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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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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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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부는 바람 -2-


BY 데미안 2011-11-17

 

1.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녀를 바래다 주고 곧장 호텔로 돌아온 준수는 불 켜는 것도 잊고 술잔을 든 채 창가에 섰다.

그의 전화가 징징거리며 짜증을 내는데도 그는 미동도 없다.

그 돈, 빌어먹을 그 돈...

솔직히 그가 그렇게 얘기를 하면 그녀가 고맙다면서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리고...!

그는 술을 마셨다.

뭘 기대했던가, 김준수... 그 돈을 없었던 걸로 해주면 그녀가 고마워서 니가 원하는대로 고분고분 해줄 것이라 믿었더냐...

깊은 고민에 빠지게 하는 밤이다.

 

2.

[참, 저번 달 대출금은 깊았니?]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장여인이 잘 구운 갈치 한 토막을 설의 접시에 담아주며 물었다.

잠깐동안 유마담과 설의 눈이 마주쳤다.

[그럼, 갚았지. 언제 내가 빼 먹는 거 봤수?]

유마담이 손사래를 하며 과장스레 대꾸했다.

[언니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마. 나와 설이가 어련히 알아서 할려구...]

[그래, 걱정은 않는다마는...그 보증 써 준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입안의 혀처럼 굴던 인간들도 우릴 무슨 거지취급했는데...]

설은 시원한 배추된장국을 한숟갈 떠 넘겼다.

그것이 껄그러운 모래알처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장여인은 그렇게 알고 있었다.

유마담에게 평소 호의적이던 재력가가 딱한 그 사정을 알고 무담보 무이자로 빌려 주었다고...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김준수는 조건없이 빌려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그 조건에 미친짓을 한 것은 그녀 설이었다.

차마 그 일때문에 설은 장여인에게 사실대로 다 털어놓지 못한 것이다.

장여인이 그 사실을 안다면....!

설은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 사람...생색내는 거 싫어해. 나중에...나중에 다 갚고 나면 그 때 정식으로 초대할께, 언니]

[그래, 엄마. 이모 말씀도 맞네]

큰 키에 비쩍 마른 몸을 하고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윤우가 한 마디 했다.

그는 법대생이다. 그들 세 여자의 자랑거리이자 희망이었다.

[사법고시 합격하고 나면 나도 보탬이 될게. 그러면 내가 엄마, 이모, 누나...세상 누구보다 호강시켜 줄거야]

[어이구, 말만 들어도 황송하네요]

유마담이 애정어린 얼굴로 윤우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러니깐 한눈팔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나는 몰라도 니 이모 니 누나의 공은 잊지마]

장여인이 진지한 얼굴로 야무지게 내뱉았다.

[명심합니다. 뼈속깊이!]

거수경례를 해보이며 윤우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휴우...난 아마 지옥에 떨어질거야]

모든 정리를 끝내고 바깥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유마담이 조용한 음성으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설은 유마담에게 따끈한 유자차를 내밀며 옆 의자에 앉았다.

[내가 미쳤지, 미쳤어. 그 때 널 기절시켜서라도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이모]

나즈막하지만 단호한 음성으로 설이 말을 막았다.

[이모. 자책하지말라고 했잖아. 이모는 그 일에 대해 모르는거야. 생각도 마. 내 의지고 내 결단이었어]

설은 유마담의 손을 꼭 쥐었다.

[이모가 없었음 우린 다 죽었어. 엄마도 그걸 아셔. 이모가 나한테 엄마한테 미안해 할 일은 없어]

[그렇지만...!]

[그렇지만도 없어. 이모가 날 기절시킨다해도 난 아마 내 고집대로 했을거야. 내 고집, 이모도 알지?...이제부터 좋은 일만 생각하면서 살자, 이모. 또 좋은 일만 생길거야]

설은 웃었다. 그러나 유마담은 그 웃음에 마음 한 쪽이 늘  꺼져 내리는 걸 느꼈다.

[마셔, 이모. 맛있네]

[그나저나 그 통장, 어쩔거야?]

통장.

그날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던 설은 깜짝 놀랐다.

통장이 어느새 가방안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돌려줘야지...내것도아닌데...]

[그 문젠...설이 니가 알아서 해. 김사장도 나와 얘기하는 것보다 너랑 얘기하는 게 더 편할거야]

휴...난 편하지 않아, 이모...

[식기 전에 마셔, 이모]

 

그 날 그에게 문자를 넣었다.

-통장이 왜 제 가방에 있죠?-

그런데 답이 없었다.

그 다음 날에도 했다.

-통장이 제 가방 안에 있다구요. 돌려 드릴게요-

아무런 답이 없었다.

 

3.

[결혼 준비는 잘 돼?]

설은 혜지와 학교를 나와 나란히 걸었다.

