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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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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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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방향이 바뀌다


BY 데미안 2011-11-20

 

1.

[좋소. 그 돈을 받지]

무거운 침묵이 부담되는가 싶은 찰나에 그가 입을 열었다.

그제야 그녀는 막혔던 숨을 쉬었다.

[대신, 나도 조건이 있소]

[조,조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은데 그가 일어섰다.

[나갑시다. 사적인 얘기는 사무실에서 하기 싫소]

[아니, 굳이...!]

그녀의 저항 따윈 관심밖인 듯 그가 그녀를 문쪽으로 밀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앉아 있던 두 비서가 발딱 일어났다.

그에게 잡혀 있는 팔이 신경쓰였던 설이 설쩍, 빼려고 했으나 그가 더 힘주어 잡았다.

[이 시간 이후의 스케쥴이 있다면 취소하시오. 그리고 알아서들 퇴근하시고]

[네, 사장님]

사무적인 그의 어투에 두 비서가 깍듯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얼떨결에 설이 함께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에게 잡힌 채로 사무실을 빠져 나오면서 설은 한지원을 힐끔 보았다.

어색하고 민망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설은 한지원이 그저 그 상황을 지레짐작, 오해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2.

멀어지는 자신의 직속 상관과 친구 설이를 보는 한지원의 눈이 곱지 않았다.

[어이, 미스 한. 저 여자분과 아는 사이야?]

[...여고 동창생이에요]

그것도 주는 것 없이 기분 나쁜...

한지원은 속으로 덧붙였다.

[인상이 좋은데? 사장님이 호의적인 걸로 봐선 평범한 사이는 아닌 것 같고...애인인가? 궁금해지네...]

남비서의 말에 한지원은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재수없어...진짜 더럽게 재수없어...!

학교때부터 그랬다.

공부든 뭐든 한지원이 월등했다.

그러나 칭찬과 인기는 항상 윤설 몫이었다.

착하고 공부 잘하고...부자고...

평범한 은행원이었던 한지원의 부친과 달리 윤설의 부친은 잘나가는 중소기업회장이었으니...

잘 보이고 싶었겠지...나는 그저 공부 잘하는 한지원이었고 윤설은 아버지 잘 둔 덕에 항상 우위에 서서 그저 미소만 지으면 됐지...

진짜 너, 재수없었어...

아! 그러고보니 걔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한 것 같은데?...

퍼뜩,  거기에 정신이 꽂혔다.

집안이 거덜나고 걔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그런데 그런 애가 어떻게 사장님이랑 엮어 있지?...

무언가...있는 거 아냐, 윤설?...

큰 건수를 잡은 듯 한지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3.

날이 흐리다.

심술맞게 가을이 갈색빛을 띠며 바람을 불러 오고 있었다.

설은  뜨거운 커피잔을 손에 감쌌다.

[이렇게...자주 보는 거...별로 좋은 현상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김준수씨가 돈만 받으면 끝나는 일인데...]

[당신한테야 간단하겠지. 하지만 난 아니오. 그래서 내가 돈 받는 대신 조건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 조건이 뭔지...?]

[그 돈 다 갚을때까지...이렇게 가끔 나를 만나주는 게 그 조건이오]

[예?.....]

[나를 극복해 보란 소리요. 돈만 갚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요. 당신 머리속에 있는 나의 이미지도 바꿔야 하고 나 또한 그 짐을 들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고]

[......!]

[한번씩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나를 보는 게 자연스러워지지 않겠소? 그러면  훗날 어디선가 나를 만나도  당황해하거나 자괴감에 빠져들지 않을 거 아니오. 그렇게 되면 나 또한 당신의 나약함을 이용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들 것이고...이 또한 당신과 나, 둘 모두를 위하는 길인 것 같은데?]

퍼뜩,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와 마주하는 게 부담 그 자체인데 어찌 그와의 만남을 이어가자는건지.

말이 쉽지. 극복이라니...그게 말처럼 그렇게....

설은 저 혼자의 생각에 빠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가 그런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저 놈의 생각은...!

[데이트 하자는 게 아니니 깊이 생각하지 말지?]

비웃음 섞인 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쯧쯧...

[편하게 봅시다. 서로 얘기할 상대가 필요하거나  차 한잔 마셔줄 사람이 그리울때...살다보면 가끔, 부모나 친구에게도 하기 싫은 얘기가 있을 수 있잖소.  그럴땐  나같은 사람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

조금...구미가 당기기도 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를 살펴 보았다.

그래...저 남자 말도 틀리지는 않는 것 같아...

설은 김준수를 볼때마다 그날밤의 영상과 함께 떠올린 것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와의 만남이 꺼려지고 그의 앞에서 자신의 처지가 비참하고 자신의 모습이 자꾸 작아지는 걸 의식해야 했다.

그런데 그와 만나서...대화하고...차를 마시면...나의 자격지심과 나의 합리화가 사그라들까?...

머리속이 복잡해져갔다.

썰렁한 낙엽 하나가 뚝 떨어졌다.

벌써...10월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