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자 김밥포장손님이 몰려들어, 가게가 분주했다.
매출이 조금 오르고 아는 단골들이 반갑게 찾아주어, 남편과의 통화내용은
까맣게 잊고있었다. 퇴근을 하고 나서야 남편의 손님이 떠올랐고,
종아리가 당기고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서둘러 집에 도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단정한 까만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의 것보다는 다소 작았지만 명품인듯 보였다.
남편의 방안에서는 박장대소가 터지고 딸아이가 물을 마시려는지
부엌을 나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엄마! 삼촌 왔어.
네살박이 딸아이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손을 잡고는 남편의 방으로
재촉하며 이끈다.
비스듬히 열린 방문안으로 끌려가듯 들어가자 성룡씨와 눈이 마주쳤다.
남편에게서 자주듣던 이름이라 얼굴이 낯익을줄 알았는데, 처음보는 얼굴이다.
단정하지만,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안녕하..
명색이 형수라는 사람이 먼저 넙쭉 인사하는게 우습기도 한탓에 말끝이 슬그머니
들어가 버린다.
=안녕하세요? 며칠 신세좀 지겠습니다.
짧은 몇마디의 인사가 전부였고, 남편이 성룡씨가 있는 방문을 닫으며
=저녁은 먹었으니깐, 신경쓰지마!
하고 말을 뱉어낸다.
-어.. 그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방문이 닫히고, 딸아이만 내 발치에서
키득거린다. 오랜만에 손님이 온탓인지, 딸아이는 마냥 좋은 모양이다.
어질러진 거실을 대충치우고는 딸아이를 데리고 침실로 향했다.
집이 워낙 좁고 두방이 마주하고 있어서, 남편과 성룡씨의 대화 소리가
끊임없이 신경에 걸렸다. 딸아이도 아빠의 웃음소리에 잠자리에 들기를
싫어했다. 딸아이가 통 잠을 못자니 안되겠다 싶어서 남편의 방을 찾았다.
손잡이를 열려는 순간, 방문이 잠겨있는걸 발견하고는 잠깐 멈칫했다.
대화소리가 뚝 끊기고, 남편이 문을 열며 빼꼼히 얼굴을 내민다.
=무슨일이야?
-아니.. 선영이좀 재우게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고..
=알았어.
남편은 짧게 대답하고는 다시 방문을 닫았다.
방문을 왜 잠궜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딸아이가 들어올까 그랬으려니
생각이들어 돌아섰다.
침실로 들어서려는데,
'철컥' 하며 남편의 방문이 다시 잠겼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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