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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갑내기고 아직 호칭이 정리가 안 된 상태라 뭐 여보니 당신이니 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도 않는다. 친구 지수는 결혼한 지 1개월이 지나기 전에 코맹맹이 소리로 부부 동반 모임에서 잘도 여보 여보라고 지 신랑 핸섬보이인 몽환을 그렇게 부르던데, 하기야 준호가 조금만 잘 생겼으면 나도 여보라고 지수처럼 불렀을 지도 모른다.
준호는 그저 평범하게 생겼다.
내가 어찌 보면 예쁘고, 어찌보면 밉고, 날카롭게 보이는 것처럼 준호도 그렇다.
어찌보면 잘 생겼고, 어찌 보면 밉고, 어찌보면 날카롭지는 않은 게 준호의 외모이지만 그의 그 날카롭지 않은 외모를 보면 우리 엄마는 좋아한다.
"너랑 좀 다르다 준호는."
처음으로 집에 데려 갔을 때 엄마는 준호를 지하철역까지 바랴다주고 온 뒤 살짝 내 귀에 만 대고 말했다.
"은경아. 준호는 너희 아버지랑 니 오빠, 니 동생이랑 다르게 두루뭉술하게 생겼다. 그 점 마음에 든다. 사위 삼는데 문제는 없겠다."
엄마는 친구 지수처럼 인물을 많이 따지고 인물 중에서 그 사람의 날카로움과 부드러움을 잘 찾아낸다. 그래서 엄마는 손석희아나운서보다 왕종근아나운서 같은 타입을 더 좋아한다.
아마 준호가 왕종근씨를 조금 닮은 이유도 엄마 눈에 좋게 보였을 것이다 .
눈만 크고 약간 말씨도 더듬는 왕종근씨가 엄마는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나는 차라리 손석희아나운서 같은 사람이 멋있고 좋던데.
손석희아나운서는 내가 떠나 온 라스베가스를 떠 올릴 수 있는 인물이다.
왕종근아나운서는 내가 미국에서 돌아오고팠던 한국을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토속적인 남자였다. 된장찌게와 김치찌게와 지하철역에서 나는 텁텁한 냄새가 나는 그런 남자가 왕종근 아나운서고 내 남자 준호의 외모와 마음이었다.
준호와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서둘러 결혼했던지.
엄마가 옆에서 부추기지 않았다면, 또 끈덕지게 가게 앞과 집 앞까지 따라 다니는 준호만 아니었다면 좀 즐기다가 천천히 족쇄를 찾을 것이다.
후회막심이다.
뭐 쪼끔 좋을 때가 있지만, 조조영화나 심야 영화 볼 때만은 든든한 백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나로 말하자면 또 영화광이어서 새로 나온 영화는 빼 놓지 않고 보러 다니는 영화의 열성팬이다. 최근에 나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때문에 꼭 프라다 백을 가지고 싶지만, 우리 엄마 역시 짝퉁 프라다 밖에는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조금 참는다. 그 걸 할부로 끊어 놓으면 아마 나는 몇 사람의 네일을 손질하고 그녀들의 네일에 몇 가지 컬러의 메니큐어를 발라대야 할지 머리에 쥐가 나서 자제했다.
몇 년 전에 내가 사준 버버리 지갑이 엄마한테 가장 비싼 것일 테고 나는 또 좋아하는 영화처럼 지갑을 열나게 좋아한다. 서랍장 안에 지갑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 중에서 엄마한테 준 버버리 지갑을 빼면 다 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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