이긴다, 승리한다 하고 시위를 해 대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처음부터 지고 들어가겠다는 말이 아닌가.

 패장을 만들어 놓고도 외국 관광객에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위대한 장군이라고 소개를 하는지 의심이 갔다. 지방에 있는 다른 여러 내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는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데, 이번기회에 말 좀 물어보고 싶다.

 ‘서울 시민여러분, 나를 패전 장군으로 만든 이유가 도대체 뭐요? 나도 좀 압시다. 정말 궁금하네요.’

 얼마 전 텔레비전에 매가패스 장군인가가 나오는 걸 보니 그 장군도 오른손에 칼은 들고 있던데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인기는 있는지 남녀노소가 나는 몰라도 그 장군은 다 알던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난 무릎 꿇은 장군이 아니라고!’

 시위 모습을 찍겠다고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눈이 아파 왔다. 내일 신문에 뭐라고 실릴지 궁금했다. 승리란 말은 빼고 나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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