혜지는 대학교때 같은 과 선배인 재혁을 만나 그가 군대 가기전 약혼을 했다. 그리고 이제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다.

[뭐, 그럭저럭...두 집안 어른들이 알아서 해주고 계시니깐 난 별로 할 일이 없네]

행복한 얼굴로 혜지가 말했다. 설도 웃었다.

[재혁씨도 잘 있지?]

그는 태권도 도장 관장이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졸업하자마자 도장을 차렸다.

[너무 잘 있어서 탈이지. 말 나온 김에 보러 갈래? 재혁씨 너 좋아하잖아. 어디 참한 남자 없나 눈뜨고 고르는중이야]

혜지가 설의 팔을 꽉 잡았다.

[오늘은 안돼. 오늘은 볼 일이 있네요~ 둘이서 테이트나 하시지]

[볼일?...무슨 볼일? 남자라도 만나?]

[남자는 무슨...]

남자...

하긴 그도 남자는 남자니깐....

 

어제 그에게 또 문자를 넣었다.

-제가 가죠. 어디로 갈까요?-

그랬더니 오늘 문자가 왔다.

-호텔, 내 사무실. 오후엔 언제든 상관없어. 프런트에 얘기해 놓지-

싫은데, 호텔은...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원대로 해주는 수 밖에.

 

집에 들러 차를 가지고 나온 설은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 날이후 그 호텔쪽으론 고개도 돌리지 않았고 될 수 있는 한 호텔 쪽은 피해다녔다.

그것도 자격지심이겠지?.....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다.

그의 이름을 대자 그의 말대로 아무런 제재없이 그녀를 친절히 안내했다.

깨끗하고...은은한 향도 나고...부드러운 음악도 깔려 있고...

그녀의 발소리마져 잡아 먹는 그야말로 최고급 호텔이 아닌가...

코너를 돌자 깔끔한 유리 너머로 사무실이 보였다.

비서실인가...?

다시금 심호흡을 하고 유리문을 열자 말끔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먼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보았다.

설은 목례를 했다.

[저기,..]

[아! 사장님 뵈러 오셨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때 등을 돌리고 있던 여비서가 돌아서서 설을 보았다.

순간 미소짓고 있던 그 얼굴이 놀라워 하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놀라긴 설도 마찬가지였다.

[넌...!]

여비서가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보라색 슈트가 여비서의 날씬한 몸매를 한껏 뽐내주고 있었다.

가지런한 짧은 커트머리는 여비서의 갸름한 얼굴을 커리어우먼으로 돋보이끔 받쳐주었다.

[넌, 윤설...! 설마, 니가 우리 사장님 손님...이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그 여비서는 설의 여고동창생, 한지원이었다.

학교때도 그렇게 깔끔하고 새침하고 다소 냉기돌던 한지원이 그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여비서가 되어 있었다.

[지원아...오랜만이야]

어색했다.

하필 이곳에서 동창생을, 그것도 새침여왕, 한지원을....

문이 열렸다.

준수다.

그는 설을 발견하고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오면 바로 들여보내라고 했을텐데?]

나무라듯 그가 남비서에게 한마디 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됐고...윤설, 들어와]

준수는 그녀가 들어올 수 있게 몸을 비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 내 지시가 있기전까지 전화도 연결하지 마시오]

[네. 사장님]

두 비서가 동시에 대답했다.

설은 지원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고 준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 한지원의 입가가 꽉 다물어졌다.

 

4.

의외로 그의 사무실은 단조로웠다.

책상 뒤로 바깥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고  한 쪽 벽엔 책장이 고풍스레 놓여 있었다.

모던풍의 소파는 앉자마자 폭. 감싸주듯이 아주 부드럽고 편안했다.

그가 맞은 편에 앉자 설은 기다렸다는 듯 통장을 테이블위에 올려 놓았다.

[애물단지군...]

그 통장엔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를 응시한채 그가 말했다.

그녀 또한 그를 지지않고 보고 있었다.

[아버지...돌아가시고 전 깨달은 게 있어요. 부모님은 ...베푸는데 인색하지 않으셨어요. 어렵다고 하면 도와주고...모자란다고 하면 보태주고...누군가 손을 내밀면 아버지는 있는 한 아낌없이 주셨죠. 그런 아버지가 존경스러웠어요. 하지만 사업이 망하자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 도움받은 걸 토해내라고 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숨어버리더군요. 더 얻을게 없자 냉정하게 돌아서고...]

[그래서? 당신 또한 도움 받는데 익숙해질까봐 두렵다?]

[이유없는 도움요... 그 돈, 당신한테는 적은 액수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큰 돈이예요.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다보면...양심속의 악마도 커지겠지요. 안받는다는데 줘야 하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반드시 받아야해요. 우리 가족 모두를 위해서라도]

고집스레, 그러나 확고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