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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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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BY 황영선 2007-02-14

 그런 일들이 있으리란 걸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주영이 지금은 집 걱정을 했다.

 "오빠, 집, 어떡할래?"

 주영이 물었다.

 "이 집은 부동산에 내면 금방 나가겠지. 일단 그 일은 주영이 니가 처리해라. 부동산 한군데만 내. 대성부동산에 알았지? 그 다음은 진해에서 집을 구하는 게 문젠데. 그래서 이번 일용일에 내려 가 보려고, 나랑 같이 내려 가보자. 두 사람이 살 집이니까, 가서 부딪혀 보자고, 지방인데 설마 아파트 하날 못  구하겠어?"

 주영의 대답을 구하지 않은 동욱의 확신에 찬 말이었다.

  "이번 주에? 지현이랑 약속 있는데, 오늘이 수요일이니, 미리 보자고 하던지 해야겠구나. 알았어. 오빠가 하잔 대로 할게. 그렇게 알고 있지 뭐."

 주영은 친구 지현과 그 도시 두 쪽 다를 한꺼번에 떠올렸다.

 

 지현은 샤갈의 그림을 좋아했다.

 샤갈의 뛰어난 상상력과 색채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며, 샤갈의 화집에서 'The Dancd'라는 그림에 반했다고 말했다.

 "봐 주여아, 이사람 말이야. 너랑 나랑 사이를 말한 거 아닐까?"

 그림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다른 때처럼 말했다.

 "샤갈은 가슴이 나처럼 불같았을 거야.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처럼 말이야."

 지현은 주영의 옆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주영의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장난치길 좋아했다. 

 그 말을 한 지현이 그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휴대폰 메시지를 하루에 스무번 이상 보내고, 노래방을 가면 정태춘의 모든 노래와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백만 송이 장미'를 콧소리 섞어 부르는 친구가 주영의 눈에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샤갈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또 다른 주영은 그 도시를 상상해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3월 말이 되면 뉴스의 끝쯤에 그 도시의 벚꽃 관광열차까지 소개하며 "만개한 벚꽃이 눈부십니다. 진해에서 MBC 뉴스 이진곤입니다."라는 방송을 해마다 봤던 기억 때문에 주영은 진해의 눈부시다는 벚꽃이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그 곳으로 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기까지 한 주영이었다.

 진해로 이사하기 전까지 주영에게는 그 도시의 이름, 진해에서 벚꽃이외에 떠오르는 게 별로 없었다. 바다가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다. 파도가 거칠게 몰아치던 그 밤의 무시무시한 바다에 대한 기억은 그 도시에 살다가 다시 다른 도시로 옮겨 다닐 때 문득 문득 떠 오른 기억이었다.

 

 주영과 동욱 두 사람이 일요일에 진해로 내려 갔을 때는 이미 오후 2시 무렵이었다. 새벽 일찍 출발했는데 고속도로 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주영은 하루면 될 줄 알았던 그 일이 어쩌면 늦어질 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조바심이 났다.

 

"이러다 집 못 구하면 어떡하지?"
 "걱정마. 일주일 전부터 부동산 정보, 인터넷으로 뒤적이고 있었어. 몇 개 뽑아 왔어. 서울에서 처럼 복잡하지만 않으면 간단할거야."

 "그래. 피곤하다. 배도 고프고."

 아침에 먹은 샌드위치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은 우동이 두 사람의 하루 동안의 요기 거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남은 샌드위치라도 싸올걸."

 주영이  뒤 늦은 후회를 했다.

 동욱과 주영이 차로 그 도시에 들어서자 장복터널이란 곳이 나왔다. 터널을 지나자 도로 양편에 가로수인 벚꽃나무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의 잎사귀가 햇빛에 반짝였다. 아직 꽃이 피기에는 이른 계절이었다.

 도시는 상상했던 곳과 다르지 않아서 주영은 차 안에서의 피곤함을 잠시 잊고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배고픔도 잊혀졌다.

 동욱이 뽑아 왔다는 정보를 가지고 부동산사무실을 찾기위해 몇 번씩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물어야 했다.

 도시는 단순해 보였으나 동욱과 주영에게는 부동산사무실 위치를 찾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부동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일대일로 전세계약이 성사 되었고, 그 이유로 부동산사무실에는 전세물건이 거의 나와 있지 않은 실정이었다.

 진해로 이사 한 지 두 달 지나자 처음에 동욱이 왜 그렇게 헤맸는지 주영으로서는 의문이었지만, 그의 고집을 알기 때문에 입을 다무는 쪽을 택했다. 좀 단순하고, 고집스럽고, 자신은 이성적이라고 했지만 사소한 일에 실수를 했고, 자신의 잘못된 주장마저도 옳다고 내세우는 동욱이었다.

 어찌 보면 동욱은 누나 들과 여동생 틈에 껴서 자신의 어머니의 손에서 그런 성격의 성인으로 자라난 게 틀림없다고 주영은 혼자만 생각했다.

 동욱은 그의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

 모든 일을 자신이 결정 내려야만 마음 편한 동욱이었다. 그런 동욱은 결정을 내린 후에 어떤 일이든 자신이 직접 처리하지 않고 주영에게 지시 내리길 좋아했다.  좀 특이한 성격이었다.

 주영은 그런 동욱 옆에서 안내를 부탁하면 좋으련만 원칙을 고수하는 그가 답답해 보였다.

 고집이 센 동욱은 남의 신세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 하기도 했다. 그걸 동욱 자신은 자존심이 세서 그렇다고 주장했다.

 부동산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또 다른 이유는 동욱이 어느 정도 큰 애가 있는 선배들은 아예 이사를 하지 않는다면서, 그런 팀원을 위해 아파트를 몇 개 얻어 숙소로 정해 주긴 했지만, 그 옆에 붙어 살면 주영이 니가 피곤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말하며 다른 방향으로 아파트를 구하고자 했다.

 집을 구하는 그일이 동욱의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았다. 서너 곳을 다녀보아도 아파트는 주영과 동욱이 원하는 25평대의 입에 딱 맞는 그런   곳이 없었다.

 아예 서른 평이 휠씬 넘는 전세는 몇 군데 있었지만, 전세비와 관리비를 생각한 주영이 고개를 저었다.<3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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