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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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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고뇌


BY 曉溪(효계) 2006-12-29

잘 다녀 와 . 도착하면 전화 꼭 하구.

 

알았어. 들어 가.

 

정희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밤 공항의 분위기에 익숙한듯  가볍게 머리를 끄덕인후 뒤 돌아서서 총총히 기내로 사라졌다.

 

성진은 사라지는 정희의 뒷 모습을 확인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야. 지금 떠났어. 곧장 갈꺼니까 기다려.

 

성진은 신속한 발걸음으로 공항 주차장을 향했다. 이내 공항을 빠져 나온 성진의 차가 한가로운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뭐 했어?

 

응. 아무것두. 그냥 드라마 보고 있었어.

근데 언제 돌아온대?

 

몰라. 워낙 홍길동이잔아. 지치면 돌아 오겠지 뭐.

뭐 먹을 것 좀 있니? 나 배곺은데.

 

그래 ?  아직도 저녁 않 먹었어?

 

응 ,

바쁘게 설치는 것 뒤치닥거리 하느라구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허긴 뭐 먹을 거나 있냐. 늘 그렇잖아 우리 집.

여자라고, 꼬락서니 하구는 ...

어쨋던 당분간은 좀 시원스럽게 살 수 있겠다.

잔소리 바가지가 없을 테니까.

 

잠간만 기다려.

내가 금방 뭐 좀 준비해 볼께.

자기 오징어 좋아하지?

낮에 시장에 갔는데 마침 싱싱한게 나왔더라.

그래 자기 생각나서 사왔어.

나 잘 했지?

 

그래 일등이다. 잘했다,잘했어. 이 여시야.

내가 그저 네 덕에 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나 없으면 자긴 얼굴이 반쪽 될 껄.

그 좋은 식성을 누가 채워줄까 !?

 

알았다. 알았어. 서둘러 주세요. 밥 아줌마.

 

자기야. 나 이거 보고 있었는데 재밋더라.

보고 있어. 내가 밥 준비할 동안.

 

 

연숙이 TV에 비디오 테잎을 꽂아 넣고 주방으로 달아나듯 사라진다.성진은 기지개를 켜고 소파에 기댄 채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시큰둥한 눈으로 TV 화면을 응시한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오는 것같았다. 성진의 눈이 스르르 감겨버린다. 

 

 

아이구 어째 이리도 피곤하신가요.

그저 앉았다 하면 잠이지...

자, 이리 와요. 다 됐어요.

 

 

성진은 정신을 차리고 식탁에 앉는다. 

 

 

역시 그대는 음식의 대가시군요.

어느새 이렇게 진수 성찬을 준비 하셨나.

어쨌던 수고했어요.글구 고마워요.

자 , 먹자.

 

자기 기도 않해?

 

야 바쁜데 무슨 기도냐. 하나님도 나 배고픈 거 다 아신다. 

 

역시 우리 여보 음식 솜씨 하난 알아 줘야 돼.

야 기가 막히다. 오징어 볶음.

어디 이렇게 맛있게 하는 식당 또 있나?  

 

흥 늘 듣는 소리지만 싫진 않군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그 소리 실험해 볼려구

그러는 거지?

허긴 내가 뭐 음식만 잘하나?

 

그럼 또 뭘 잘하는데?

 

잘 알면시롱..

 

 

연숙이 눈을 흘기자 성진이 알아차렸다는 듯이 소리내어 웃는다.

 

 

하하. 그래 말이야. 그걸 내가 잊었군 .

당신이 잘하는 게 어디 음식 뿐인가?

음식보단 그게 한 수 위지 아마.핫핫핫.

 

 

성진이 뭔가 흡족하다는 듯이 호탕스럽게 웃어 제꼈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거실로 돌아온 그들은

연숙이가 내온 맥주 한 잔 씩을 들고 TV 앞에 앉았다.

 

 

지금 쯤은 꽤 멀리 갔겠다.

 

 

연숙이 불쑥 정희를 의식한 듯 한마디 던졌다.

 

 

신경 꺼. 우리 얘기만 하자.

그 여자 얘긴 재미 없어.

 

근데 자기야. 지금 왜 정희가 한국엘 간거야?

우리 잘 놀으라구?

