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둑 연두색 우산 위로 빗줄기가 굵게 떨어진다. 주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 색인 우산을 쳐다본다.
젊음과 자유를 상징하는 그린을 주영은 좋아했다.
염색이 아무리 잘 된 그린이라도 빛에 노출되면 조금씩 탈색되는 단점이 있지만, 주영은 작은 소지품은 거의 그린을 고집했다.
좋아하긴 했지만 그린 계통의 옷을 입으면 차가워 보이고, 자연과 구분되지 않는 그 색은 자연과 어울리지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것에 서툴러 의상으로로는 잘 선택하지 않는 주영이었다.
지금 주영은 워싱이 적당히 된 무릅이 찢어진 청바지에 흰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검은색 스니커스를 신었다.
주영은 진 종류와 후드 달린 티셔츠가 좋았다. 진과 후드는 형식을 파괴했고, 자유를 상징해서 좋았다.
진을 고르려고 지현과 동대문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후드는 특별히 가리지 않았다.
흰색, 노란색, 빨간색, 하늘색, 검정색, 보라색, 등 색깔에 대한 집착은 주영과 어울리지 않았다. 진 종류로 치면 주영이 입고 있는 청바지를 비롯하여 찢어진 것과 성한 것, 꽃 자수가 놓여진 것과 그렇지 않은것, 통이 넓은 것과 좁은 것, 연한 블루부터 코발트, 블랙에 이르기까지, 오리지널진과 워싱을 심하게 해 놓은 것, 밑단이 너덜너덜한 것과 그렇지 않은것,슬랙스와 스커트, 값이 싼 것과 비싼 것 주영 자신조차도 자신의 옷장에 걸려있는 진이 몇 장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사계절 정장 몇 벌에 그에맞는핸드백과 구두 몇 켤레가 주영이 가진 의례용 옷의 전부였고, 나머지는 진을 입기 위해 산 가방들과 신발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금 주영은 발목까지 올라온 스니커즈를 신고 있다. 검은색 스니커즈를 신은 주영이 우체국으로 향했다. 아파트관리비는 늘 지정된 곳에서만 받았다.
그 곳에서 아파트 관리비를 내고 아파트로 돌아오자 주영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창문을 닫은 뒤 베란다의 창 틈 사이로 빗물이 줄줄 스며들어, 베란다에 세워 놓았던 타파 쌀통이 이미 물에 젖었고, 속옷과 겉옷을 분리해 담아 놓은 빨래 바구니 두 개와 쓸 일이 없어 올려 놓기만 한 소형믹서기와 양파, 감자가 담겨져 있는 작은 철제 바구니가 다용도 렌지대 위에서 비에 젖어 있었다.
원목인 렌지대도 이미 흠뻑 물에 젖어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쪽보다 더 심각했던 일은 배수구가 없는, 부엌과 붙어 잇는 오른쪽 방 뒤쪽도 비가 새어 그 방 좁은 베란다 바닥에 빗물이 방 안으로 넘칠락 말락 하고 있었다. 다행이 방안까지 들어오지 않았는데 순전히 베란다와 방을 가로 막고 있는 유리로 된 미닫이 문의 턱 때문이었다.
상황이 판단 되자 주영은 부리나케 하나뿐인 욕실로 가서 초록색 플라스틱 대야와 마른 수건 두 장을 집어 들었다.수건을 물에 넣어 출렁이고 있는 물을 빨아 들였다.
그리고 걸레짜듯 대야에 짰다. 다시 수건을 물에 넣었고, 걸레 짜듯 짰다.
그러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대야의 물을 세 번 정도 욕실에 갔다 버리자 어느 정도 물이 없어졌다.
주영이 그 일에 걸린 시간이 족히 30분이 더 되었고, 이마에 송글송글 땀까지 맺혔다. 빗줄기가 잦아지는 모양이 그 방 뒷벽 높이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으로 보여 주영은 그제 야 안도의 숨을 내 쉬었다.
비는 창문을 닫은 그 벽과 창 사이로 들어 온 것 같았다. 아직도 빗물이 그 틈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나중에 주영이 바닥에 깔려 있는 장판을 걷어 냈더니 세겹인 장판에 끼인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런 뜻박의 복병이 집에 숨겨져 있을 줄이야.
주영은 도혜옥과 차를 마실 때의 평화에 비하면 지금 마음속은 혼란스러움으로 채워졌고, 약간 불안해졌음을 느낀다. 왜 기분이 좋은 채 하루가 지나지 않는지 주영은 불안한 마음과 불쾌한 마음에 행복부동산 중개업자와 집주인노인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12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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