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27

***


BY 황영선 2007-03-15

 "쉿 부모님 깨셔. 빨리 불켜봐."

 민정의 손에 밀려, 마지못해 일어서서는 침대 아래로  내려갔다. 원목 사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스탠드를 터치했다.

 갑작스럽게 방 안의 물건들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빛 때문에 부신 눈을 잠깐 그대로 있다가 침대의 민정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언제 갈아 입었던지, 회색 트레이닝복은 간데없고 젖가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분홍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런 모습의 민정은 아내 같지 않았다.

 신혼 초부터 한결같이 그녀의 잠옷은 값싼 회색 트레이닝복이었다.

 

 "추운데 감기 들려고, 그 차림은 다 뭐냐? 뭣 땜에 벗고 설쳐대."

 겨울이면 콧물을 자주 흘리는 민정이 걱정스러워 한 마디 했다.

 다른 그 또래의 여자들과 비슷한 체구의 그녀는 유독 감기를 달고 살았다.

 진구의 어머니는 감기를 핑계대고 민정에게 조금만 콧물이 흐른다 싶으면 그들의 딸 소희를 떼어 놓았다.

 밤에 만이라도 민정은 딸과 자고 싶어 했다.

 소희가 미술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 네 시부터 민정이 가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저녁 아홉시까지 진구의 어머니는 소희를 데리고 있었으면서도 뭐가 부족했었든지 소희를 내놓지 않았다.

 딸 소희의 성격은 약간 앙칼졌다.

 통통한 맛이 없는 아이는 제 할머니의 얼굴을 빼다 박은 것 같았다.

 얼굴을 찡그리는 그런 미세한 움직임까지 영락없는 할머니였다.

 진구의 어머니는 아들의 성격을 닮지 않은 손녀딸을 아들이나 며느리와 은근히 비교하며 좋아했다.

 그런 모습에 진구와 민정은 정나미가 떨어졌다.

 민정은 어머니가 자신과 소희를 떼어놓은 것이 어머니가 심술을 부리는 것이라며 그에게 들으라는 듯 대놓고 말했다.

 그러나 민정은 시어머니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결혼하고 곧바로 진구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지난 7년 동안 얼마나 진구의 어머니에게 무시당했는지 진저리를 쳐대면서도 강하게 대들지를 못했다.

 진구는 어머니라면 아마 백설 공주의 마녀처럼 몇 가지의 심술을 마술로 위장하는 일은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민정에게 그렇게 말을 하지 못했다.

 마녀든, 아니든, 심술을 부리고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이프로쯤 있어서였다.

 그리고 민정의 말을 인정해 주면 그녀만 힘들어 진다는 걸 알아서였다.

 진구는 그의 어머니가 민정보다 몇 수 위인 것을 안다.

 삼십 년 하고도 몇 개월을 같이 살아 온 어머니였다.

 민정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는 유약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마 평생을 걸려도 어머니 같은 저런 사람과의 게임에서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진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격이 강하지도 못했으며, 공부도 반에서 중간정도였고, 결혼도 그랬다.

 

 민정이 집으로 인사 온 날 돌아가려고 일어서서 현관문을 나서는 그녀의 등 뒤에다 대고, 그녀에게 들으라는 듯 어머니는 "어디서 꼭 저 같은 걸 데려와서는" 그렇게 모질게 말했다.

 그는 단 한 가지도 어머니를 만족시켜 드리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를 이기려면 그녀보다 휠씬 강해야 했는데. 아버지나 어머니느이 성격을 닮지 않은 진구에게 그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일처럼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진적에 알고 있었다.

 

 그 점은 늘 어머니가 알려 주고 있는 터라 잊을 수가 없었다.

 "바보 같은 자식, 사내 녀석이 그래 가지고 어디다 써 먹겠냐!" 그 말은 어머니의 18번이었다. 진구가 추위로 떨리는 몸을 털면서 그런 생각들을 털어 내려고 머리를 흔들었다.

 

민정이 두 팔을 내밀며 말했다.<3편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