 

다 사연이 있지.

 

그게 뭔데?

 

알고 싶으니? 말해줄까?

깜짝 놀랄껄.. 아마도.

 

뭔데?

 

정흰 윤석일 만나러 갔어.

 

아니 뭐라구?

전번에 얘기룬 언니네 딸 결혼식땜에 간다고 했잖아.

 

그게 그렇지 않아.

알고 보니 딴 속셈이 있더라구. 

왜 작년 여름에 정희가 한국에 나갔었잖니.

그 때 윤석일 만났대.

둘은 아마도 퍽이나 재미 있었던 모양이더라.

 

그렇겠지.

걔네가 원래 그랬었잖니.

근데 그걸 알면서도 보냈어?  

 

그럼.

차라리 잘 됐다 싶어서 말 꺼내자 마자 다녀오라구 했어.

 

어이구 속도 좋으셔라.

 

사실이잖니? 서로 알거 다 알았는데.

 

무슨 소릴 하는거야?

뭘 아는데 서로.

 

응 우리가 공개적으로 까논 건 없지만

서로간 감추는 일에 대해 눈치로  다 알고 있는 것 같애.  

 

정말?

정말로 우리 사이를 눈치 챘다는거야?

 

그런거 같애.

그래두 할 말은 없겠지 뭐. 

제 과거를 죄다 아는 내 앞에서 어쩔꺼니.

 

 

정희는 성진과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다.

남녀 공학인 그 학교에서 정희는 빼어난 미모까닭에

남자애들사이에서 거의 인기를 독점하다시피 했었다.

둘은 한 동리에 살고 같은 교회에 다녔다는 것 때문에

비교적 허물없이 대할 수 있는 사이였었다.

그러나 성진이 비록 머리는 뛰어나서 공부는 잘 했지만

워낙 가정형편이 어려운터라

감히 포목장사로 한 몫을 단단히 챙긴 동네 유지중의 유지인

중앙상회집의 막내동이 정희를 넘볼 처지가 아니었다.

연숙은 정희의 단짝친구였다.

생김새로나 재력으로나 정희를 따를 수 없었지만

비교적 똑똑한 머리와 너른 맘씨 까닭에

오래도록 정희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정희의 주변에는 늘 사내 아이들이 서성거렸다.

그 중에도 군수집 외동 아들 윤석이는 공부도 운동도 모두 뛰어난데다가 제 아비의 위세까지 힘입어 늘 그녀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거느리곤 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서울로 대학을 갔다.

윤석은 연세대학 의과대학에

그리고 정희는 이화여대 사회사업학과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진은 그 잘나간다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지만

입학금을 낼 수가 없어서 그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이 추천해 주어서

기독신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연숙은 서울대 간호학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를 따라 서울로 둥지를 옮겼다.

낯선 서울에서 그들은 자연 더욱 가까워졌고

성진과 윤석 사이에 서있던 정희는 윤석에게로 다가가

붙어 버렸다.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내내 이 일로 성진은 가슴을 앓아야 했다.

사실 성진은 정희를 너무나 좋아 했었다.

그것을 잘 아는 정희였지만

그 녀는 운동도 공부도 잘하고 가정도 좋은 윤석이를

당연히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들은 결혼을 약속하며 뜨거운 사랑의 교제를 시작했다.

그들은 거의 밤낮없이 붙어 다녔다.

그러나 졸업이 임박한 어느날

윤석이 부모님의 강권에 못이겨

<형식적>이라고 못박고 보게 된 맞선에서 만난

모 재벌의 막내 딸 유학파 여자애에게 

어이없게도 첫눈에 반해 버려

결국 부모님을 핑게 대고 정희를 울려서 돌려보낸 후

그 여자와 결혼하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실의에 빠져 죽을 둥 살둥 헤매는 정희를 달래는 몫을

성진이가 맡았다.

성진은 진심으로 그 녀를 동정하고 위로했다.

마침내 성진의 진심을 안 정희는

성진의 사랑을 받아 들였고

둘은 반 우격다짐으로 정희 아버지를 설득하여

결혼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의 깊은 상처를 가진 정희와

그런 그녀를 동정하여 위로하는 가운데

결혼까지 하게된 성진은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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