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군데를 돌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들려와 주영과 동욱은 저녁을 아예 일찍 먹기로 했다.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남은 시간은 고작 한 두 시간이었다.
자포자기가 된 상황에서 이번이 마지막이다. 안 되면 동욱부터 내려와 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주영의 마음에 드는 집을 얻기가 힘들겠지만 하는 수 없다고 주영과 동욱은 결론 지었다.
'행복 부동산' 이름도 잊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행복이라는 글자가 들어 간 아파트가 주영이 진해에서 3년 동안 살게 될 아파트 이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행복 빌라트'가 그 들 두 사람이 살던 전셋집이었다.
그 곳에서 자신의 집을 세 놓으려 온 집 주인과 운이 좋게도 바로 맞닥뜨린 것이다.
계약이 성사 되었다. 일사천리로.
그 아파트를 전세 얻는 일은 자신의 부동산 이름처럼 행복을 얻는다고 하고는 동욱의 도장과 노인의 도장과 중개업자 자신의 도장을 꾹꾹 눌러 전세 계약서 이곳저곳에 여러 번 찍었다.
주영의 눈에 집 주인의 주민번호인 420429라는 숫자가 동욱의 어깨너머로 보였다. 주영은 몸집이 좋은 집 주인이 나이에 비해 외모가 젊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전세금은 주영의 예상보다 낮았고, 서울에 비해 휠씬 쌌다. 전세를 빼면 그 돈이 남겠다고 계산한 주영은 은행에서 대출 받았던 일부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영과 동욱은 집주인의 차를 뒤 따라 그 집을 보러 갔다.
아파트였으나 T자 모양의 아파트는 잘 볼 수 없는 형태라 주영과 동욱 둘 다에게 흥미로웠다.
1407호였다.
T자의 윗부분에 1,2 통로와 3.4 통로와 아파트 너비만큼 띄우고 (후에 안 거지만 그 띄워진 자리에 계단을 이용해 출입이 가능한 통로 아파트의 다른 출입구가 있었다.)9,10통로였고, T자 끝 부분부터 5, 6호 통로와 7.8통로가 있었다. 7,8 통로의 입구는 T자 오른편 안으로 돌아 들자 나왔다.
아파트의 앞 베란다 창문으로 저 멀리 아래로 바다가 보였고, 석양이 막 지고 있는 그 모습은 부동산중개업자의 말대로 그림 속의 풍경처럼 평화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운전 중인 동욱은 목적을 달성해서 좋았던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휘 바람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다.
한창 유행 중인 트로트였다.
주영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 동욱 옆에서 아파트의 평화스러움과 스스로 불 같다고 말하는 지현을 머릿 속에 그려 보았다.
키가 반올림해서 160센티미터인 지현은 생각보다 말수가 많지 않고 행동할 때는 주저함이 없이 강단진 주영의 오랜 친구였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어."
지현이 그소식을 전화로 알려 준 날 가을이 끝날 무렵이었다.
주영이 장례식장에 갔을 때 결혼한 지현 언니와 오빠 둘, 결혼하지 않은 여동생과 지현, 지현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얼굴을 잘 모르는 친지들과 장례식을 찾아 온 다소 많은 듯 싶은 사람들도 봤다. 별 다르지 않았다. 여느 장례식장과 분위기가 비슷했다.
지현의 아버지 장례식이 채 잊혀지지 않을 때였던 것으로 주영은 기억했다. 주영과 동욱이 청첩장을 돌린 때이기도 했다. 밥을 시켜 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제 괜찮니?"
주영이 물었다.
"뭐 말이야?"
"아버지 돌아가신 일."
주영이 말했다.
"그럼, 아버지 연세가 이른 이셨는걸. 사실만큼 사셨다고 생각해."
지현 같은 나이의 딸을 두기에는 주영이 생각한 것보다 지현의 아버지 연세가 많았다. 지현의 아버지 연세까지는 주영도 알지 못했다. 한 번도 지현 아버지의 연헤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야 될 일도 없었다. 다만 지현은 대학 1학년 때 자기 집에서 가족사진 속의 인물들을 손으로 차례차례로 짚어 가며
"언니야, 큰 오빠, 작은오빠, 아버지와 엄마, 나 그리고 여동생." 그렇게 말해 주었고 사진 속 그녀의 아버지는 주름이 많은 얼굴에 검은 테 안경을 낀 자그마한 노인이었다. 지현은 아버지가 늦은 나이까지 자식 욕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 사진 속의 지현은 교복차림에 머리를 뒤로 묶고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가족 사진의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두가 환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저녁 때가 되어 지현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만났고, 다른 가족들은 볼 수 없었다. 군에 가 있다는 작은 오빠와 이미 결혼한 언니와 사업을 한다고 바쁜 오빠와 퇴근이 늦는다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사실만큼 사셨다는 그 말은 지현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지현은 행동을 격하게 했지만 늘 따뜻한 친구였다. 주영은 그래서 지현이 부러웠다. 따뜻했으며 과감한 실천력을 가진 그 애를 좋아했다.<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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