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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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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BY 황영선 2007-02-03

 그날 윤정이 이가 아프다고 해서 치과를 데려 가기로 한 날이었다. 아이는 제 언니와는 달리 공부욕심이 많아 읍내로 학원을 다녔고, 학교가 마치면 학원차가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아이를 태우고 학원으로 왔다가 수업 후면 집 앞까지 태워 주었다. 이미 아침에 사장한테는 말을 해 둔 터였다.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했다.

 이가 두개나 벌레 먹어 치료를 하고 나와 집으로 돌아가려고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윤정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소리의 진원지가 어딘지 궁금해 고개를 돌렸다.

 " 엄마! 저 아저씨 키 크네. 근데 아줌마는 키가 작다. 와-아 아줌마 목소리가 더 크대이. 아저씨가 울라카네 아줌마가 아저씨 옷을 막 흔든다. 무섭대이 엄마."

 윤정은 내 뒤에 바짝 붙어 바지 가랑이를 잡았다. 뻣뻣한 청바지 자락을 어찌나 꽉 잡고 있던지 손에서 나는 열기가 바지 안쪽으로 전해졌다. 소동은 얼마 후에 사라졌다.

 키  큰  남자가 키 작은 여자를 달래며 데리고 갔다. 낮이 익은 저 뒷모습은 아침에 시비를 걸던 정부장이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만 마음을 들여다봐야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뒷모습이 그렇게  다양한데 놀랐다.

 퇴근시간이면 버스 정류장에서 차 시간이 맞지 않아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그  시간이 짧게는 몇 분이었고, 길게는 몇 십분이 될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필요한 학용품을 사거나, 시장을 보는 그런 일들이 차 타는 시간을 어긋나게 했다.

 나는 어긋나는 차 시간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좋았다.

 어느 날은 부러 차를 놓치고 싶었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와 엄마만 없었다면, 한 없이 않아 있고 싶었다.

 어떤 사람은 왼쪽 어깨가 쳐졌다. 또 어떤 이는 머리가 왼쪽어깨에 거의 넘어가 있었고, 등이 구부정한 사람, 반대로 일자로 좍 펴진 사람, 아예 뒤로 젖혀진 사람까지 각양각색의 뒷모습을 보이며 움직였다.

 이름도 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무심히 바라보는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작은 기쁨이었다. 특별히 눈에 번쩍 띄는 이도 없었고, 눈이 마주칠 염려가 있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을 보는 것은 휠씬 마음이 편했다.

 누군가 내 뒷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저 여자 등은 왜 저리 꼿꼿한 거야.

 키가 작고 왜소한 체구의 사람들은 대개 얼마쯤은 키를 키우고 싶어 일부러 등을 더 펴곤 하는 습성이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이 뒤 꼭지에 하나 정도 달려 있다면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정 부장 같은 사람은 두 개의 눈으로도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날 내 등, 내 뒷모습이 어땠는지 나 자신은 알 수 없었다.

 막 새해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온통 눈 천지였고,  버스를 타러 나올 때 폭폭 빠지는 눈을 밟으며 걷느라 애를 먹었다. 아이들은 방학이라 집 현관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그냥 아이들과 함께 집에 머물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근해서 사무실 바닥을 닦았다.

 눈때문에 군데군데 흙과 물이 섞인 그 곳을 밀대로 닦았고, 세 개의 책상 위를 걸레질 했고, 정 부장의 책상 옆을 닦았다. 걸레를 들고 화장실 세면대로 나서면서, 부장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쓰레기통도 다른 손에 잡았다. 난로를 피웠는데도 사무실 안이 추웠다. 호호 입김을 불었더니  차가운 공기 속으로 그것들이 사라졌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걸레를 빨고 있던 나는 손이 시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거울 속의 여자가 푸석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걸어서 눈길을 뚫고 출근한 얼굴이 약간 얼어서 벌겋다. 술 마신 것처럼 보였다.

 "뭐 안 좋은 일 있었어요?"

 거울  너머로 내 얼굴색 같은 눈이 벌겋게 된 남자가 물었다. 그는 두꺼운 작업복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 꼴로 불쑥 화장실로 들어왔다.

 "엄마야!"

 딴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 모시고  사는 거 아니었나? 다 큰 여자가 엄마야는 뭐요? 내 간도 떨어질 뻔 했네."

 몸으로 나를 밀치며 세수를 하고 머리에 물을 묻히며 정 부장이 말했다. 차가운 물방울이 그의 얼굴을 희게 보이게 했다. '외박 했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말을 입에 삼키고는 화장실 문을 나서려 했다. 그의 입에서 나올 거친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로 와 봐요. 머리카락에 이게 뭐요? 실 밥 같은 게 묻었어요."

 가까이 다가 온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입김사이로 술 냄새와 담배냄새가 났다. 몸을 사리며 그가 떼어 주는 대로 기다렸다. 눈 가에 맺힌 눈물도 손으로 닦아 주었다.

 방금 물을 묻힌 손이라 차가웠다.

 오히려 그의 손에 묻은 차가운 물방울이 도로 내 눈에 묻을 것 같았다.

 다른 때였다면 펄쩍 뛰었을 그런 행동이 자연스러워  몸을 맡기고 가만히 서 있었다.

 "최인미씨, 안아 봐도 될까......"

 말끝을 흐리며 그 말을 하고는, 곧바로 아주 잠깐 동안 그는 나를 강하게 끌어 안았다.

 따뜻하고, 넓은 그의 품에서 순간 아득했다.

 그가 나를 측은하게 여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봐 왔지만 그에게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 그저 말없이 책상을 지키고 앉아 있을 때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내게 전염될까봐 몸을 도사리며 떨었다는 표현이 옳았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볼 때마다 뭔가에  미쳐 돌아 다녔던 지난 스물 아홉 살 때가 자꾸 떠오르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일부러 웃었다.

 

 5월 중 순 셋째 주 수요일에 박주임과 이 주임을 끼워 다섯 사람이 간단한 사무실 회식을 삼겹살 집에서 끝냈다. 회식자리가 끝나자, 정 부장이 그 집 문 앞에서 잠깐 정 사장과 무슨 이야기를 하더니 나와 잠깐 할 말이 있다며 삼겹살 집 맞은편의 호프집으로 데려갔다.

 평일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이외로 테이블이 모두 찼다.

 그 호프집은 신발을 벗고 들어 가게 되어 있었다.

 회식이 있어도 일차로 끝나고 돌아 갔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낯설었다.

 될 수 있으면 빠지지 않으려 했지만 밤늦게 정사장의 차로 대리운전까지 하여 집까지 태워다 주는 그 일이 미안했고, 택시를 타고 20분 거리의  집까지 가는 그 일도 밤이 늦으면 불안했다.

 또 집까지 가는 택시비는 내게는 늘 부담이 큰 돈이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급한 일은 없어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사정을 말하고 잠깐 더 정부장과 함께 앉았다. 이런 자리는 거북했다. 차라리 사람들과 좀 떨어져 있는 버스 정류장이 내게는 익숙한 곳이었다.<5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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