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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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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의 축제


BY 황영선 2007-02-22

 동욱은 새벽같이 출근했다. 더 이상 집에서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다.

 언제 나간 지 모르는 동욱을 대신해 주영은 전입신고를 했다. 서류상으로는 진해시민이 된 것이다.

 전입신고를 하러 내려가다 보니 벚꽃이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진해는 3월 말부터  4월 초순까지 축제 중이었다.

 나중에 들은 내용이지만 그 축제의 상인 모두에게 거둬진 돈의 일부가 진해시의 재정으로 쓰인다고 했다.

 새벽같이 나가는 동욱에게서 느껴야 했던 열기와는 다르지만 주영 역시 이 도시에 대해 열기를 느꼈다.

 

 도시 탐험이 주영에게 필요했다.

  시장도 봐야 했고, 은행 볼일도 봐야 했고, 더 이상 놀아서는 안 될 기분이 들기도 해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고 싶었다.

 동욱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동욱도 주영이 일을 한다면 크게 반대 할 것 같지 않았다.

 

 주영은 책을 150권 쯤 읽었고, 수영레슨을 1년 정도 받았던 서울에서의 결혼생활이 새롭게 떠올랐다.

 수영레슨이 끝난 후 시원한 물로 샤워하고 상쾌한 바람까지 보너스로 맞으며 돌아오는 기분과는 달리 동욱의 어머니나 초등학교 교사인 큰 누나, 광고 일을 하는 작은 누나의 눈에는 주영이 하루 종일 노는 것처럼 보였던지 한심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 일은 마치 주영에게 동욱과 공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주영은 동욱의 누나들에게 이 말을 꼭 묻고 싶었다.

 

 "동욱 오빠 누님들! 바이킹 타 보셨어요?"

 아마 바이킹을 한번이라도 타 봤다면 동욱의 누나들도 수영을 좋아 했을 것이고, 수영을 좋아했다면 어는 정도 주영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이는 크게 차이 나지 않았는데 사고 하는 방식은 너무 달라도 주영은 괴로웠다. 조금만 더 그런 생활이 지속되었다면 아이마저 없던 주영은 동욱과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형식에 얽매인 결혼생활이 왜 그렇게 주영을 견디기 힘들게 했던지 그저 주영은 잠깐 동안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주영은 그 생각을 머리 속에서 털어낸다.

 지금 주영이 있는 곳은 서울이 아니라 진해였다.

 지금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이 고장 축제 중이었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빠른 템포의 뽕짝이 거리를 살아나게 했다. 그 뽕짝 리듬에 인형들이 춤을 춘다. 고소한 냄새의 해물파전을 부치는 여자가 길 가는 사람 여럿에게 눈길을 보낸다. 한 무리의 나이 든 노인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이미 전주가 있었던지 코까지 발갛다. 코코넛에 구멍이 뚫려 모자 쓴 아이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람을 넣은 색깔 있는 풍선들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거리 이곳저곳에서 춤을 춘다. 아이들 몇몇이 풍선을 사달라고 조른다. 엿장수의 가위소리가 들린다. 군데군데 기어진 옷을 입은 그림 속의 흥부 같다. 일렬로 포장을 친 천막들이 풍기는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주영은 구경했다.

 

 주영의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 친다. 만국기가 온 거리에 휘날린다. 계절에 맞지 않는 옥수수가 노르스름한 빛깔로 주영을 유혹했다. 주영은 거리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발 길 따라 걸었다. 별로 살 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약간 조잡하고, 싸구려들, 뱅글뱅글 돌고 있는 커다란 돼지의 윤이 나는 그 빛깔은 먹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든지 대부분의 사람들 눈길 끝에 머물렀다.

 주영에게는 그 모든 광경이 일상에서 벗어난 딴 세상에 온 것 같아 가슴이 뛰고 뛰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관광객들에게는 살 물건이 필요했던 게 아니라 휴식이 필요했던 것처럼 주영에게 그 모든 축제의 거리는 휴식을 안겨 주었다. 가슴이 뻥 뚫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휴대폰의 시계가 오후 2시 30분이었다.

 주영은 일본식 다꼬야끼 한 봉지를 사 먹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배가 고파서였다. 시장 끼를 면하자 다리가 아팠다.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주영이 집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이 방향이든 저 방향이든 또  다른 방향이든 주영의 집과는 15분 거리였다. 그 때 시장 길  좌측으로 어떤 가게의 좀 투박한  간판이 주영의 눈에 띄었다.

 '삼라만상 수입그릇' 4절지 한 장에 들어 갈 크기 정도의 고딕체 모양인 글자 삼, 라, 만,  상이 흰색바탕에 까만색인 간판 위로 유난히 뚜렷해 보였고, 수입그릇이라는 글씨는 그 크기에 비해 2분의 1정도의 같은 고딕체이긴 했는데 작아서 주영의 눈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안에서 거리를 내다보고 있는 짧은 파마머리의 여주인의 두 눈이 '한 번 들어와 보세요.'라고 말 하는 것처럼 주영을 이끌었다.

 주영이 문을 밀었고, 주인여자가 안으로 문을 당겼다.<6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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