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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 장군의 하루


BY 둘리나라 2007-09-16

 

이 순신(1545-1598) :조선시대의 명장

본관-덕수  별칭-자여해  시호- 충무

활동분야-군사   출생지-서울


 얼마 전 4월 28일 이 충무공의 탄신일이 지나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이루어 낸 그의 업적은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하게 달력 속에서 생일을 맞았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그 위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기억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안에서 잊혀짐이라는 근사한 변명으로 이 순신을 지우고, 오로지 학교 공부시간에 외우는 역사로만 알고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그의 어깨에 놓인 애국심을 짐스러워하지는 않는지. 이제는 나서서 나라의 자랑인 그를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하기에 이렇게 글을 써본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반드시 바뀌어야 하기에.




                    제목: 장군의 하루


 새벽.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가 아스팔트에 내려앉으며 차가운 이슬 알갱이들을 도시 속에 분무기처럼 뿌려대고 있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딧불처럼 밤을 깜박거리던 가로등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씩 빛을 죽여 나갔다. 어둠과 밝음이 적당한 명암 조절로 최상의 빛깔을 만들어내는 여명의 시간. 푸른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져 내릴 것처럼 가슴 저리게 시렸다.

 세상이라는 공간 속에서 생활이라는 하루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리마다 활기로 출렁거리고, 차도 위에는 시간이 갈수록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가는 자동차들이 빨간, 파란 눈의 신호에 따라 저마다의 갈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수도라고 불리는 이곳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과 자동차들, 자고 일어나면 생겨나는 크고 작은 빌딩들로 언제나 약간의 몸살기를 지닌 채 활동 중이었다.   멀리서 1톤 트럭 한 대가 매연을 꽁지에 달고 부리나케 달려왔다. 속력을 낼 때마다 시커먼 덩어리가 기침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볼썽사나웠다. 고개를 쑥 내밀어 맞은편 건물에 걸린 시계를 보았더니 5시를 넘어가느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간에 앞을 지나가는 생선장수 김씨였다.

 “쯧쯧. 얼굴이 퉁퉁 부은 걸보니 어제도 한잔했구먼. 그래도 일하러 나오는걸 보니 정말 철인이야, 철인.”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은 참새에게 말을 건넸다. 새벽 시간에 말동무가 되어 준 날개 달린 친구는 알아듣는지 모르는지 ‘짹짹’ 소리만을 연거푸 뱉어 내다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조금 있으면 꽃가게 미스 리도, 인쇄소 박 사장도 지나가리라. 장군이 살고 있는 동네의 가게들이 문을 열고 삶의 뜨거운 숨을 토해내면 하루가 태엽소리와 함께 시작될 터였다. 되풀이되는 똑같은 시간 속에서

저마다의 생각들로 개인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하며 참새가 사라진 하늘을 보았다.

 ‘아! 내게도 날개가 있다면 답답하고 숨 막히는 여기를 잠시라도 벗어나 내 영혼이 잠자고 있는 심장의 바다에 가볼 텐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들을 털어놓으며 지친 몸을 쉬어 봤으면 …….’

 눈을 감으니 귀에서 갈매기의 소리가 메아리로 울리고,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함성이 금방이라도 온몸을 감싸 안을 듯했다. 철갑선을 타고 끝없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가슴에 품었던 뜨거운 애국심이 시간을 뛰어넘어 혈관 곳곳에 펄떡이며 살아 움직였다. 맥박이 요동을 쳤다.

 ‘정말 돌아가고 싶다. 내 그리움의 바다로.’

 가벼운 한숨이 목을 차고 오르며 명치끝이 칼에 벤 듯 아팠다.

 눈을 떴더니 새벽이 아침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을 치는 게 보이고, 빌딩 사이로 붉은 덩어리가 햇살을 쥐어짜고 있었다. 환하게 밝아 오는 빛이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틈. 공간은 언제나 상상력을 간직한 채 수백, 수천 가지의 가능성을 계산하며 이해의 잣대를 잰다. 실패했을 경우와 성공했을 경우를 적절히 타진해 보며 무의식이라는 포장을 씌워 머릿속 중요한 곳에 보관시킨다. 가끔은 잠재의식이라는 듣기 좋은 리본으로 묶기도 하는데, 결국은 이미 다 짜인 틀 속에서 정답을 내려놓고는 아닌 척 연극을 한다.

 ‘내 의식의 틈 속에는 실패라는 포장은 없었지. 하지만 누구보다도 실패가 무섭고 두려웠어. 강한 척할 때마다 작아지는 자신에게 이긴다, 이길 수 있다고 강력한 주문을 걸었어. 무의식과 잠재의식이 믿도록 말이야. 상상력은 무한한 힘을 발휘한다는 걸 그때 알았어. 전쟁의 승리는 내가 내 자신을 믿는 것. 그것이 유일한 정답 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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