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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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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장과의 대화


BY 황영선 2007-02-06

 "죽을 만치 절망에 바지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게 되죠. 뭐 달리 내가 할 일은 없을까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체념하는 일은 살아가는 다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죠. 몸부림쳐봐야 나만 망가지는 꼴이 우스워서요. 가끔씩 나도 죽은 첫 번째 아내랑 행복하게 아이들과 사는 나를 상상해 보곤 하죠. 내 고뇌와 당신이 여자이길 포기한 그 고뇌는 다르게 보이는데, 내가 잘못 본건가? 나는 살아 있길 바라고 최인미씨는 스스로 죽어 있길 바라는 거죠? 의사가 그러더군요. 어떤 여자든 화장하는 일을 포기하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죽은 아내는 죽기 전날 까지 머리를 빗고 립스틱만이라도 바르겠다고 했었죠. 당신은 왜 죽어 있는 거요? 나랑 연애 한번 해  볼래요?  당신을  살리고 싶은데......"

 

  틀린 말도 아니고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가 담배를 꺼내려고 했는데 찡그린 내 인상을 보더니 테이블 한 쪽 옆으로 밀쳐 두었다. 윤진  아빠도 술만 마시면 담배를 더 많이 피워댔다. 어쩔 수 없이 그의 사고 전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 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고작 윤진 아빠와 내가 산 세월은 6년 정도가 다일뿐인데.

 

" 말 주변이 없어나서, 제 변명이 될지 모르지만 들어 보실랍니까?"

 형편없는 말이 되더라도 오늘은 기어코 그가 가진 오해를 풀어주어야겠다.

 진분황색 입술의 올림머리를 한 주인 여자가 맥주 500cc 두 잔과 마른 안주를 내왔다.

 주인여자는  분홍색을 좋아 하는지 온통 분홍 차림이다. 검은 색 맥주 로고가 있는 앞치마만  벗으면 나들이를 나가도 되는 옷차림이었다. 여섯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소리로 주인여자가 바쁜 모습이었지만 연신 네 네를 해 가며 안주를 준비하면서  실내에 흐르는 가요까지 다라 불렀다.

 

 나도 노래를 따라  불렀으면 좋겠다.

 큰 소리로 노래 책을 사다가 노래가사를 따라  부르며 연습한 적이 있긴 했는데 이제야 생각이 났다.

 윤진이와 윤정이는 요즘 ss501인가 뭐라는  가수의 노래와 사긴을 자기들 방 벽에 도배를 해 놨다. 내가 "우째 읽는거고? 에스에스 오공 일이가? 라고 했다가 된통  아이들에게 혼날뻔 했다. 그들은  더블에스 오공일이라고 작은 애 윤정이 말했다.

 그 두가지의 이름에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윤진이와 윤정에게 시대에 뒤쳐지는 엄마라고 구박을 한 바가지나 받았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아이 둘은 나를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엄마는 그 애들이 어릴 때 나를 닮아 착하다고 기특해 하셨다.

 내 딸인데 누굴 닮았을 까 나를 닮지.

 그  애들은 자기 방을 스스로 치우고, 아침이면 바쁜 엄마의 손을 빌리지  않고 머리방울을 찾아 머리를 묶었다. 좀 더 잘 해 주지 못하는 것이 나는 늘 마음에 걸렸다.

 윤진 아빠가 살아 있었다면, 그 애들 동생을 낳았을 것이다.

 나는 고물고물한 아이들이 좋아 퇴근길에 만나는 어린 아기들의 뺨을 만져 보곤 했다. 엄마들은 제 아이들이 귀여움을 받는 걸 다를 좋아했다. 나는 태어났으면 두 아이 밑으로 그 애들 동생이 되는 그 아이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태어나지  않은 그 애까지 맡을 자신이 없었다.

 

 "애들 아빠가 죽었을 때 제 배  속에는 머심 애가 있었십니다.  어떻게 단정하느냐 그렇게 묻고  싶십니까?  그냥 제 예감입니다. 애들 아빠 장례를 치르고 돌아서서 그 애를 지웠십니다. 저만 아는 비밀입니다. 하기야 누가 알았다 해도 그게 설령 시어머니라 해도   제 결정은 하나였겠지만   지금 정부장님한테  말 안했시마 평생 무덤까지 갖꼬 갔겠지요?   죽어 버린 애 아빠한테 아들이 무신 소용 있십니까? 부장님 말씀대로 그 때 저의 반쪽이 죽었십니다. 그러나 거기 다는 아입니다. 화장을 하든 안하든 저는 저고, 어느 날 갑자기 화장을 한다고 해도  살기 위해서는 아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부장님 앞에 앉아 있는  저의 다른 반쪽은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부장님 눈에는 제 가 죽은 걸로 보이겟지만 말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정 부장은 같은 사무실의 직장  상사인 남자였다.  그에게 동정 받아야 할 일이 없다. 그가 나보다 키가 이십 몇   센티미터 더  크고, 나이가 나보다 다섯 살 위라 해도 나와 다를 게  없는 상처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상처를 나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여자 혼자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윤진아빠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되돌릴 수 없다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 했다.

