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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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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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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의 피해


BY 황영선 2007-03-09

 "주영아 이제 일어 나봐. 아침 해가 떴어요!  너 잠든 사이에 다시 내려 갔다 왔는데 난리도 아니었어."

 눈을 비빈 주영의 눈에 지난 밤 트레이닝복을 입은 그대로의 동욱이 눈앞에 보였다. 귀 아래까지 내려온 머리카락 위로 동욱의 흰색 캡 모자가 보였다.

 동욱의 회사 이니셜인 세. 건이 또렷이  보였다. 세계건설의 약자였다.

 "그봐.  내 예상이 만잖아. 베란다 새시 프레임에 피스 자국 이 하나도 없잖아. 개새끼들! 아침 먹고 너도 나가봐. 완전 작살 났다. 저 쪽 언덕에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 누워 있고, 14층부터 15층, 16층, 17층, 18층까지 앞 베란다 창문이  누군가 손으로 쿡쿡 쑤셔 놓은것 모양 아무 것도 없어, 건재한 건 오로지 딱 한 집인 것 같더라. 15층 난간에는 유리가 없는 찌그러진 문들이 대롱대롱이야. 우리 집 아래 화단도 쑥대밭이고, 그 밑에 주차해 놓은 여섯 대 차들 역시 완전 박살났더라고."

 "어떻게?"

 "그게 차 지붕이 확 찌그러졌고, 앞 뒤 창문 할 것 없이 무슨 티비 자료화면에서 보던 것 모양 폭격 맞은 그런 상태야. 4층 아저씨 있잖아. 그 분 완전 울상이더라고, 어제 술 마시고 대리 운전해서 그곳에 세웠다는 거야. 지하 주차장 늘 차잖아. 좁고. 나는 출근 안 했으니 상관없지만, 재수 옴 붙었다고, 이런 일도 생긴다며 지난번에 술집 앞에 잘 주차해 놨을 때도 언놈이 와서 운전석 문짝을 들이박고 도망가는 바람에 수리하고 정비소에서 나온지 며칠 안 된 찬데 또 이렇게 됐다며, 트렁크 쪽만 망영자실 쳐다보지 뭐야. 해 줄 말이 있어야지. 그냥 눈인사만 하고 집으로 들어왔어. 근데 저렇게 작살난 차를 보고 왔는데 말이야. 배가 고파지냐?  먹을 거 있지?"

 

"전복죽 끓여 줄까? 아님 밥 해 줄까?"

 주영이 냉동실에 남아 있는 전복이 생각났다. 전복으로 끓인 죽이 입원한 동안 동욱의 식사였다. 지난 저녁에 밥을 먹었지만 아침은 죽이 좋을 것 같다는 주영의 생각에서였다.

 "지금 이 상황에? 이제 아무 거나 먹어도 돼. 맵고 잔 음식만 자제하고, 과식과 술만 자제하라고 하더라고 의사가. 샌드위치 있어?"

 "응 한 이틀 먹을 샌드위치 만들어 뒀어. 샌드위치 먹으려고? 밀가룬데? 괜찮겠어?"

 동욱은 배가 몹시 고팠던지 허겁지겁 먹었다.

 주영은 어머니가 그랬건 것처럼 꼭꼭 씹어 먹으라고 몇 번 씩 당부했다.

 위와 장에 탈이 났던 동욱은 자신의 성격처럼 배고픔을 조금도 참지 못하고 빠르게 먹는 버릇이 있었다. 주영은 동욱이 아픈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주영도 식탁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동욱처럼 배가 고팠다.

 

 "그봐 내가 X자로 붙여서 그나마 저 정도지?"

 "뭐야? 주여아! 저걸 보고 말해. 너 저걸 보고 저 정도라는 말이 나오냐? 우리 어제 저녁에 죽을 뻔 했다고 어리석었지! 저거 하나 건져 보겠다고 붙잡고 서 있었다니."

 동욱이 거실 유리문과 창문이 붙은 새시 프레임 때문에 삼각형 모양이 된 베란다를 눈으로 가리키며 주영이 한심해 보이는 듯 그렇게 말했다.

 창문이 없는 앞 쪽  베란다는 새시를 하기 전의 모습 같이 뻥 뚫렸다.

 뚫린 그 모양으로 인해 거실 문을 열면 수리가 되기 이전까지는 바깥 공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비가 오는 날은 비가 고스란히 베란다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어제 저녁에 우리 둘 다 황천   갈뻔 했다고 이 철없는 친구야."

 

 동욱이 흥분하여 말했다.

 주영은 입을 다무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새삼스럽게 어제 밤 일이 두렵게 기억되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샌드위치를 세개 먹은 동욱이 끅! 트림까지 하고는 2인용 식탁의자에서 일어선다. 이도 닦지 않고  안 방 침대로 걸음을 옮기며 밀린 잠이나 자야겠다고 태평한 소리를 했다.

 어제 저녁 사태에 대해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 주영은 어찌보면 천하태평인 동욱의 성격이 부럽다. 사람은 다 제 각각이니.

 주영은 설거지만 겨우 하고 피곤하여 거실 소파에 앉아 베란다를 쳐다보았다. 지금은 어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잠깐 잠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깨었다 했었나 보다.

 오전 10시쯤 되자 스피커로 방송내용이 얼마동안 나왔다.

 방송하는 경비실 아저씨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독특한 사투리다. 어떨 때는 그 아저씨가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들을 때가 태반인 주영이었다.

 그런 날은 아파트 게시판을 유심히 봐야 했다. 다행이 오늘은 관리소장이 방송하고 있었다. 모두 협조해서 아파트를 치우자는 내용이었다.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는 동욱의 귀에는 그 방송이 들릴 리가 없을 것이다.

 태풍이 지나 간 일용일이  지나자 화단 앞 쪽에 세워져 있던 차들이 하나 둘 없어지고, 동욱이 명절 휴가를 끝낸 월요일부터 다른 날 처럼 출근했다.

 

 태풍이 지나 간 지 보름쯤 후에  드디어 아파트 게시판에 게시물이 붙었다. 피해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서식을 아파트 관리실에서 받아 각 호수별로 사진과 함께 첨부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아파트는 고층 건물이라 서울의 어느 회사에 건물보험이 들어 있다는 내용을 관리 소장의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21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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