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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준호가 선택한 지갑이나 운동화로 인해 우리 두 사람은 많은 선택의 기회를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씩 해 본다.
나이라는 게 인생에서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나이가 숫자에 불과한 것일까?
내가 열 살때와 스무 살 때와 지금 스물 여덟일 때와 앞으로 살아야 될 10년 후의 서른 여덟이 과연 숫자라는 의미로 가능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는 서른여덟에 붓글씨를 쓰고 계셨다.
거실의 텔레비젼 앞에 사무용 책상을 하나 놓고서 먹을 갈고 붓의 끝을 다듬은 후 가로로 세로로 획을 그었다.
그 옆에서 텔레비젼 앞에 놓였던 엄마의 가녀린 작은 등짝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오빠와 나 남동생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먹을 갈아 주었다. 그 ㄸ대 나는 시꺼먼 먹물보다 더 마음이 시꺼매져서, 단절된 아이들과의 대화 때문에 기분이 더러웠다.
어쩌면 텔레비젼은 사회와 나의 소통이었는데, 엄마는 그 아ㅏㅍ에서 붓글씨를 쓰고 있었으니, 그 때부터 나는 성격이 꼬였다고 생각된다.
엄마가 사다 놓은 위인전을 읽기는 했는데, 책은 온통 거짓말 투성이었다.
4살 때 천자문을 떼고, 혹은 11살에 세상에 눈을 뜨고, 그런 말이 진실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엄마의 붓글씨와 위인전 때문에 지금은 온통 네일을 바르는 가지각색의 컬러에 둘러싸이고, 그 이후로는 절대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하기야 책은 어쩌면 다를 수 있다.
준호가 운동화와 책을 둘 다 사랑하듯, 어느 날 지갑과 내 컬러와 책을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른다.
준호는 "위인전이 너의 잘못이었구나."라고 말하는데 그 뜻을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또 모르고 싶은 마음이다.
나 역시 골드를 고집하거나 바이올렛만 고집하거나 레드를 고집하는 내 손님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씩 있다.
사람은 모든 일을 경험해 봐야 한다는 생각도 가끔씩 한다.
지갑의 여러 컬러와 디자인은 나를 흥분하게 만들고, 라스베가스 좁은 샵의 벽면에 죽 늘어 선 컬러들이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한 회사가 만들어 내는 컬러가 200가지도 더 되고 보면 나나 손님들이 그 어떤 색을 유별나게 고집하는 그 일도 웃기는 거다.
기분이 내키면 가요를 들을 수도 있고, 팝송을 들을 수도 있고, 트로트를 들을 수도 있는 게 사람 사는 세상의 일이 아닌가?
나는 지금 그래도 내 또래 친구들의 음악이 좋긴하다.
엄마가 3년을 붓글씨 일을 마감ㅁㅁ하고,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오래 되어 낡은 거실 장판이 우드륨이 아닌 누러 끼리 한 그 장판이 깔린 단독 주택 하나만 겨우 남기게 되었을 때 , 엄마는 처녀 때 하던 의상 일을 발판으로 수선 집을 차렸다.
나와 오빠와 동생은 그 일이 시작 된 그날부터 몸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정신은 저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그런 세상이다.
두 가지 경험을 하게 한 내 인생의 진실은 또 두가지쯤으로 나뉘어졌다.
손석희 아나운서와 왕종근 아나운서가 그랬고,
아메리카와 코리아가 그랬고,
흑인 루니와 황인 준호가 그랬고,
킹크랩과 김밥이 그랬다.
엄마의 붓글씨와 엄마의 수선 일 역시 내게는 두 가지 진실이다.
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목말라 하고 , 손님들은 한 번 결정내린 메니큐어의 컬로로 네일을 혹은 나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그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리무버로 지우면되고,
그 컬러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머니가 아까우면 일주일을 버티면 되고,
그도 저도 아니면 처음부터 좀 더 신중하게 컬러를 선택하면 된다.
하기야 또 후회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나 역시 처음에 내 네일에 컬러를 입혔을 때 짜증이 났다.
조잡한 내 솜씨에 짜증이 났고, 엄마가 부쳐주던 비싼 항공료를 문 과자봉지 때문에 화가 났고, 서양인과 동양인이 섞인 클래스에서 냄새를 견딜 수 없어 머리가 아팠다.
그 시간을 거치고 났더니, 어느 날 한국으로 돌아 갈 비행기 티켓을 끊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라스베가스에 남아 있기에는 돈이 너무 안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모든 일을 해결 해 주진 않지만, 나 은경은 시간의 위대함에 감사드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손님들의 낮짝에 더러운 언어를 퍼 붓고 싶었으나, 이윽고 저녁 시간이 어김없이 돌아오고, 준호의 얼굴을 볼 수 있고, 그와 섹스를 나눌 수 있고, 블루 마운틴 커피 한 잔이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바뀌지 않는 게 없듯 영원불멸의 어떤 것이 시간 앞에 굴복하지 않을 것인가?
어느 사이 엄마의 머리카락은 흰 머리가 듬성듬성해지고, 나와 달리 일찍 결혼 한 엄마가 쉰이 조금 넘었는데 엄마의 세월은 고달픈 것이다.
언젠가 또 엄마는 그 일을 그만두고 산으로 훌쩍 떠나거나 우리가 어렸을 때처럼 붓글씨를 쓴다 해도 지난 시절의 엄마로 온전히 돌아 갈 수 없듯 그 누구도 지난 과거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다.
또 걸어 들어간들 의미는 무엇인가?
'What's mean?'
준호와 내가 맛있는 것을 먹되 싼 것만 찾아 다니는 현재 이 순간만 즐겁고 행복하면 그만이다.
저 멀리서 준호의 웃는 눈이 보인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그를 찾는다.
밤색 빵모자와 까슬까슬한 수염과 그의 아버지를 닮아 큰 눈과 밝은 컬러의 옷을 입는 그는 , 오늘 아침에 분홍색 티를 입고 출근했었나 보다.
샵에서 파는 선명한 로로가 있는 옷을 입고, 그가 눈을 이리저리 보내며 내게 걸어온다.
그는 다가오면 가볍게 나를 껴 안고 내 손을 잡을 것이다.
루니처럼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기에는 그는 너무 훌륭한 젊은이다.
이곳은 한국이므로 라스베가스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동방예의지국'이 한국이 아닌가?
'안녕 준호! 너의 운동화와 너의 책과 너의 시와 너의 자유를 사랑한다. 지금은 그래'
준호는 나의 천사이고, 나는 그의 말대로 그의 천사이다.
준호가 영풍문고 앞에서 걸인처럼 생기지 않은 늙은 그에게 5,000원을 주고 난 후였다며 아깝다는 생각보다는 그가 천사였으며, 자신을 도와주러 온 사람이었을 거라 말 했을 때의 준호의 얼굴은 정말 빛났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밝은 컬러의 티셔츠처럼 그의 해 맑은 웃음이 좋다.
나와 준호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또 그러며 만족을 느낀다.
그래서 엄마가 사람 인 자를 온 거실 가득 늘어 놓았을 것이다.<6끝>
* 토요일 일요일은 바쁜 일때문에 작업하기 힘듭니다. 실은 15쪽까지 밖에 글을 정리하지 않았는데 다음주 월요일부터는 노트에 기록한 걸로 글을 씁니다.
저를 믿고 읽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15편까지 연재하고 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위해 단편과 중편 낸 것을 연재 하겠습니다. 아직 서툰 초보 작가지망생이지만 저는 꼭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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