 하루 종일 엄마와 있는 것보다 나는 내 할일을 할 수 있는 직장에 있는 일이 좋았다.

 

 "내 착각이라  그 말이군요? 하지만 꾸미고 산다 해도  누가 최인미씨를 번쩍 업고 가진 못해요. 지금이 뭐 보쌈하는 옛날 입니까? 그러니 나 같이 막 살은 놈한테 죽은 사람 취급받지  말고 화장도 하고 그래요. 살아 있다고  자랑 좀 하는 일이 뭐 그리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요?   죽지 않았는데 왜 죽은 척 삽니까? 최인미씨가 길 가다 곰 만난 나그네요? 내가 아는 사람은 남편이 차사고로  죽었는데, 금방 운전을 배우러 나갑디다. 옆에 있는 우리가 더 놀랐죠.   근데, 한참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 행동이 옳았다 싶었어요."

 

 그가 해 주고 싶은 말이 저 말이었구나. 내가 죽은 척 엎드려 있었나? 나는 살아 있다고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동전도 앞면 뒷면을 가지고 있으니 그렇게 보여 졌다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세상의 남자들을 두려워했을 지도 모른다. 나와 아이들과 엄마를 갈라 놓을 것 같아 그 남자들이 두려웠다.

 

 "아내가 죽은 지 언젠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결혼 초에 죽은 아내는 나에게서 도망가고 싶어 했었죠. 아내 때문에 애를 먹었죠.  여자들은 엄마가 되기 전에는 참 약하다가   엄마가 되면 강해져요.  죽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아내에게 딸들이 있어서였죠. 아내는 나를 남기고 떠나는 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자기 자식 때문에 울었을 겁니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내게는 또 살아가기 위해 다른 아내가 필요했죠.  별일 없이 평생 가길 원하지만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솔직히 말하면 어떤 순간에는  여자가 싫습니다. 동물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는 이놈의 몸뚱이도 싫고요."

 그는 화난 사람처럼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정 부장과  나는 다른 모양이었다.

 "통속적인 연애 한  번 해 볼래요?"

 깜짝 놀라 고개를 흔들었다.

 더 나이 먹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불륜이니 뭐 그런 단어와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아입니다!"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정말 진심이었다. 연애라니. 아이 둘과 엄마와  연애까지 보태지면 나는 아마 힘들어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

 

 "하하- 겁먹는  최인미씨는 재밌단 말이야. 농담과 진담 좀 구분해 봐요."

 

 나도 너무 심했다 싶어 그를 따라 웃으면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조금씩 마시는 흉내만 내고 있는 맥주잔에는 맥주가 반 이상 남았다. 이렇게 쓴 맥주를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대고 있었다.

 

 "그냥 저는 이대로가  좋아요. 부장님한테 인생이 있는 것처럼, 저는 제 인생을 살고 있십니다. 누가 뭐라캐도  사람은 말입니다.  생긴대로 살아야 마음 편합니다."

 말을 마쳐야 할 것 같아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래요? 이제 봤더니 최인미씨 매력적인 구석이 많아요? 또 나처럼 지독히 고집 센 사람이고."

 

 "애들은 어떻카고 있십니까?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던 그가 움찔 놀랐다.

 

 "애들 애들이라? 회식 전에 아파트엘 가서 밥 챙겨 주고 숙제도   잠깐 봐주고 나왔죠. 친 엄마는 아니지만 잘 따릅니다. 세상에 별 여자 있을 까 그런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죠. 돌아오기를.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현장 여자들이 하는 말은 다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즐겁지는 않지만 될 대로 되라 그런  심정이 됮죠. 말이 길었죠?  일어서죠. 최인미씨를 못 살게 굴때가 재밌었는데, 사실 미안하단 말이 하고 싶었는데, 엉뚱한 말을 늘어 놨네요. 버스 끊겼죠? 택시 타야 하죠? 택시 잡아 줄테니 들어가요. 아는 택시 기사한테 전화해 줄게요. 너무  걱정말고, 좁은 곳이라 도시에서처럼 뭔 일이 일어나길 기대해야 돼요. 이런 시골은 나 같은 사람이나 최인미씨 같은 사람이 살기에 딱 좋은 곳이에요 . 잊혀지기에 좋은 곳을 골라 온 거죠. 안 그래요?"

 가만히   그 말에 웃었다.

 동의를 구하는 그가 가볍게 내 어끼를 툭 쳤다.

 손을 뻗으면 그의 큰 킹에, 넓은 가슴이 있었다. 그의 가슴에 안겨 가던 키 작은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부인과 둘이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래 아니야. 내 몫이 아닌 걸 탐내는 것은 죄악이야 . 할머니가 저 위에서 그러실거야.

 "인미야 내 말 잊지 말거래이."<6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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